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신입사원들의 생생토크] 열린 문화 뒤 치열한 경쟁…‘중요한 건 영어가 아냐’
외국계 기업은 어떤 사람을 뽑을까. 토익 900점 이상, 어학연수, 해외 유학 등 영어에 관한 스펙이 먼저 떠오른다. 외국계라는 이름표 때문에 우선 영어 실력이 뛰어나야 할 것만 같다.

정말 그럴까. 내로라는 외국계 기업 입사에 성공한 신입사원들의 생각은 좀 달랐다. 그들은 “영어보다 훨씬 중요한 게 따로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 세계 젊은이가 선망하는 유수의 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새내기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외국계 기업 입사 요령, 신입사원이 갖춰야 할 자세, 회사 분위기 등 취업박람회에서는 들을 수 없는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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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외국계 기업의 문화는 상당히 자유롭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실제 직장 생활을 해보니 어떻던가요?


민보라(씨티) 씨티은행은 다양성을 강조해요. 이를 위해 다양성 위원회까지 있죠. 같이 영화도 보고 문화 활동도 하고 있어요. 특히 인권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해요. 회사 내에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서 여성위원회도 있답니다.

더 공정한 기업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죠. 올해 초에는 모든 직원이 자격증을 하나씩 따야 했어요. 스쿠버다이빙처럼 독특하면 더욱 좋죠. 그래서인지 문화가 보수적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최종환(후지제록스) 원래 영업 조직은 상당히 보수적인 곳이잖아요. 남자들만 있다 보니 군대식 문화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후지제록스는 개방적인 편이에요.

예를 들어 회의를 할 때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의견을 말하지 않아요. 신입사원이라도 순서에 상관없이 의견을 말할 수 있죠. 신입사원이 부장님께 건의를 드리면 바로 다음날 건의사항대로 일이 진행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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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민(피앤지) 듣고 보니 후지제록스와 피앤지는 업무 방식이 비슷하네요. 대부분의 기업은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일을 시켜서 업무가 진행됩니다. 피앤지는 달라요. 밑에서부터 일을 만들어 올리는 방식이에요. 신입사원들이 선배에게 일을 시킨다고 할 정도죠.

그에 따른 교육도 많이 이뤄지는 편이에요. ‘Manage your Manager’라는 교육도 있어요. ‘당신의 상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교육해요. 어제 내가 교육자였다면 오늘은 내가 교육을 받아요. 교육을 위한 교육도 있어요.

최은정(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는 굉장히 캐주얼해요. 임원이라고 해서 무게 잡는 것도 없어요. 인턴부터 상무에 이르기까지 정말 허물없이 지내요. 오늘 같은 경우도 회의를 하면서 함께 떡볶이를 먹었어요.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임원한테 이메일을 보내서 “상무님, 내일 오전 8시에 시간 괜찮으세요”라며 약속을 잡기도 해요. 상무님과 함께 아침에 곰탕 먹으면서 이야기를 한 적도 있어요. 회사 내에서 마주치면 “상무님 오늘 예쁘시네요”라는 말도 서슴없이 건넬 수 있답니다.

보라(씨티)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새로 들어오신 부장님이 강조했던 것이 있어요. 영어로 이메일 쓸 때는 ‘Dear’를 붙일 필요 없고 이름에 이니셜만 붙여서 보내라고 말했어요. 편하게 막 보내라고 하시더군요.

권병민(피앤지) 이런 경우도 있어요. 같이 입사한 동기 중에 대기업에서 옮겨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입사 첫날 쇼크를 받았대요. 다름이 아니라 직원들이 상무님의 이름을 ‘oo님’으로 불렀기 때문이죠. 대기업에서는 눈도 못 마주칠 직급인데 이름을 부르니까 일주일 동안 적응을 못했다고 말하더라고요. 상무님도 직함으로 부르면 싫어하시더라고요.

민보라(씨티) 외국계 기업 중에서 30% 정도는 ‘누구누구’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일을 하다 보면 ‘대리님, 과장님’처럼 직함을 부를 때가 많잖아요. 하지만 막상 직함에 대해 물으면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우리는 전부 매니저로 부르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이런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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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한 기업에 다니고 있는데요.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권병민(피앤지) 대학 시절 참여했던 소규모 포럼에서 피앤지에 다니는 여선배를 만나게 됐어요. 그분은 컨설턴트 3년, 한국IBM에서 2년, 대학원 2년을 마치고 피앤지에 입사했습니다.

피앤지는 무조건 신입부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물었죠. 신입사원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땠냐고요. 그랬더니 꿈에 그리던 직업을 찾았다며 상관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때부터 피앤지에 꽂혔죠.

최은정(마이크로소프트) 회사 입사하기 전에 33개국 배낭여행을 해봤어요. 제3세계 위주로요. 미얀마, 네팔, 페루, 볼리비아, 우즈베키스탄, 세르비아 등을 다녔어요. 돈이 없어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꿈도 못 꿨죠. 과외,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5대양 6대주를 돌았어요. 여행을 하면서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되도록이면 세계를 무대로 뛰는 다국적 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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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환(후지제록스) 후지제록스를 선택한 이유는 순환 보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에요. 싱가포르, 상하이 등 해외로 나갈 수 있는 기회도 있어서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는 홍보 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후지제록스의 모든 신입사원은 영업부터 일을 시작하더라고요. 회사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직무니까요. 막상 일을 해보니 영업도 홍보의 연속이더군요.

민보라(씨티) 사실 씨티은행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H기업에 합격해 연수에 들어가 있었거든요. 운동복도 지급받고 숙소도 배정받고요. 부재중 전화가 와 있어서 전화를 걸어보니까 씨티은행에 합격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짐 싸서 나왔어요.

