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와의 만남

인생은 두 부류다. 뚜렷한 꿈과 목표를 찾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흔히 ‘목표가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여기 ‘꿈을 찾지 못해도 인생은 아름답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서른, 난 아직도’의 저자

박혜아 씨다. 그는 누가 봐도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미국 듀크대 MBA를 거쳐 현재 미국 은행 웰스파고의 바이스 프레지던트로 홍콩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 그가 ‘꿈이 없어 방황했다’고 한다. “인생은 꿈을 찾는 과정이기에 도전의 연속이요, 무한한 자신의 가능성을 끝없이 시험해볼 수 있는 무대”라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 난 아직도 꿈을 찾아 달린다
박혜아 씨의 프로필은 화려하다. 미국 명문 MBA를 딴 후 홍콩에서 리더로 일하고 있다. 심지어 예쁘다. ‘엄친딸’이 따로 없다. 인터뷰는 그가 출장 차 홍콩에서 잠시 귀국한 사이에 이뤄졌다. 웰스파고의 금융 상품을 한국을 비롯해 대만, 일본 등에 판매하는 게 주된 업무. 한국에서 미국과 홍콩으로, 다시 아시아 곳곳으로 세계를 누빈다. 호텔에서 은행으로 성공적인 이직을 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은행의 구조조정에서도 살아남은 능력자라고 요약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뿌연 안개 같던 현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커리어에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암울했던 현실이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무슨 말일까. 화려한 이력만 봐서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 같은데 말이다. 박 씨는 20대 청춘에게 할 말이 많다고 했다. 자신이 방황하는 청춘이었고, 꿈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장본인이었다며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저를 활활 타오르게 할 꿈이 뭔지를 찾아 헤맸어요. 김연아, 박태환 선수처럼 일찍 자신만의 길을 찾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서 한없이 부러워했죠. 저에게는 그 꿈을 찾는 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어요.”

대학에만 들어가면 저절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줄 알았지만, 점수에 맞춰 선택한 전공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면 눈이 좀 열릴까 해서 교환학생도 다녀왔는데 해외에서도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왜 나는 모든 열정을 쏟을 만한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더 받았어요.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도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있었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승부욕도 있었다.
“이것저것 하다 보면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다양한 분야의 일을 접해봤어요. 방송국에서 인턴 PD도 했고, 마지막 학기에는 학점을 꽉 채워 들으면서 교생 실습을 나갔어요. 영어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땄고요. 요즘으로 치면 제가 스펙 관리의 대표 주자였네요.(웃음)”

박 씨가 방송국 인턴십에 지원할 때 자기소개서에 쓴 말은 ‘미칠 것이 필요합니다’였다. 하지만 정작 미치지는 못했다고 한다.

“함께 일했던 인턴 PD들이 모두 끼가 넘치고 열심히 했는데요, 저는 학점 관리도 포기할 수 없어서 올인을 하지 못했어요. 현실적인 문제들을 생각하면서 한쪽으로만 열정을 쏟을 수 없었던 게 또 다른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나름 열심히 살았고, 학점도 잘 받았지만 취업문이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이때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봤다.

“1997년 2월 졸업을 했는데 그 뒤 IMF 외환위기가 왔어요. 숱하게 입사지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떨어졌죠. 이전엔 탈락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불합격 통보를 받으니까 ‘나는 루저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적성이며 꿈이며 모두 사치 같았어요. 합격하는 곳 아무 데나 가겠다는 심정이었죠.”

수십 차례 탈락을 경험한 그때는 “그저 열심히 사는 것으로 고통을 인내했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99번 헛차기를 하면 한 번은 제대로 한다’는 그의 지론이 통한 것일까. 한 대기업의 호텔에서 그를 받아줬다. 동시에 한 국제대학원에서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박 씨는 두 가지를 동시에 선택했다.

“어차피 명확한 인생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두 가지 길 모두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봤어요. 2년 동안 휴가를 하루도 못 쓸 만큼 바빠서 몸은 힘들었지만 매일 동기 부여가 되고 기대가 됐어요. ‘지금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또 다른 길이 열릴 것이다’라는 희망을 가졌죠.”

직장 생활 3년차, 일이 안정돼갈 즈음 박 씨는 10년 후를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도전을 했다. 이젠 정말 ‘올인’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MBA를 준비했어요. 현실 도피나 환상은 아닐까 많이 생각했지만 커리어가 고민될 때 돌파구를 찾아야겠다 싶어서 과감히 시작했죠. 학력과 경력 모든 것을 계산해서 확률을 따져봤고 최소 어느 대학에 가야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인터뷰] 난 아직도 꿈을 찾아 달린다
20대 후반의 나이. 안정적인 삶을 동경할 법한 그때에 나 홀로 유학을 떠나는 것, 그 두려움을 이긴 힘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저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으려고 해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때는 무엇을 향해 달려갈 때예요. 목표에 도달했다는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요. 정체돼 있지 않은 역동적인 매일의 삶에서요.”

박 씨는 미국 톱 10의 MBA에 합격한 이후에도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진 않았다고 했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영어가 발목을 잡았고, 인턴십에 지원해서 여러 번 떨어졌다. 그래도 역시 ‘99번의 헛차기 후 한 번은 제대로 찬다’는 생각으로 달렸고, 미국인도 들어가기 힘든 글로벌 은행에 당당히 입사를 했다. 그 후 8년 만에 바이스 프레지던트 자리에까지 올랐다.

“일찍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한 우물만 파는 사람, 부럽죠. 하지만 세상엔 꿈을 찾은 사람보다 찾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그게 실패한 인생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꿈을 찾지 못했기에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인생을 더 재밌게 살 수 있어요. 이 세상은 무궁무진하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 다양함을 어떻게 요리해서 즐겨볼까를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가능성과 기회’라는 꿈을 찾는 여정은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 그래서 그의 삶은 늘 역동적이고 열정적이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사는 박 씨의 꿈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박혜아

[인터뷰] 난 아직도 꿈을 찾아 달린다
웰스파고 바이스 프레지던트(미국 은행)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졸업
프라자호텔에서 3년간 근무
미국 듀크대 MBA
글로벌 은행 와코비아 근무
현재 웰스파고 국제부 아시아 본사
바이스 프레지던트


글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