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

4월 21일 12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 브로콜리 너마저의 네 멤버가 모였다. 밴드 결성 8년차. 이제는 인터뷰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아직도 촬영을 위해 차려입은 서로의 모습이 어색한지 웃음 짓는다.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촬영장 소품을 들여다보는 모습은 갓 데뷔한 신인 같기도 하다.

“소녀시대는 대단해. 이렇게 높은 구두를 신고 춤까지 추는 거 아냐.(잔디)” “소녀시대는 너 야구 보는 만큼 연습하잖아.(덕원)” “야구 보는 건 연습이 아닌데?(잔디)” 티격태격하는 모습까지 정겨운 그들과의 인터뷰는 오후로 예정된 공연 일정 탓에 리허설 이후로 잠시 미뤄야 했다. 공연이 두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공연장 리허설 무대에서 다시 만난 네 멤버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 선 그들은 서로와 눈을 맞추지도, 그렇다고 많은 말을 나누지도 않았지만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완전히 하나가 됐다. 그렇게 브로콜리 너마저의 무대가 완성돼 가고 있었다. 이제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여전히 촉박한 일정에 마음을 졸이며 다시 만난 그들과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스타와 커피 한 잔] "우리 노래? 타오르지 않지만 쉽게 식지도 않지"
왼쪽부터 덕원 스트라이프 톱은 세인트 제임스 by 플랫폼 플레이스, 블루 팬츠는 에잇세컨즈, 슈즈는 아쉬, 브레이슬릿은 모두 페르소나

류지 블라우스는 잇미샤, 프린트 쇼츠는 보브, 옐로 샌들은 게스슈즈, 참 브레이슬릿은 쥬시꾸뛰르, 네크리스는 블랙뮤즈

잔디 바이커 재킷은 BNX, 원피스는 에잇세컨즈, 오픈토 힐은 스티유, 네크리스와 이어링은 모두 케이트앤켈리

향기 톱은 스타일난다, 핑크 롱 원피스는 잭앤질, 그린 샌들은 게스슈즈, 네크리스는 포에버21
[스타와 커피 한 잔] "우리 노래? 타오르지 않지만 쉽게 식지도 않지"
한창 앨범 작업 중이라고 들었어요.

덕원 절판된 ‘보편적인 노래’ 앨범 수록곡들을 포함, ‘졸업’ 앨범 이전에 발표했던 모든 곡을 모아서 새롭게 작업하고 있어요. 3집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하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믹싱 작업 중이에요.

향기 이번 앨범은 모든 악기를 한 번에 연주하는 방식으로 녹음했어요. 악기별로 따로 녹음할 때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긴 어려웠지만 녹음 과정 자체는 재미있었어요. 현장감이 자연스럽게 잘 살아나기도 했고요.

잔디 평소 앨범을 통해서만 저희 음악을 접했던 분들은 조금 다르게 느낄 수도 있어요.
[스타와 커피 한 잔] "우리 노래? 타오르지 않지만 쉽게 식지도 않지"
평소에 음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덕원 정해진 틀이 있지는 않아요. 각자 생각해온 것들을 멤버들에게 얘기하거나 연주해줘요. 각자 맡은 파트가 있으니까 계속 맞춰보면서 곡을 완성시키죠. 처음엔 이런 방식이 헐렁한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서로 간의 신뢰가 있으니까 가능한 작업 같아요.

류지 그래서 저희는 연주할 때 거의 말이 없어요. 구체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라’ 하고 말하지 않아요. ‘그래 그 정도! 아까 그거 좋아!’ 이런 식이죠. 서로가 어느 정도인지 아니까요.

멤버 간 팀워크가 좋은가 봐요.

잔디 특별한 문제없이 지내온 걸 보면 그런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이 모이면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특별히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오히려 너무 잘 통하면 문제가 아닐까요?

향기 그래서 저희는 마법같이 잘 통하는 일도 없어요.(웃음)

류지 문제없이 무난하게 지내요.

처음 만났을 때는 모두 대학생이었죠?

잔디 네, 대학 동아리(서울대 노래패 ‘메아리’)를 연결고리로 만난 사이예요. 저랑 덕원 오빠가 같은 동아리였고요.

향기 저는 단과대학 노래패였는데, 노래패 친구가 덕원 오빠랑 아는 사이여서 만났어요. 알고 보니 같은 학과 선배였더라고요. 수업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는데….(웃음)

덕원 저는 전공 수업을 거의 안 들었거든요. 복수전공에 심혈을 기울였죠.

대학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류지 지금이랑 별다른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단지 학교 다니는 게 재미없었고 실용음악학과가 잘 안 맞아서 고생했었어요. 학교를 잘 나가지 않았고 거의 연주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덕원 류지는 정말 처음이랑 거의 비슷해요. 향기는 처음 만났을 때 굉장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고 들었는데 정확히 우리를 만나기 전까지만 그랬던 것 같아요.(웃음) 밴드를 만나면서 학업의 끈을 놓은 듯해요.

