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와 커피 한 잔_밴드 ‘피아’
피아와의 만남은 11월 중순, 서울 홍대 인근에 위치한 밴드 연습실에서 있었다. 보컬 요한이 갑자기 일이 생겨 그를 제외한 4인의 피아 멤버를 만났다.이들에 대해 편견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조금은 무겁고, 약간은 어두운, 그런 분위기를 예상했다.
하지만 틀렸다. 그들은 밝고 쾌활했다. 덕분에 굳이 아이스 브레이킹(인터뷰 전 밝은 분위기를 유도하는 것) 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다.‘초록 바탕에 군데군데 타오르는 불꽃이 피어나고 있는 그림.’
2시간가량의 인터뷰를 표현하자면 이렇게 묘사할 수 있다. 초록 바탕은 ‘편안함’이고 ‘타오르는 불꽃’은 에너지다. 10년의 오랜 경력이지만 여전히 젊다. 원숙미 속에 날것의 느낌이 살아 있다. 피아는 그런 밴드다.
![[스타와 커피 한 잔] 원숙미 속의 날것](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AD.25680592.1.jpg)
- 5집 펜타그램 수록곡 ‘Yes You Are’ 中
피아彼我·Pia
피아는 윈원엔터테인먼트 소속의 5인조 밴드다. ‘너와 나’ ‘우주와 나’라는 뜻이다.
1998년 부산에서 결성, 부산의 라이브 클럽 등에서 활동했다. 상경 후 앨범 ‘Pia@Arrogantempire.xxx’를 발매, 정식 데뷔했다. 지금까지 총 5개의 정규 앨범, 2개의 EP 앨범을 선보였다.
처음…. 이야기
결성 당시 어땠나요.
기범 원래는 부산에서 활동했었어요. 피아가 탄생한 지는 10년이 넘었어요.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요.
헐랭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주위 친구들이 음악 좋아하니까 저도 좋아하게 됐어요.
혜승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랑 친했어요. (심지가 “얘네 집이 원래 예술가 집안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스쿨 밴드를 만들었죠.
기범 저는 원래 가요를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들어가서 ‘스콜피언스’의 음악을 들은 후 밴드 음악이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스쿨 밴드에 들어갔죠.
그 밴드 이름 기억나세요?
기범 ‘reverof(레베로프)’라는 밴드였어요. 영어인데, 호프집 이름 같죠? 창단 멤버 선배한테 대체 뜻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forever’를 거꾸로 한 거더라고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사실 밴드를 시작한 것과 ‘음악이 내 길이다’라는 것 사이에는 시점 차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느낌은 언제 받았어요?
심지 주변에 클래식하는 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사춘기가 되면 반항심이 생기잖아요. 그때 록 음악으로 빠지게 됐죠.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자연스럽게 음악이 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을 부모님께 들려드리면 뭐라 말씀하세요?
심지 저희 부모님이 음악을 정말 좋아하세요. 그렇다 해도 지금 저희가 하는 음악을 이해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잖아요. 하지만 아들이 뭔가 열심히 하고, 어렸을 때부터 흔들리지 않고 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음악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결성 당시 (음악적으로) 부산과 서울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심지 10년 전에는 인디신에서 부산 밴드가 강세였어요. 서울에서는 크라잉넛, 노브레인 같은 팀이 있었는데 부산 밴드들도 뒤지지 않았죠. 레이니썬, 앤 등등. 그래서 사람들에게 ‘부산 밴드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자기 돈으로 처음 샀던 앨범 기억나세요?
혜승 저는 ‘라이온 킹’ OST랑 건즈 앤 로지즈 1집. 이건 CD고, 테이프로 산 건 뉴키즈온더블록이었어요.
헐랭 저는 ‘A-Ha’라는 밴드의 음반이었어요. 마이클 잭슨도 샀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는 CD가 없었어요. 아마 고등학교 때 CD가 나왔을 거예요.
기범 저는 이문세 앨범, 글렌 메데이로스 앨범. 구입하기도 했지만 가끔 훔치기도 했어요. 제가 대도였습니다, 대도. 걸려서 쌍코피도 터지고 그랬죠.
헐랭 그러고 보니 옛날에 음반 훔치는 애들 정말 많았어.
그게 주로 팀으로 투입되잖아요. 주인 눈 돌리는 역할을 맡는 아이랑 실행하는 아이랑.
심지 기자님은 전략적으로 하셨군요. 저는 도둑질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데, 어렸을 때 룰라 3집을 훔친 적이 있긴 해요. 그런데 그건 도둑질 축에도 못 끼더군요. (기범과 헐랭을 가리켰다.)
