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인문계 졸업 -> 문학사 취득 -> 백수가 된 나

[한경잡앤조이=백윤희 매니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그나마 좋아하는 분야이자 성적에 맞는 어문학과를 택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게지.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학생이 되고도 취업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3학년 2학기 즈음 어학 자격증 취득 혹은 논문을 써야 졸업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문학 전공인데 어학 공부하기 싫어서 논문을 열심히 썼다.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 나는 2학년 때부터 3년을 통학했는데 왕복 5시간이었다. 논문 쓰는 동안은 지도 교수님 30분 뵙겠다고 수업 없는 날도 이 거리를 일주일에 2번은 오갔다. 이때부터였을까. 글쓰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게.
△뭔가 있는 척.
△뭔가 있는 척.
거창하게 외쳤지만 사실 글 쓰는 게 다른 일에 비해 좀 더 재미있는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주장하며 유용한 점이 있었는데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진로에 대해 있어 보이게 말할 거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너는 나중에 어떤 일할 거야?"라는 질문에 드디어 대답할 수 있었다. “글 쓰는 일 하고 싶어요(뭔가 있는 척).”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며 대기업 공채에 합격했네, 공무원 시험 합격했네, 유학 가네 뭐네 하는 이야기로 학교가 시끌시끌했다. 그때도 나는 ‘다들 멋지네’ 정도에 머물렀다. 그러다 졸업을 한 달 정도 남겼을 때 번뜩 정신이 들어 이력서 양식을 찾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평소에 자주 쓰던 앱을 제작한 스타트업 채용 공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제출 며칠 후 서류 전형 합격 안내와 과제 요청 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이거 진짠가 싶었다. 부랴부랴 학부 때도 잘 안 만들던 PPT를 만들었다. 이때만큼 구글링을 열심히 한 적이 없다. 과제를 제출하고 3일이 채 안 돼 1차 면접 보자는 메일을 받았다. ‘와 나 이러다 졸업하기 전에 취업하는 거 아닌지 몰라’하고 속으로 낄낄대기도 했다.
△낄낄대던 나.
△낄낄대던 나.
=낄낄대던 나 (이미지=백윤희 씨)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의 첫 취업 도전은 실패했다. 지금 돌아보면 내 과제와 면접은 그야말로 날 것인 사회 초년생의 것이었다. “어... 면접이 처음인데요. 안녕하세요...”가 끝인 이상한 자기소개로 시작해 과제 설명도 어버버하며 끝났다. 면접이 끝난 후엔 면접관 명함에 쓰여 있는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오늘 정말 감사했고 면접에서 못 보여드린 엄청난 역량은 입사 후에 보여드리겠다는 패기 넘치는 마무리였다. 하지만 면접관은 따스하게 답장해주었다. 이 덕에 탈락을 지속하면서도 계속 면접 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면접관님 사는 동안 많이 버세요).

여담이지만 이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이 스타트업과 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내가 먼저 요청한 것이었다. 협업은 잘 마무리됐고 사실 대학생 때 이 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 이 회사는 분명 잘 될 테니 나중에 입사하든 같이 일하든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잘 나간다니 괜히 뿌듯하다고 말했다. 담당자와 재미있다며 하하 호호 웃었다. 하여튼 저 진격의 탈락 이후 면접 한 번을 보지 못한 3개월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백윤희 씨.
△백윤희 씨.
백윤희 씨는 제품, 사람, 문화에 서사 만들어 붙이기를 좋아하는 직장인이다. [2호선 수필집]은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며 만나고 느낀 것들의 잔상이다. 그렇다고 2호선을 좋아하지는 않으며 극세사 이불에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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