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주거 문제

‘민달팽이족’. 어마어마한 등록금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주거비 부담까지 떠안고 사는 이 시대의 집 없는 청년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그놈의 집이 뭔지 ‘숨만 쉬고 사는’데 매달 50만원 이상이 필요하고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또 다른 집을 찾아 골목을 서성여야 한다.

살(buy) 수 있는 집이 아닌 살(live) 수 있는 집이 필요한 대학가 민달팽이족. 우린 어디로 가야 하나요?

[이슈 추적] 고시원, 계약 사기, 생계형 동거까지?! 집 없는 민달팽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월 세 40만~50만 원 정도는 돼야 그나마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어요. 이 근처 고시원이나 하숙도 가격이 비슷해요. 그러니 그 이하의 월세방을 구하는 것은 힘들다고 봐야죠.”

신촌 인근의 부동산을 찾아가 “저렴한 월세방을 구하고 있다”고 말하자 돌아온 중개인의 대답이다. “대학가는 집값이 더 싼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오히려 더 비싸다”며 “특히 신촌 일대는 풀 옵션으로 리모델링한 곳이 많아 가격이 더 올라갔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반값 주거비’를 요구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저렴하게 월세를 구한다고 해도 40만 원이 넘는 것은 기본, 관리비에 최소한의 생활비까지 더하면 월 생계비는 70만~80만 원이 훌쩍 넘는다. 아르바이트 한두 개로는 어림없는 비용. 학생들 사이에서는 “월세 내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작 집에는 가지도 못한다”는 푸념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기숙사에서 학생들을 모두 수용하면 단번에 해결될 문제지만, 대학 기숙사의 학생 수용률은 20% 이하. 그중 의대, 체대 등 특수 학과 학생들을 위해 따로 배정된 기숙사를 제외하면 일반 학생 수용률은 10% 이하로 떨어진다.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의 경우 지방에서 올라왔거나 통학이 어려운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40% 정도 되는데, 이에 비하면 기숙사 수용률은 턱없이 부족한 셈. 결국 기숙사 입성에 성공하지 못한 학생들은 방을 찾아 대학가를 서성이며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를 아끼려 쪽방살이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슈 추적] 고시원, 계약 사기, 생계형 동거까지?! 집 없는 민달팽이 어디로 가야 하나요
Case 1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 직접 가보니…

고시원이 몰려 있는 노량진을 찾았다. 5곳의 고시원에 연락을 해봤지만 빈방이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겨우 한 고시원에서 “당장은 빈방이 없지만 열흘 후면 방이 빠질 예정이니 일단 방을 보여주겠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고시원 복도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10개의 방이 붙어 있었다. 소개해준 305호에는 창문이 없었다.

방은 침대와 책상, 작은 수납장이 들어가니 꽉 찼고, 수납장에 걸려 문이 활짝 열리지도 않았다. 옷장은 없고 낮은 천장 가운데 옷봉이 걸려 있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의 고시원도 월 30만 원이 넘는 것은 기본. 방에 작은 창이라도 있을 경우 가격은 5만~10만 원 정도 더 올라갔다. 월세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찾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고시원은 부르는 게 값이 된 지 오래다. 지난해 서울 대학가 밀집지역의 고시원 평당 월세는 15만2600원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평당 월세 11만8500원인 도곡동 타워팰리스보다도 높은 가격이란 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학가, 노량진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잠만 자는 방’ 혹은 ‘공부방’은 하숙의 또 다른 개념이다. 가정집의 남은 방을 내주는데, 낮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밤에 와서 잠만 자고 가는 식. 가격은 35만 원에서 40만 원인데 출입 시간에 제한이 있고 어른들이 함께 살기 때문에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주의가 있었다. 정당한 월세를 내면서도 마치 죄인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하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슈 추적] 고시원, 계약 사기, 생계형 동거까지?! 집 없는 민달팽이 어디로 가야 하나요
Case 2
수수료 아끼려 직거래? 사기꾼 표적되기 십상!


