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 자퇴, 술·담배는 기본이던 ‘날라리’가 검정고시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더니 수능 375점(400점 만점), 실업계 고등학교 최초 골든벨 주인공, 명문대 졸업 후 현재 영국에서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되었다면?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니다. 암울한 10대를 보냈지만 ‘꿈’이라는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 김수영 씨의 인생 역전 스토리다. 가출 당시 정말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듣고 ‘컴백홈’했다는 그를 만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Interview] 꿈, 도전 그리고 믿음…“불가능이란 없잖아요”
김수영 씨는 현재 다국적 에너지 회사 로열더치쉘 영국 본사에서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마침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열흘간 서울에 머물면서 인터뷰, 강연회, TV 생방송 출연 등으로 하루도 편히 쉬는 날이 없는 듯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바쁘게 만들었을까.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사라져라, 차라리 가출을 해라’는 말을 들었던 문제아가 지금은 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잖아요. 그게 이유가 아닐까요?”

10여 년 전 KBS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등학교 최초로 골든벨을 울린 학생. 많은 사람이 그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를 봐서 실업계 고등학교(여수정보과학고)에 갔어요. 나조차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때는 진흙탕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진흙탕’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의 10대는 과연 어땠을까.

“초등학교 때 왕따를 당했고 중학교 때는 말 그대로 문제아였어요. 튀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던 것 같아요. 경찰서에 들락날락했으니까요. 술·담배는 기본이었죠.”

우연이었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관련 뉴스에서 현지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순간, 여태껏 자신의 방황이 사치라고 느껴졌다. ‘아,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구나. 계속 이렇게 지내면 내 인생이 너무 암울하겠구나.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단다.

그렇게 처음 꿈을 갖게 됐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 진학을 목표로 정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 결과는 전교 1등. 딱 2주 앉아서 공부한 결과였다.

“실업계잖아요. 다들 공부 안 하니까 전교 1등 한 거예요. 전국 모의고사 점수는 110점이었어요. 완전 엉망이었죠. 고2 때는 210점이 나오더라고요. 1년간 공부에 매진하니 지방대 갈까 말까 한 성적이 나왔어요. 그 정도 수준이었어요.”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학비가 면제되는 전교 1등을 놓칠 수 없었다고. 덕분에 고3 내내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그래도 대학 진학에 대해서는 다들 비웃었다. ‘현실을 알아라,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등등. 선생님들도 그저 웃으셨다고.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만을 보고 판단해요. 아무도 내 꿈을 응원해주지 않았어요. 그게 참 야속하고 억울했어요.”

그는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 결과 수능 375점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받았고, 졸업 직전 학교에서 열린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 고등학교 최초로 당당히 골든벨을 울렸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진정 원하는 바를 알지 못했다. 리서치회사 조사원, 속기사, 인터넷 강사 등 각종 아르바이트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허함만 커졌다고 한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그저 남들 눈에 비치는 모습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란 듯이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실업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어느 회사 들어갔다더라’ 그런 말이 듣고 싶었으니까요.”

졸업 후 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당당히 입사했다. 하지만 입사 후 정기검진에서 작은 암세포가 발견됐고 그 정신적 충격에 방황을 하게 됐다.

“수술로 금방 완치됐어요. 하지만 그 충격이 너무 컸어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거죠.”

‘전화위복’이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그는 73가지 꿈에 대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실행에 옮기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에 리스트를 작성하고 만 5년이 지난 현재 32개를 달성했다. 그러고는 무작정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맨땅에 헤딩’하기를 반복했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다.
[Interview] 꿈, 도전 그리고 믿음…“불가능이란 없잖아요”
“영국에 와서 100개 회사에서 떨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면접의 달인이 됐어요(웃음). 그래도 길은 열리더라고요. 지금 다니는 회사도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어요. 사람들의 조언과 충고를 겸허히 듣고 인맥을 형성한 결과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어요.”

그는 그 경험들을 살려 해외취업 관련 블로그(blog.naver.com/ cyberelf00)를 운영하고 있다. 그 ‘바닥’에선 이미 인기 ‘멘토’인 셈.

힘들 때마다 그는 언젠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하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의 상상이 현실이 됐고 불가능이란 없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하고 싶다’ ‘할 수 있다’ ‘하겠다’ 그 경계선은 ‘믿음’이에요.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 저는 그 믿음이 없어서 너무 고생했어요. 그걸 극복하니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믿음이 생기려면 먼저 말을 하는 게 중요해요. ‘뭘 하고 싶다’고 자꾸 말할수록 기회가 찾아온다는 걸 경험했거든요.”

파란만장했던 10대와 20대를 보내고 이제 다가올 그의 삶은 어떻게 꾸며질까 궁금했다.

“아직 못해본 게 너무 많아요.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도전하고 경험하고 싶어요. 인생의 1/3은 한국에서 살았으니까 1/3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나머지 1/3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살 거예요. 이제 런던에서 만 5년 살았으니 더는 미련 없어요. 내년에는 세계 일주를 하고 남미에 정착할까 해요. 안주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김수영

1981년 생
중학교 자퇴
검정고시로 실업계 고등학교 입학
실업계 고등학교 최초 골든벨(KBS) 주인공
연세대 영문·경영학 전공
골드만삭스 입사
현재 로열더치쉘 영국 본사 근무


글 한상미 기자 hsm@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