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되기

르누아르, 구스타프 클림트, 페르난도 보테로, 반 고흐, 로댕…. 최근 2~3년 사이 한국을 찾은 세계 미술계의 ‘전설’들이다. 파리, 뉴욕의 미술관에나 가야 볼 수 있던 작품을 이제는 서울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다.

아티스트의 명성이나 관람객 규모가 보통 전시회와는 차원이 다르다 해서 ‘블록버스터 전시회’라 불린다. 2008년 열렸던 반 고흐전엔 무려 82만 명이 찾아 국내 전시 사상 최다 관람객 기록을 세웠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이가 바로 큐레이터다. 예술 작품·작가와 관람객을 이어주고, 전시의 처음과 끝을 모두 건사하는 사람이다.
[취업 특강] 작가-관람객 잇는 ‘다리’…멀티플레이어 자질 필요
한국에서 큐레이터는 화려한 직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드라마, 영화에 등장하는 큐레이터는 하나같이 미모의 재원들이다. 명품 의상, 우아한 미소, 상류층 네트워크…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신정아 씨 역시 이런 이미지와 연결돼 있을 정도다.

하지만 23년 경력의 감윤조 예술의전당 큐레이터는 “모르는 소리 말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우아하게만 보이는 큐레이터가 있다면 그는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멋있게 보이지요? 그 이면에는 수많은 단계의 일이 쌓여 있습니다. 좋은 기획을 위해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한 건 기본이고, 실제 전시에선 기획부터 섭외, 개막, 폐막까지 일일이 체크해야 합니다. 또 도록 제작, 전시장 레이아웃, 홍보, 인터뷰 등 크고 작은 일이 늘 따라다니죠. 전시에 관한 모든 일에 관여합니다. 하려고 들면 끝이 없는 게 큐레이터의 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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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위에서 우아하게만 보이는 백조가 물 밑에선 쉼 없이 발을 움직이며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외형적인 모습 뒤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충이 숨어 있는 셈이다.

큐레이터는 원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역사, 예술, 과학 등의 자료를 수집·보존·연구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학예연구관(學藝硏究官), 학예사(學藝士)라고도 한다.

현대에 와서 박물관,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이 확대되면서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전시 기획자라는 뜻이 더해졌다. 주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관리하며 소장품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를 하는 게 큐레이터의 일이라고 보면 된다.

큐레이터는 박물관, 미술관의 학예사에게 붙이는 직함이다.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 화랑, 즉 갤러리에서 일하는 기획자는 ‘갤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게 맞다. 세계적인 박물관, 미술관과의 협상을 통해 국내에 전시를 유치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전시 커미셔너’ ‘에이전트’다. 최근에는 지앤씨미디어 등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유치하는 전시 커미셔너 혹은 에이전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공공 미술관들도 이들과 손발을 맞춘다.

큐레이터는 예술 관련 전공자에게 매력적인 직업이다. 업무 특성상 고고학, 미학, 미술사학, 회화 등의 전공자가 많이 진출한다. 대학원에서 예술경영, 박물관학, 미술관학, 문화재학, 민속학 등을 전공한 사람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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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 큐레이터는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려면 실기와 이론을 겸비해야 한다”면서 “전공 제한 등 진입 장벽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예술 관련 분야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 활동하는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큐레이터는 전시회를 통해 보람과 성취감을 느낀다. 전시회 공간은 큐레이터의 놀이터이자 전쟁터. 감 큐레이터의 경우 지난 2003년부터 체험하는 전시회인 ‘미술과 놀이’ 시리즈를 기획, 한 전시회당 평균 7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올해는 ‘2010 미술과 놀이-네버랜드’를 선보였다. 그는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적 이상과 관람객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게 큐레이터의 존재 이유”라면서 “선진국에선 전시회마다 큐레이터가 누구인지 명시될 만큼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 전망은 어떨까. 10여 년 전부터 블록버스터급 전시회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문이 좁고 일의 속성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감 큐레이터는 “흔히 큐레이터 등용문으로 알고 있는 사설 갤러리들의 80~90%는 근무 환경이 무척 열악하다”면서 “하지만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큐레이터 수요도 많아지고 있어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취업 특강] 작가-관람객 잇는 ‘다리’…멀티플레이어 자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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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