부동산 수수료조차도 부담되는 학생들은 발품을 팔아 직접 집을 구한다. 온라인 카페나 전단지 등을 통해 직거래를 하는 편인데, 임대 관련 지식이 없다 보니 부동산 사기의 집중 타깃이 되기도 한다. 월세를 사는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며 전세 계약을 한 후 도주하는 일도 있고, 계약서 작성을 잘 몰라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하는 일도 다반사.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진아람(32) 씨는 대학 졸업 즈음 신축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했다가 계약금을 모두 날릴 뻔한 경험을 했다.

“신축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하고 400만 원을 계약금으로 걸었어요. 그런데 준공검사가 계속 지연되면서 입주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갑자기 오갈 곳이 없어져 2개월간 집 없이 여관방을 전전했죠.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돌려줄 수 없다는 통보만 받았어요. 게다가 계약을 진행한 오피스텔 주인은 준공검사가 통과될 때까지 자신의 집에서 살라고 하더라고요. 황당했죠.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들어가서 산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진 씨는 이후 계속해서 계약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오히려 집주인은 계약 파기라며 돌려줄 수 없다고 큰소리쳤다. 진 씨는 집주인의 말만 믿고 포기하려 했지만, 남자친구가 나서 따지고 들자 3~4개월 후 두 번에 나눠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여자이고 학생이니 계약에 대해 잘 모르잖아요. 그런 부분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돌려받지 못했을 거예요.”


Case 3
확산되는 생계형 동거 “월세는 오빠가 낼게”

“다들 어떻게 하면 주거비를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누군가와 방값을 함께 부담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불편해도 친구와 함께 지내는데, 아예 모르는 타인과의 동거까지 생각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주거비를 아끼기 위해 ‘생계형 동거’를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학생 전용 룸메이트 커뮤니티를 방문했다. 게시판을 살펴보니 여성 룸메이트를 원한다는 글이 대부분이었는데 놀랍게도 작성자의 90% 이상이 남자였다. 그중 신도림 인근에서 여성 룸메이트를 찾고 있다는 A씨에게 연락을 했다.

하지만 “먼저 연락 온 사람이 있으니 취소되면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여의도 오피스텔을 룸셰어하고 싶다’는 글을 올린 B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30대 초반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기자에게 나이, 직업 등을 물어본 뒤 “오늘 만나 방도 보고 잠시 이야기도 나누자”고 말했다.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B씨는 깔끔한 정장 차림에 대기업 사원증까지 목에 걸고 있었다.

“3년 전쯤 사둔 오피스텔인데 혼자 지내려니 적적하더라고요. 문득 부동산 카페에서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본 게 떠올라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남자의 호기심이랄까…. 월세는 안 내셔도 돼요. 그냥 오빠, 동생처럼 재미있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B씨가 관련 글을 올린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황이었는데, 기자가 연락하기 전 이미 2명의 여성에게서 연락이 왔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23세의 학생이었다는 충격적인 말도 덧붙였다. 방을 보여주겠다는 그의 말에 기자는 급한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대학생 주거 문제, ‘보여주기’식 정책 말고 실질적 도움이 필요해!

대학생 주거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정부도 나서 다양한 해결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의 이은진(22) 씨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와 닿지 않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짓고 있는 홍제동 대학생 연합 기숙사만 해도 그래요. 서울시의 기숙사 건축비 예산이 0원이에요. 결국 기숙사 건축 기금을 입주하는 학생들이 부담하게 된다는 거죠. 기숙사비는 그만큼 높게 책정되니, 굳이 교통비 들여가며 멀리 있는 비싼 기숙사를 왜 가겠어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진행하는 대학생 전세임대주택도 학생들의 외면을 받은 지 오래. 학생이 거주할 주택을 찾으면 LH에서 전세 계약을 맺은 후 재임대해주는 사업인데, 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지원 물량도 적어 혜택을 받는 학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7000만 원까지 전세금 지원이 되다 보니 대학가 전셋값이 딴 이유 없이 기본 7000만 원으로 훌쩍 뛰는 부작용까지 발생했다.

“기숙사의 학생 수용률이 낮으니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은 대학 주변 민간임대(개인이 내놓는 임대 주택)로 빠지게 되잖아요. 그러면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청년층과 조금 더 싼 집을 찾는 경쟁관계에 놓이게 돼요.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주거권과 교육권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을 위한 서울시의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글 박해나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