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텍 임연철·이성주 연구원, 권나흔 사원

의료장비 전문업체인 바텍의 센서기술본부 개발팀에서 근무하는 임연철(위 사진 왼쪽) 씨는 미국에서 석사학위까지 마친 소위 ‘유학파’다. 그는 테네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의 대학 동창 중 상당수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업해 다니고 있다.

청년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누구나 대기업에 입사하길 희망하지만 정작 임 씨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대기업에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빗대어 설명했다.
[이래서 중소기업 택했다] “좋아하는 일 찾아 멀티플레이어 돼야죠.”
“대기업이 선진국이라면 중소기업은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은 선진국처럼 기본적인 시설이나 인프라 등이 이미 충분히 갖춰져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이런 것들이 아직은 미비한 상태여서 만들어 나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보는 거죠.

대기업에서 근무하면 몸은 편하겠죠. 하지만 저는 편안하게 주어진 상태에서 일하는 것보다 좀 힘들더라도 함께 뭔가를 만들어가면서 배워나가는 것을 훨씬 좋아합니다. 도전도 되고 재미도 있잖아요. 이런 점에서 바텍은 훌륭한 직장이죠.”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대기업에 들어갔다 곧 그만둔 친구들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어렵게 들어간 친구 녀석들이 2~3년 뒤 그만 다니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죠. 틀에 박힌 삶이 싫어졌다는 친구도 있었고 비전이 안 보여서 그만둔다는 친구도 있었고, 아무튼 이유는 다양했어요. 제가 보기엔 남들이 ‘대기업, 대기업’ 하니까 아무런 고민 없이 들어갔다가 입사 전에 생각했던 거랑 많이 달라서 견디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임 씨와 함께 센서기술본부에서 일하고 있는 이성주(사진 오른쪽) 씨는 자신이 좋아하면서 적성에도 맞는 일을 찾아 직장을 선택했다. 이 씨는 대학(연세대)에서 방사선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선 메디컬 이미징 공부도 마쳤다. 의료장비 전문기업인 바텍과는 소위 ‘궁합’이 맞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대학 동창 중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많은 친구가 삼성의료원이나 서울대병원, 현대아산병원 등 대형 병원에 들어가길 원하고 실제로 근무하는 친구도 적지 않아요.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까 그런 친구들의 선택을 뭐라고 할 마음은 없어요. 저는 첨단 의료장비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 적성에 딱 맞아요.

연구하느라 밤 11시까지 회사에 있을 때도 많지만 제가 좋아 선택한 일이라 불만이 없어요. 직장을 구하는 후배들이 회사의 크기나 지명도보다 ‘나와 이 일이 정말 맞나’를 먼저 생각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두 사람과 달리 해외사업본부 전략지원팀에서 근무하는 권나흔 씨는 전공이 무역학이다. 권 씨의 일은 연구개발직과 달리 의료장비를 해외시장에 알리고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권 씨가 꼽는 중소기업의 장점은 무엇보다 많은 일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 발전하기 위해선 스스로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기업에서 일한 경험은 없지만 주위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기업은 정해진 범위 내에서 자기 일만 파고든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서 중소기업은 한 사람이 여러 파트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스킬을 배워나가는 데 대기업보다 훨씬 유리한 것 같아요. 제가 학교에서 무역실무를 배웠지만 실제 기업에 들어와서 몸으로 배우는 것과는 다른 점이 적지 않더라고요. ‘아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그러면서 하나씩 배워나가는 거죠.”

“연봉·네임밸류 보다 중요한 것 택해”
[이래서 중소기업 택했다] “좋아하는 일 찾아 멀티플레이어 돼야죠.”
취업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구직자와 기업 간의 미스매칭, 소위 ‘눈높이’가 다른 데서 발생하는 문제가 적지 않다. 이미 직장을 구한 이들은 요즘 풍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제가 친구들보다 약간 먼저 취직한 편인데 모두 관심이 돈(연봉)에 있는 것 같아요. ‘너희 회사는 급여가 얼마나 되니?’ ‘복지후생은 대기업과 비교해서 어때?’ 이런 식이죠. 돈이나 복지후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 일을 통해 얼마나 배우고 클 수 있을까’ 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 젊으니까 돈은 나중에라도 더 많이 벌 수 있잖아요.”(권 씨)

권 씨는 아울러 구직자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 기업의 네임밸류를 지나치게 따져본다고 꼬집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졸업 후 취직이 안 돼 소위 ‘백수’ 생활을 하는 분이 있어요. 이분은 금융권, 그중에서도 은행에 가고 싶어하는데 다른 곳은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아요. 급여를 보거나 인지도를 봤을 때 다른 곳은 자기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말이죠. 물론 자신의 목표를 정하고 그곳에 올인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자신의 진로를 너무 제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 씨는 남들과 자신을 지나치게 비교하는 것에 대해 지적했다.

“남들도 저런 정도 직장에 다니는데 나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조금씩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런 태도보다 앞서도 얘기했듯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 씨의 이야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직자들이 직장을 구하고 있긴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를뿐더러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친구들을 찾기 어렵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고 가치를 느끼는 일을 찾아서 이쪽에 전력투구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고민을 하기보다 그 시간에 영어 성적이나 자격증 등 소위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물론 구직자들만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우리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어요.”
[이래서 중소기업 택했다] “좋아하는 일 찾아 멀티플레이어 돼야죠.”
김재창 기자 changs@kbizweek.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