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효찬의 ‘인문학이 에너지다’

“고 은 시인의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이 가을에 읊조릴 만한 시… 주말에 정호승 시인의 ‘밥값’을 읽었다.”(2010년 11월 4일)

“창작 활동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헤밍웨이는 ‘여하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는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2011년 3월 5일)
며칠 전 소포가 배달됐다. 뜯어보니 ‘정보곳간 즐겨찾기’라는 제목의 메모 노트였다. 오경수 롯데정보통신 사장이 보낸 것이다. 오 대표는 수년 전부터 이런 제목의 노트를 지인들에게 보내는데 이번에는 메모 노트로 바뀌었다. 그는 메모 노트에 CEO로 바쁜 와중에 쓴 글들을 출력해 오려붙였다. 모두 수작업이어서 그 열의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위의 글들은 여기에 담겨 있는 인상적인 구절을 옮겨 본 것이다.

겉표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앨빈 토플러도 무용지식(Obsoledge)을 버리고 참지식(Knowledge)으로 우리들의 암묵지(暗 默知)에 차곡차곡 담아 놓으라고 합니다. 화두가 생길 때마다 가끔씩 들춰 보시길 기대합니다.”

여기서 암묵지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영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화학자인 마이클 폴러니가 구분한 지식의 한 종류이다. 폴러니는 지식을 암묵지(암묵적 지식)와 명시지(명시적 지식) 또는 형식지(形式知)로 구분한다.

암묵지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습득하여 개인에게 체화돼 있지만 언어나 문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을 말한다. 오랜 경험이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득한 지식이나 노하우가 여기에 속한다. 명시지는 문서화 또는 데이터화된 지식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고)

오 대표가 이런 구절을 겉표지에 넣은 것은 바로 암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일 게다. 어쩌면 암묵지는 직관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 창의적 사고의 샘이라고 할 수 있다. 암묵지가 많이 저장될수록 그 사람의 내면은 깊어질 것이다. 말하자면 지식이 체화된 상태의 ‘내공’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내공은 지속적으로 독서를 하여 건진 콘텐츠들에 달려 있다.

움베르토 에코가 쓴 ‘젊은 소설가의 고백’을 보면 콘텐츠의 깊이가 글쓰기의 내공을 결정함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를 어떻게 쓸 수 있었는지 그 속살과 같은 비밀을 들려준다. 애당초 학자였던 에코는 소설가의 길을 걷지 않았는데 소위 초대박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 비결은 바로 ‘콘텐츠 내공’이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 이미 소설을 이루는 대부분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8년 초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한 친구가 에코에게 단편 추리소설을 비소설가들(철학자·사회학자·정치인 등)에게 의뢰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시 에코는 창작에 관심이 없으며 자연스러운 대화체 글을 쓰는 데는 소질이 없다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 에코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책상 서랍을 뒤져 그 전해에 대충 써놓은 글을 찾았다.

수도사들의 이름 몇 개를 적어둔 종이였다. 그 글은 그의 마음속 내밀한 곳에서 소설에 쓸 아이디어가 이미 자라고 있었다는 뜻이었지만 당시에는 스스로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그 시점에 떠올랐던 생각은 어떤 책을 읽든 수도사가 독살당하는 얘기이면 좋겠다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에코는 ‘장미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소설이든 시든 번뜩이는 영감보다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준비하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장미의 이름’을 완성하는 데는 불과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중세 시대에 대해 더 연구할 필요가 없었다는 단순한 이유 덕분이었다. 즉 에코는 이미 중세에 대해 폭넓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고 그 후로도 중세 연구를 더 이어가고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도미니크회 수사이자 신학자로 종래의 신 중심의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상대적 자율을 확립했으며 평생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에 몰두해 생각을 ‘신학대전’을 완성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 생각을 달리한다. 플라톤은 동물들 중 인간만이 가진 특수한 요소인 ‘지성’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긴 반면 눈에 보이는 실물은 불확실한 존재로서 생각 속에 존재하는 개념들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

시시각각 제멋대로 변하는 감정은 오감으로 느끼는 실물보다 낮게 평가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중세 기독교는 인간의 감정을 억제시키고 경건한 침묵과 기도에 가치를 두는 종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비극이나 희극을 통해 느끼게 되는 카타르시스를 소중하게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 ‘콘텐츠’를 확보하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와 르네상스의 경계를 시대 배경으로 한다. 호르헤 수도사는 중세기의 경건함과 엄숙함을 가장 큰 가치로 삼고 사는 수도사인데 감성을 가치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헤픈 웃음을 허용하지 않는 플라톤 철학과는 반대 입장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수도원에 들어온다.

중세의 수호자인 호르헤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희극(웃음)에 젊은 수도사들이 물드는 것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보는 수도사들은 그가 책장에 묻어둔 독약으로 인해 죽게 된다.

에코는 이 소설을 쓰기 전 몇 년 동안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과 고딕 양식의 대성당 등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마치 수십 년 동안 중세에 관한 정보만 모아두었던 널찍한 벽장을 여는 것 같았다.

필요한 모든 자료가 내 코앞에 있었고, 나는 단지 고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에코는 자료를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을 쓸 때는 상황이 달랐다. 미리 자료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푸코의 진자’를 쓸 때는 8년이 걸렸고 ‘전날의 섬’과 ‘바우돌리노’는 6년이 걸렸다고 한다.

에코는 “내가 문학적 잉태의 시기에 어떤 일을 할까. 서류를 수집한다”라고 잘라 말한다. 말하자면 이것이 그의 글쓰기 비법이다. 글을 쓰기 전에 이미 글쓰기에 필요한 재료를 확보하고 세밀하게 그려보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지도를 그리고 건물들의 배치를 눈여겨보기도 한다. ‘전날의 섬’을 쓸 때는 배의 구조를 공부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스케치한다. ‘장미의 이름’의 경우에는 등장하는 수도사들을 모두 초상화로 만들었다. 나는 이렇게 소설을 준비하는 몇 해를 일종의 마법의 성에서, 달리 표현하면 자폐의 바다 안에서 빠져 지낸다.” 그는 “중세에 관한 글을 쓸 때에도 거리에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그 색상이 인상에 남으면 그런 경험을 노트에 기록하거나 머리에 기억해두었다가 묘사를 세밀화하는 데 참고한다”고 말한다.

또한 밤늦게 파리를 가로지르는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숱한 밤을 새벽 두세 시쯤 파리를 배회하며 휴대용 녹음기에 그가 본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한다.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이런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에코의 글쓰기 비밀은 사전에 확보하는 ‘콘텐츠’에 있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이는 오경수 대표가 다산의 유적이 있는 강진에 갔다가 기념관 옆에 있는 다산의 어록을 담은 비석을 보고 메모한 글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다면 다산의 말처럼 동트기 전에 일어나 자신만의 콘텐츠 가꾸기에 나서라. 그러면 언젠가는 에코처럼 콘텐츠의 최고수, 글쓰기의 최고수가 되고 가슴에 품은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기자를 거쳐 현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 겸 자녀경영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 다수의 책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