씨티은행을 선택한 것은 여자한테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금융계가 차별이 덜하고 게다가 외국계니까요. 지금은 유명순 부행장님을 롤 모델(role model)로 삼고 있어요. 그분을 보면서 나도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권병민(피앤지) 힘든 순간마다 동기를 주는 것이 외국계 기업의 특징 같아요. 돈을 더 주기보다는 선배들이 나서서 동기를 부여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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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최종환(후지제록스) 영업과 홍보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싶어요. 싱가포르나 상하이 쪽에서도 일하고 싶고요. 장기적으로는 한국식 마케팅 허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주어진 일에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권병민(피앤지) 어떠한 무대에서도 내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글로벌 마케팅 리더가 되고 싶어요. 한마디로 다국적 기업의 CEO죠. 사실 피앤지 직원이라면 누구나 CEO를 꿈꾸고 있어요.

회사 시스템이 그것을 가능케 해주니까요. 어려울수록 재미를 느끼는 성격이라서 이머징(emerging) 마켓 쪽으로도 진출하고 싶습니다. 꿈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최은정(마이크로소프트) 단기적으로는 IT업계를 두루두루 경험하고 싶고, 장기적으로는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고 싶어요. 특히 IT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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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보라(씨티) 좀 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후배들이 본받을 수 있는 여성 금융인이 되고 싶습니다. 유명순 부행장님처럼 후배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어요. 여자도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요.

진행 입사하고 보니 ‘우리 회사가 원하는 인재는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감이 오지 않습니까? 살짝 귀띔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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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보라(씨티)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 같아요. 외국계 기업은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속에서는 경쟁이 정말 치열하거든요. 그 경쟁에 기꺼이 참여해 더 많은 기회를 가지려는 사람을 원하는 것 같아요.

스펙은 어느 정도 요구하지만 평균 이상만 되면 더 이상 기준이 되지 않아요. 자신의 열의나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 입사 성공의 관건인 것 같아요. 특히 외국계는 몇 명 안 뽑기로 유명하잖아요. 많이 안 뽑으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을 충분히 알고 뽑지요.

최종환(후지제록스) 후지제록스의 순환 보직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주변에도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대학 시절에 기본적인 영어 성적, 학점을 잘 받아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다양한 활동을 했는지, 지원자가 도전했던 일들이 무엇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최은정(마이크로소프트) 열정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조건 같아요.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열정과 함께 두 가지를 더 보는데, 하나는 다양한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대한 ‘더듬이’예요. 변화를 빠르게 수용하고 스스로를 트랜스폼하려면 다양한 경험과 트렌드에 대한 ‘촉’이 필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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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이나 스펙의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게 사실인가요?

최은정(마이크로소프트)
전공이나 스펙은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아요. 1000명이 이력서를 내면 아마 600명은 똑같을 거예요. 스펙에서는 전혀 차별을 느낄 수 없는 것 같아요. 교환학생, 어학연수, 인턴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없어요.

대부분 토익 850점이 넘어요. 정말 고만고만하니까 기업보고 뽑으라면 못 뽑을 것 같아요. 바꿔 말하면 스펙에 연연하지 말라는 거죠. 자신만의 차별화된 능력이나 스킬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기존 직장인에게는 없는 무언가를 보여줘야죠. 자신만의 젊은 감각을 어필하면 될 것 같아요.

권병민(피앤지) 피앤지에는 정말 심플한 원칙이 있어요. 한마디로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봅니다. 피앤지 홈페이지에 가면 세 가지 인재상이 나와요. ▲The Power of Minds ▲The Power of People ▲The Power of Agility예요. Minds는 분석적이고 전략적인 사고, People은 팀을 이끌 수 있는 리더십, Agility는 빠르게 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민첩성을 뜻합니다.

피앤지에서 요구하는 영어 능력은 필기 영어시험을 통과할 정도면 됩니다. 주변 사람 중에는 외국에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직원들도 많아요. 중요한 건 영어가 아니에요. 영어를 못하더라도 기업 인재상에 맞으면 무조건 뽑아요. 영어는 가르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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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환(후지제록스) 스펙에 얽매이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런 것들이 전부가 아닌 것 같아요. 스펙상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숫자를 어떻게 만들어갔는지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죠.

진행 취업준비생을 위한 당부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병민(피앤지) 영어점수에 집착하는 이가 많아요. 사실 그 영어점수로 원하는 기업에 붙으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 거예요. 안 올려놓으면 불안하니까 그런 거죠. 하지만 영어점수는 높은데 기업에 들어갈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오히려 이 점을 더 불안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는 자신의 열정을 찾아서 강하게 드라이브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다면 피앤지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해요.

최은정(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크로소프트에 들어오자마자 전 세계의 마케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전 세계의 인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를 회사 측에서 주선해준 셈이죠. 마이크로소프트는 글로벌한 인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용기를 갖고 자신만의 색을 살려서 지원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종환(후지제록스) 기업에 입사하기 전 자기가 그 안에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봤으면 해요. 회사가 자신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지, 사원을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해요. 그리고 더 나은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을 찾아야 합니다.

민보라(씨티) 씨티은행에서 밀고 있는 광고 문구가 있어요. “씨티에서 여러분의 꿈이 현실이 됩니다.” 보통 외국계 기업은 사원 교육에 열성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기회를 스스로 잡을 수 있는 열정,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오히려 기업 쪽에서 러브콜을 보내지 않을까요?

진행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정리 이재훈 인턴기자│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