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학번, ‘32세 신입생’ 이관종 씨

“돈이 별 건가요, 순수예술하며 살래요”



32세에 꿈찾은 '15학번' 이관종 “돈이 별건가요, 순수예술할래요”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본사에서 늦깎이 신입생 이관종 씨를 만났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우선 눈 앞에 있는 일을 완전히 끝내라고 조언한다. 김기남 기자.



여행이 이슈고, 사진이 대세다. 사진동아리도 다양하고 사진찍기를 취미라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사진을 업으로 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접근하기가 어렵고 커리어 계발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적다는 게 이유다.


00학번 이관종 씨는 32세의 나이에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사진학과에 15학번으로 재도전했다. 돈을 벌기위해서도, 과거경험과 연관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좋아서였다. 그의 꿈은 파인아트(fine art), 순수예술작가다.



[PROFILE]

이관종

1982년생

2008년 중앙대 정보시스템과 자퇴

2008년 입시학원 고3 국어강사 근무

2015년 계원예대 사진예술학과 수석 입학



의미 없는 대학생활에 ‘고민’… 결국 자퇴


지금은 순수예술을 꿈꾸는 이씨가 15년전,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학과를 선택한 가장 큰 기준은 의외로 ‘취업’이었다. 당시 벤처붐으로 IT관련 학과가 주목을 받았고 막연히 “취업이 잘 되겠지”라는 생각 하나로 정보시스템학과를 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선택이 앞으로 10년 가까이 자신을 괴롭힐 줄 상상도 못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그는 학과생활에 일절 흥미를 잃었다. 문과계열이긴 하지만 수시로 수학이 등장하는 학과 내용이 그에겐 너무 어려웠다. 전공 수업엔 집중할 수 없었고 시험에 아예 불참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대신 교양과목만 열심히 들었다. 자연히 학점관리가 되지 않았고 졸업 후의 진로도 막막해져만 갔다.



32세에 꿈찾은 '15학번' 이관종 “돈이 별건가요, 순수예술할래요”



그렇게 2년을 어영부영 보낸 뒤 군대에 다녀왔다. 하지만 복학 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또다시 흐지부지 일 년을 다닌 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잠시 학교를 떠나기로 하고 휴학계를 제출했다.


그때 고3 이후로 계속 친분을 유지했던 입시학원에서 고3 국어강사 아르바이트 제의가 들어왔다. 마침 시간이 있었던 이씨는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원장님이었어요. 자수성가한데다 늘 낙천적이셔서 멘토로 섬겼거든요. 물론 학부형 관리나 수업준비, 학생모집 등의 업무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평소에 책읽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국어강사로서 즐겁게 일했죠.”


그렇게 학원 일에 집중하는 동안 어느덧 휴학가능 기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는 결국 포기를 택했다. 학원이 아니었다. 학교를 자퇴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자퇴서를 제출하는 날, ‘전공관련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여행서 빠진 ‘사진’… 공무원시험 탈락 후 제2의 길로 선택


그렇게 학원강사를 평생 업으로 삼는듯했던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지는 계기가 찾아왔다. 원장이 지병으로 돌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슬픔에 잠긴 이씨는 안정적인 진로에 대한 혼란스러움까지 겹쳐 좀처럼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2013년 초봄, 7년간 몸담았던 학원에 휴직계를 내고 후배와 한 달간 인도로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자신을 처음으로 설레게 하는 꿈을 만났다. 바로 사진이었다. 카메라의 종류도 모르고 왜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사는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32세에 꿈찾은 '15학번' 이관종 “돈이 별건가요, 순수예술할래요”



“사진은 눈으로 봤던 것을 언제든 다시 볼 수 있게 해줬어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카메라를 들고 국내여행을 떠났어요.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대는 동안 시나브로 ‘이렇게 찍으면 더 낫지 않을까’, ‘조금 더 잘 찍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하지만 꿈을 찾았다는 설렘도 잠시, 2개월의 여행 후 그는 다시 현실의 한계에 맞닥뜨렸고 안정적인 일을 찾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학원에서도 연 2000~2500만원의 수입이 있었지만 액수가 일정치 않았기 때문이다. 1년간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32세에 꿈찾은 '15학번' 이관종 “돈이 별건가요, 순수예술할래요”

서른 둘, 다시 한 번 미래를 놓고 고민하던 찰나, 불현 듯 아예 사진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처음으로 스스로 원하는 길을 택한 순간이었다. 그 길로 보급형인 후지카메라 X-A1을 구매했다. 하지만 혼자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때 마침 카메라를 구매했던 후지필름에서 사진강좌인 ‘X-아카데미’를 소개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12주 30만원 코스였다. 15명이 사진을 찍은 뒤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에서 그는 방향을 잡았다. 그러다 계원예대의 사진예술학과를 알게 됐고 아카데미에서 작업했던 작품을 제출해 포트폴리오전형에 수석 합격했다.


15년 만에 ‘전과목 A+’… “솔직함을 좋게 보셨다더라”


대학 합격과 함께 서른이 넘어 새로운 길로 들어선 그는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사진에만 집중했다. 그 덕에 수석입학에 이어 첫 학기에서 전 과목 A+를 받았다.


“고3때 입시정보에 대해 엄청 알아보잖아요. 이번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었고 순수하게 이것을 평가받았어요. 나중에 교수님들께서 솔직함을 좋게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덕분에 학교도 수석으로 입학했고 1학기 성적도 좋게 나온 것 같아요.”


“낮에는 하루 종일 촬영하고 밤에는 온종일 편집에 매달려요. 주로 일상적인 사물이나 자연 속에 있는 피사체를 찍는데 일상적 사진일수록 꾸준해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입체를 평면 안에 압축해서 담아내는 게 재미있어요.”


이씨의 최종 꿈은 카메라 안의 다른 눈을 사진으로 만들어내는 것. 그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미국의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다. 평범한듯하면서도 차분하고 고즈넉한 정서가 그를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32세에 꿈찾은 '15학번' 이관종 “돈이 별건가요, 순수예술할래요”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소감이 어떨까. 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매우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고 전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느라 정신없다는 것. 현재는 우선 다음 학기에 있을 ‘모방과 통로’라는 과목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작가를 선정해서 그대로 모방하고 나만의 스타일로 업그레이드하는 과목인데 여기에서 확실한 콘셉트를 찾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씨를 부모님은 어떻게 바라볼까. “예전엔 많이 걱정하셨는데 지금은 오히려 응원해주세요. 이미 강사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봤지만 돈이란 게 별 거 아니더라고요. 있으면 좋지만 쓸 만큼만 있어도 충분히 살 수 있죠. 그래서인지 부모님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은 걸 기뻐하세요. 그리고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기 위해 아카데미에서 조교로 일하고 학원에서도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벌고 있죠.”


“눈앞에 있는 것은 일단 끝을 내세요. 나중에 절대 미련이 없게요.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앞에 놓인다는 것부터 끝낸다는 마음을 가지길 바랍니다. 하나하나 후회없게 마무리 해야 정말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기쁨이 배가 될 거예요.”


이도희 기자(tuxi0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