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등뼈와 지푸라기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 스트리트에서 밑바닥부터 출발해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한국 여성이 있다. ‘킬러’라는 별명을 가진 이정숙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동양 출신의 여성이라는 이중 핸디캡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월 스트리트에서 은퇴한 후에도 강의와 후원 활동을 하며 삶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그녀에게 한 유명 펀드매니저가 이런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룻밤 사이에 이처럼 커다란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하룻밤 사이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지난 25년 동안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녀의 저서 ‘지혜로운 킬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영어의 관용어 가운데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the last straw that broke the camel’s back)’라는 표현이 있다. 그까짓 지푸라기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된다고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릴까 싶지만, 아무리 힘이 세고 튼튼한 낙타라도 짐을 싣고 또 싣다 보면 결국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지점이 있다.”
낙타의 등뼈와 지푸라기
가벼운 지푸라기 하나가 강인한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릴 수 있는 상태,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임계점(critical point)이라고 한다. 모든 물체가 임계점에 도달하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꽁꽁 얼어 있던 얼음에 계속 가열을 하면 이윽고 섭씨 0도에서 물로 변한다. 고체에서 액체로 질적인 변화를 하는 것이다. 이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질적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변화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실망한 나머지 중도에 포기해버리면 질적인 변화는 영영 일어나지 않는다.

섭씨 0도에서 얼음이 물로 변하는 원리나 섭씨 100도에서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원리는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현상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취한 목표에는 인고의 세월 동안 흘린 땀과 눈물이 배어 있다.

남들이 볼 때는 별 어려움 없이 해냈을 것 같은 수많은 성공의 이야기들 속에는 임계점에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쌓고 또 쌓은 땀과 눈물과 노력의 긴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비 때마다 만났을 무수한 실패와 좌절의 변곡점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끝에 한 편의 감동적인 반전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어떤 한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 크든 작든 어떤 한 목표를 마침내 이루어낸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낙타의 등뼈를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의 힘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 무언가 간절히 갈구하던 것을 이루는 일은 재능이나 열정의 힘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의 지독한 끈기와 지루한 반복, 고된 연마를 통해 마침내 결실을 맺는 것이다.
낙타의 등뼈와 지푸라기
정균승 국립 군산대 경제한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