향기 그래서 아직 졸업을 못했어요. 9학년이에요.(웃음)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 그 분위기에 압도됐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공부만 했는데 점차 적응이 되면서 학업에 흥미를 잃었죠. 그리고 브로콜리 너마저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브로콜리 너마저는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덕원
대학 때 한 친구가 ‘악기를 배울 수 있다’고 유혹하며 저를 노래패로 불러들였어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밴드가 하고 싶어졌고 군대에 있을 때 그 마음을 굳혔죠. 그런데 제대 후에 알아보니 이미 친구들은 각자의 밴드를 결성했더라고요.

잔디 소위 ‘잘나간다’는 아이들은 이미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남아 있던 저희가 뭉쳤죠. 향기가 들어올 때도 ‘기타리스트가 필요하다’는 얘기만 듣고 온 거예요.

처음부터 음악이 꿈인 건 아니라고 얘기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어요. 직장에 다니던 멤버도 있었죠?

덕원 처음 밴드를 할 때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어요. 나름대로 학업에 열중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왔죠.(웃음) 게다가 졸업하던 해에 학교에서 축제기획 일을 맡게 되면서 제대로 취업 준비를 못했어요. 결국 코스모스 학기에 졸업하고, 일 년 정도 백수로 지내기도 했어요. 아슬아슬하게 한 음악 회사에 들어갔는데 잘 안 맞았어요. 제가 밴드 활동 하는 걸 싫어하더라고요. 마침 그 시기에 홈 레코딩 방식으로 만든 EP음반이 나왔고 서서히 뜨거운 반응이 오는 것을 보고 그만뒀죠.

잔디 저는 간호학을 전공했거든요. 앨범이 나온 뒤에도 계속 간호사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일을 그만둔 건 나중에 음악만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상황이 됐을 때예요.

덕원 솔직히 ‘음악만이 나의 사명’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밴드 활동에 대해 최소한의 믿는 구석이 있었어요. 음악을 한다고 하면 굉장한 결단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이직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잔디 그래서 저희는 주 5일제로 일하고 있어요.(웃음) 각자 개인 활동을 하면서도 주업무는 브로콜리 너마저죠.

직장인의 삶을 포기하고 음악을 선택했는데 막상 1집 앨범 발표 후 소속사를 나오게 되면서 힘든 상황도 있었죠.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낸 힘은 어디에 있나요?

향기 돌이켜보면 여기까지 온 과정이 꽤 힘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운이 좋다는 생각도 많이 했거든요. 매번 최악의 순간을 상정하는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힘든 일이 있어도 크게 상처받지 않고 나중에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잔디 저는 ‘늘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확신이 있어요. 책임감에서 비롯된 일종의 자기 확신이에요. 최선을 다하면 좋은 방향으로 갈 거라는 확신이 있고, 혹시 일이 잘 안 풀리더라도 내가 완벽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견딜 수 있어요.

덕원 멤버들이랑은 조금 다른데, 저는 최악의 순간 속에서도 가장 효율적인 대안을 이끌어내는 편이에요. 어쩌다 보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로 만들어버리는 거죠.

대학생 독자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잔디 제가 2002년도에 입학했어요. 그때랑 지금은 분위기가 너무 다른 것 같아요. 놀아도 죄책감이 뒤따르죠. 사실 “놀아보세요”라는 뻔한 말을 하고 싶은데 요즘 상황에는 이런 조언이 별로인 것 같고요. “인생을 즐기세요”라고 낭만적으로 말하기에도 좀 미안해요.

향기 요즘 대학생들은 굳이 조언이 없어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꼭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스타와 커피 한 잔] "우리 노래? 타오르지 않지만 쉽게 식지도 않지"
약속된 시간은 여기까지. 공연을 잊은 것처럼 편안하게 수다를 나누던 이들은 “시간이 부족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가 되어 무대 위로 올라갔다.

공연이 시작되고 그들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무대를 지켜보던 중 한 멤버가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앨범을 냈더니 방금 켠 보일러처럼 반응이 오더라”는 것. 순식간에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퍼져나가는 보일러 온기처럼 꾸준히 좋은 노래들을 선보인 브로콜리 너마저.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날의 만남이 오랫동안 훈훈한 기억으로 남았던 이유는, 한 번 데워지면 쉽게 식지 않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매력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5월에 열리는 공연

‘THE BAND 부산 - 델리스파이스, 칵스, 브로콜리 너마저’ - 5월 17~19일 부산 LIG 아트홀 ‘아트스테이지 소리’- 5월 2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 2012’- 5월 27일 서울 난지한강공원


글 김보람 기자 bramvo@hankyung.com·박혜인 인턴기자 pie@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헤어 목혁수 부원장, 메이 실장(라뷰티코아 도산점)┃메이크업 천인해 실장, 애란 디자이너(라뷰티코아 도산점)┃스타일링 김서영┃촬영협조 Eye-level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