기범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트럭에 있는 배 한 박스를 훔쳤어요. 성공했죠. 하지만 집에 칼이 없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애들이 숟가락으로 배를 퍼먹고 있고 그랬죠. 이게 록 하는 사람들의 삶인가 싶기도 하고, 기득권에 대한 저항인가 싶었죠. 지금은 반성하고 있습니다.
심지 지금은 손 뗐습니다. 청산했습니다. 믿어주세요.
피아의 에너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죠. 피아는 인디 밴드인가요, 오버그라운드(이하 오버) 밴드인가요?
기범 우리나라에서는 인기가 좀 있으면 오버고, 인기가 없으면 인디라고 하는 것 같아요. 사실은 그게 아니죠. 저희는 음악을 만드는 것까지는 인디고, 홍보나 마케팅은 메이저고, 위치는… 애매하네요.
헐랭 제 생각에는 ‘인디에서 오버로 발 하나 걸친 정도’가 피아가 아닐까 싶군요.
어떤 분들은 인디를 ‘콘텐츠를 만들 때 상업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얼마나 자기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느냐’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더군요.
심지 그 기준이라면 저희는 확실히 인디가 맞아요. 저희 목소리 100% 담고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평소 ‘우리가 인디인지 오버인지’에 대해 전혀 고민 안 해요. 저희뿐 아니라 다른 뮤지션들도 그럴걸요. 외부에서 그런 개념들을 만들어서 대입하는 것 같아요. 정작 음악하는 사람들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우문현답이네요. 질문을 돌려서, 그분 얘기를 안 할 수 없네요. 피아에게 어떤 존재죠? (여기서 ‘그분’은 서태지다. 피아 멤버들은 그를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심지 은인 같은 존재죠. 어떻게 보면 그분 때문에 지금까지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동경의 대상이었고요.
헐랭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계기이기도 했으니까요. 굉장한 완벽주의자셨어요. 음악적으로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살피셨어요.
같이 음악하면서 어땠어요?
심지 워낙 큰 분이셨잖아요. 꿈같았어요. 아마 다들 그런 느낌이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것이 티가 나면 안 되니까, 헐랭 형이 진두지휘하면서 편한 분위기를 이끌었죠. 저희 공연 때는 대기실에 항상 찾아와서 응원해주시고 그랬어요.
영혼이 살아 있는 밴드
밴드 ‘피아’ 자랑을 한다면?
기범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밴드 중에 지금도 활동하는 밴드가 그리 많지 않더군요. 지금까지 음악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 해도 큰 자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단순히 맥박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위치를 지키면서 우리 색깔을 내고 있다는 점이 또 다른 자랑이죠.
피아와 가장 가까이 계시는 대표님(정승일 윈원엔터테인먼트 대표)께도 여쭤볼게요. 지금까지 많은 뮤지션을 접하셨을 텐데 그들과 ‘피아’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요.
정승일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사람으로서의 모습과 뮤지션으로서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나는 아티스트들이 있어요. 그런데 피아는 그렇지 않아요. 뮤지션임이 확실한데 보통 사람들처럼 따스한 인간미가 있어요. 그저 직업만 다른 거예요. 그게 너무 멋있어요.
제3자라고 생각하고 ‘피아’를 평가한다면?
혜승 ‘시끄럽다’? 아무래도 밴드 음악이다 보니까. 그런데 자주 보다 보면 ‘잘하네’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연말 단독 공연이 예정돼 있잖아요. 어떤 공연을 꾸미고 싶은가요?
기범 3년 만에 지방도 앨범 내고 가는 거예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많은 분들께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어요.
심지 뜨겁게 태워보려고요. 연말이기도 하니까.
제가 인터뷰 때마다 드리는 마지막 질문이 있어요. 행복하세요?
혜승 무조건 예스.
헐랭 저도 행복합니다.
심지 저도 예스인 것 같아요. 평소 ‘행복’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것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루고 싶은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까요.
기범 저도 행복해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에 만족해요.
![[스타와 커피 한 잔] 원숙미 속의 날것](https://img.hankyung.com/photo/202103/AD.25680593.1.jpg)
‘2011 Christmas Tour Concert’
-12월 23일 20:00 광주 네버마인드
-12월 24일 19:00 대구 헤비
-12월 25일 17:00 부산 인터플레이
-12월 30일 20:00 대전 인스카이
-12월 31일 19:00 서울 상상마당
글 양충모 기자 gaddjun@hankyung.com│사진제공 윈원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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