[1618] "유한인의 정신으로 글로벌 인재 키우는 게 목표죠"


흔히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질문에 고교 시절을 떠올린다.

한창 사춘기의 진통을 겪던 그 시절 함께 보낸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고교 시절의 추억과 고마움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유한공고 동문들이다. 그 중 이원해 유한공고 동문 장학회장은 유난히 모교 사랑이 깊다. 시화반월공단 내 건설 장비 수출 기업 대모엔지니어링을 운영하고 있는 이원해 회장은 1989년에 회사를 설립해 27년간 한 길만 걸어왔다. 1994년 대통령 표창 수상, 2009년 KDB Global Star 인증, 2011년 3000만불 수출탑 수상, 2013년 철탑산업훈장 수훈(회장 이원해), 2014년 WORLD CLASS 300 기업에 선정 되는 등 국내 손꼽히는 강소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글 강홍민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


故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본받은 유한공고 동문들


이 회장은 지금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자신의 모교인 유한공업고등학교의 공으로 돌렸다. “제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故유일한 박사께서 전교생에게 장학금을 제공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공짜로 학교를 다닌 셈이죠. (제가) 유한공고 9회 졸업생인데, 11회 졸업생까지는 모두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유한공고는 유한양행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국내 엔지니어를 양성하기 위해 사비를 털어 설립한 학교로, 1952년 고려공과기술학교로 출발해 1964년 유한공업고등학교로 개명했다.

“그때만 해도 형편이 좋아야 고등학교를 갈 수 있었거든요. 저희 집은 중학교도 못갈 형편이었는데…. 그때 유한공고를 안 갔으면 지금의 저나 이 회사도 없었겠죠.”

충북 청주에서 나고 자란 이 회장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를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구두닦이로 돈을 벌기 위해 구두 통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시청 부근에 가면 공무원이나 사업하는 아저씨들이 구두를 많이 닦았어요. 하루는 집에서 구두 통을 만들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뭐 하려고 그걸 만들고 있냐”며 버럭 화를 내시더군요. 그래서 “구두 닦아서 돈 벌려고요”라고 대답했어요. 아버지께서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남자가 그래도 중학교는 나와야지”라며 꽁꽁 숨겨둔 집문서를 꺼내시면서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해주셨죠.”

그 덕분에 어린 이 회장은 중학교로 진학했지만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진학사에서 고등학교 진학자를 위한 참고서인 ‘합격생’을 팔면 수당을 준다는 신문 광고를 보게 됐다. “당시 중2였는데 진학사에서 합격생 참고서를 떼 선배들한테 팔았어요. 학교 선생님한테 걸려서 여러 번 혼나기도 했지만, 형편이 어려운 걸 아시곤 눈감아 주셨죠. 그 덕에 전국 판매 실적 2등을 할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그걸 판 돈으로 학비도 내고 생활했으니까요.”

중3 어느 날, 유한공고에서 영어 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 한 분이 이 회장이 다니던 중학교로 전입해왔다. “유한공고에서 선생님 한 분이 오셨는데 유한공고 자랑을 끝도 없이 하시더군요. 학비도 공짜고, 졸업하면 유한양행으로 바로 취업도 할 수 있다고요. 그 선생님 말에 유한공고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1618] "유한인의 정신으로 글로벌 인재 키우는 게 목표죠"

지난해 8월 유한공고 학생들이 미국 테네시주에 위치한 아스텍 현지공장을 견학하고 있다.


왕복 6시간 통학…군위탁장학생으로 생활비 벌어


우여곡절 끝에 유한공고로 입학한 그는 송파구 거여동에 거주하고 있던 누나와 함께 살며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집과 학교까지의 거리는 약 왕복 80km. 당시엔 교통수단이 열악해 버스의 종점에서 종점까지 두 번 갈아타고, 걸어서 30분 거리를 매일 통학해야 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편도로 3시간 남짓한 길을 통학했어요. 그렇게 다니면서 첫 시험을 봤더니 당연히 성적은 바닥을 치더군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학교 근처로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죠.”

