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입사자 스펙 분석

올 4월 신입 직원을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20명의 직원을 뽑는데 무려 1만657명의 구직자가 지원한 것이다. 채용 경쟁률은 무려 533 대 1. 바늘구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경쟁률만 높은 데서 그치지 않는다. 지원자의 학력, 자격증 등 소위 ‘스펙’도 빵빵했다.
3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2008 건설인력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공개 모의 면접을 하고 있다./강은구기자 egkang@  2008.09.03
3일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린 '2008 건설인력 채용 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공개 모의 면접을 하고 있다./강은구기자 egkang@ 2008.09.03
지원자 중 석사학위 소지자는 546명, 박사학위 보유자도 7명이었다. 공인회계사, 감정평가사, 관세사, 세무사 등 다수의 자격증 소지자도 함께 지원했다. 토익 900점 이상 지원자는 2227명으로 전체 지원자의 21%를 차지했다. 950점 이상도 600명이 넘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관계자는 “워낙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 어떤 기준으로 신입 직원을 뽑아야 할지 막막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흔히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은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지위로 구직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2008년 1인당 평균 급여는 7083만 원이었으며 지난해는 6989만 원이었다.
[Special ReportⅠ] 토익 831점·평균 학점 3.71 ‘성실성’ 도 중요 항목
올 상반기 채용 전형을 마친 공기업들의 경쟁률은 가히 기록적이다. 부산항만공사가 559 대 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였으며 인천항만공사 289 대 1, 정책금융공사 170 대 1, 한국가스공사 75 대 1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공기업 취업에 성공하는 구직자들은 어떤 사람일까. 또 이들의 ‘스펙’은 어느 정도나 될까. 공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CAMPUS Job&Joy에서는 전국 50여 개 공기업과 80여 개 대학의 취업지도실, 취업 커뮤니티 ‘닥치고취업’ 등의 협조를 얻어 최근 2년 내 공기업 취업에 성공한 구직자 100명의 스펙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이 갖춘 ‘조건’을 알아봄으로써 공기업 신입사원의 ‘표준’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물론 이 표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회사마다 우선시하는 항목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특징 중 하나는 채용 시 일반 사기업과 달리 나이, 성별, 학력 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같은 ‘열린 채용’은 2004년부터 본격화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학력·나이 제한은 헌법상 평등권 침해라며 폐지를 권고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현재 공기업 대부분은 ‘열린 채용’ 방식을 통해 나이와 학력을 묻지 않고 있다. 고령자라고 해도 다른 신입사원들과 같은 조건의 대우를 받고 승진 등에서도 차별이 없다.

많은 공기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외국어 능력이다. 일부 공기업에선 토익점수 하한선을 낮추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학점수가 중요한 평가항목 중 하나다.

이번에 조사한 공기업 입사자 100명의 토익점수는 평균 831점이었다. 이 점수는 CAMPUS Job&Joy가 지난 5월 창간 기념호에서 조사한 삼성그룹 신입사원의 토익 평균 점수(836점)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난해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조사한 대기업 신입사원의 평균 토익점수 846점보다 15점 낮은 것이다.
[Special ReportⅠ] 토익 831점·평균 학점 3.71 ‘성실성’ 도 중요 항목
토익 성적 외에 공기업 취업 시에는 영어 말하기 능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최근 들어 영어 면접을 실시하는 공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에 영어 말하기 연습을 평소에 틈틈이 해두는 것이 좋다.

공기업들이 나이와 학력 등에 제한을 두고 있진 않지만 구직자 처지에서는 입사자들의 학점이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공기업 입사자 100명의 평균 학점은 3.71점(4.5점 만점 기준)이었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조사한 대기업 신입사원 평균 학점(3.7점)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학점이 취업 성공 여부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대한석탄공사에 최근 입사한 10명의 신입사원 중 최고 학점은 4.43점이었던 데 비해 최저 학점은 2.8점으로 나타났다. 1.63점이나 차이가 나는데도 입사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학점이 합격의 큰 요소가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공기업 취업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자격증이다.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의 취업 스펙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기업 입사자는 평균 2.4개의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도 전체의 80% 이상이 1개 이상의 자격증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자신이 취업하고 싶은 공기업과 연관된 자격증을 보유한 지원자가 눈에 많이 띄었다.

한국조폐공사의 경우 화공기사, 금속재료산업기사, 인쇄기사, 펄프제지기능사 등의 자격증을 가진 지원자가 유달리 많았다. 대한석탄공사 합격자 중에선 광산보안기사, 화약류 관리기사, 응용지질기사 등의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경영학과, 경제학과 출신 중에서는 ‘금융 3종 자격증’으로 통하는 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일임투자자산운용사(증권FP)를 가진 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많은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은 광운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한 H씨로, 그가 가진 자격증은 전기공사기사, 전기산업기사, 아마추어 무선기사, 무선설비기능사, 워드프로세서 1급 등 무려 8개에 달했다.

공기업에 취직하려면 사실 외국어 능력이나 자격증, 학점 정도는 ‘기본’에 속한다. 이 정도 기본 ‘스펙’을 쌓았다면 비중이 큰 필기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많은 공기업이 전공과 일반 상식 시험을 실시하므로 전공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필기시험 과목은 기업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로 영어, 상식, 전공, 논술 등이 포함돼 있다.

한편 이러한 ‘스펙’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요즘 기업들이 인재 평가에서 중요한 항목으로 ‘인성’을 꼽아 관심을 끌고 있다.

잡코리아가 올해 1분기 동안 자사에 등록된 채용공고 1만2665건을 분석한 결과 기업에서 가장 많이 요구하는 인재상(복수 응답)으로 ‘성실성’이 74.5%로 1위에 올랐다. 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성실한 인재를 가장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Special ReportⅠ] 토익 831점·평균 학점 3.71 ‘성실성’ 도 중요 항목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신문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