이 회장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한 뒤 학비와 방세를 충당하기 위해 당시 고교생이 지원할 수 있었던 육군 하사관 모집에 지원했다. “지금이야 없어졌지만 당시엔 고등학생 대상으로 군위탁장학생을 선발했어요. 졸업하고 하사관으로 군 생활을 하는 건데 그걸 신청하면 학비와 생활비가 나왔거든요. 그걸로 생활비를 하고 또 진학책을 팔았죠. 그때는 제가 제일 부자였어요.(웃음)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나서는 청주에 계시던 부모님도 서울로 올라오셨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 육군 항공대 정비관으로 입대를 한 그는 군에서도 모교의 덕을 톡톡히 봤다. 당시 항공대 비행기 정비관들 중에는 기계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사회 문제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공고 출신 전문 인력을 정비하사관으로 배치하기 시작할 무렵이었

지난해 8월 유한공고 학생들이 미국 테네시주에 위치한 아스텍 현지공장을 견학하고 있다.다. “저야 유한공고에서 배운 기술이 있으니까 선배 조종사들이나 정비사들이 엄청 좋아했죠. 정비하는 실력이 좋으니까 나중에는 전역을 안 시켜줄 정도였으니까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81년 이 회장은 군 제대 후 우연한 기회로 건설 장비를 수입하는 회사에 취업했다. 공고 출신에다 군에서도 주특기를 정비로 한 그는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던 무렵 우연히 서점에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 저)’라는 책을 읽고 또 한번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한창 회사를 다닐 때였는데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김우중씨가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어요. 그리곤 그 다음 날 바로 사표를 내 버렸죠.(웃음)”

1989년 이원해 회장이 서른넷이 되던 해 건설 장비 해외 수출기업인 대모엔지니어링을 설립했다. “초기엔 회사 홍보 책자를 만들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건설 장비 박람회를 부지런하게 다녔죠. 그때 느꼈어요. 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좀 해놓았으면 좋았을 걸…. 그때부터 동문 장학회를 설립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엔지니어들이 외국어가 되면 그 효과는 두 배가 되거든요.”

2009년 3월, 뜻이 있는 동문들이 1억 원의 자본금을 출자해 ‘유한동문장학회’ 장학법인을 설립하고, 이원해 회장이 동문 장학회장을 맡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9년 7월, 제1차 글로벌체험해외연수를 시작으로 올해 8년째를 맞고 있지만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처음엔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동문에게 여섯 명의 아이들을 보냈어요. 아이들이 도착하고 둘째 날인가 미국에 있는 동문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1시간 동안 혼이 났어요. 그 이유가 아이들이 인사성도 없고 태도나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거였죠. 그래서 그 다음 해부터는 사전 교육을 시켜서 보내기 시작했죠.”

그 이후부터 장학회 주최로 글로벌리더 해외연수 사전교육을 실시했다. 우선 희망하는 학생들이 제출한 1차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30명을 선발한다. 선발된 학생은 1차 사전교육을 통해 영어, 인성, 극기 훈련을 거쳐 최종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통과된 15명의 학생은 2차 교육으로 중국어, 영어, 인성, 극기 훈련, 전산 교육을 통해 글로벌 리더로서 기초교육을 실시한다.

“매년 거듭할수록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최종 15명 안에 선발되었다고 해도 안심할 순 없어요. 교육시간에 졸거나 약속을 안 지키면 바로 탈락이거든요. 정신부터 무장해야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으니까요.”



[1618] "유한인의 정신으로 글로벌 인재 키우는 게 목표죠"


장학회 법인화로 더 많은 학생들 해외 보내는 게 목표


매년 모교 후배들을 해외연수 보내기 위해 노력 중인 이원해 동문회장의 꿈은 한결같다. 더 많은 후배들을 더 넓은 세계로 보내는 것이다.

“작년까지 98명의 유한공고 학생들이 글로벌리더 해외연수에 참가했어요. 학교에서는 더 많은 학생들을 보내고 싶어 하고, 저희 장학회에서도 목표가 있습니다. 장학회의 출발은 유한공고 동문회였지만 유한인 뿐만 아니라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글로벌한 문화 체험과 눈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사실 처음 장학회를 설립할 땐 법인화로 설립해 더 많은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근데 정부의 방침이 장학회를 법인화 하려면 출자 금액이 5억 원이 돼야 한다는데 저희로선 부담이 크죠. 동문들이 십시일반 모은 1억 원은 아직도 쓰지 않고 있어요. 정부에서 출자 금액에 대한 배려를 좀 해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올해 시화반월공단 내 스마트 허브 사회 공헌 위원회장도 맡은 이원해 회장은 후배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아무것도 몰랐을 때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배운 것이 참 감사한 일이죠. 사업을 할 때도 유한 정신이 참 도움이 많이 됐어요. 우리 후배들도 유한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1618] "유한인의 정신으로 글로벌 인재 키우는 게 목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