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재미와 배움이라는 두 마리 토끼
![내가 스타트업에서 교육앱을 만드는 이유 [배움의 씨앗을 심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203/01.29433492.1.jpg)
다들 이런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운동이든 수학이든, 배우는 사람으로서 맞닥뜨린 어려움을 좀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적절한 도움을 받은 경험 말이다. 울퉁불퉁하고 가팔랐을 ‘학습의 길’이 그런 도움으로 인해 완만하고 걷기 좋아져 적은 힘으로도 잘 배울 수 있고 다른 것을 더 배울 마음이 나기도 하는 선순환으로 들어선 경우 말이다. 나에게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 앱을 만드는 일이란, 그렇게 ‘좀 더 배울 마음’이 나도록 정성 들여 학습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배울 마음이 생겨날까. 어른이라면 배우는 과정이 좀 지루해도 자신의 목적을 생각하며 학습을 지속할 수 있겠지만 저연령의 어린이가 그런 동기를 바탕으로 학습을 시작하고 이어 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학습하는 경험이 재미가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할 터.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앱을 통해 학습하는 경험을 좀 더 즐겁게 만들 것인지를 늘 고민하곤 한다.
단조롭거나 지루해 보이지 않고, 예쁘고 귀여워서 자주 들여다보고 싶은 앱을 만드는 것도 즐거운 학습 경험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게임의 형태와 방식을 닮은 액티비티들로 흥미를 유발하고, 학습 활동에 대한 여러 보상 장치를 통해 동기를 부여하기도 한다. 해야 할 일과 순서를 모두 지정해 놓는 대신 학습자가 스스로 탐색하며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또 하나의 전략은, 학습을 하면서 작은 성공 경험을 많이 맛보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뭔가를 잘 한다고 느낄 때 기분이 나쁘거나 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까? ‘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으쓱해지고, 계속해 볼 마음,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래서 앱 내에서도 하나하나의 작은 성공을 축하하고, 실패를 부각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시도해 볼 수 있게 격려하는 데 중점을 둔다. 사실 대부분의 활동에는 실패 자체가 없다. 첫 시도에 답을 맞히지 못한 것일 뿐이다. 틀렸다면 다시 도전하면 되고, 도전의 기회는 충분히 주어진다.
![내가 스타트업에서 교육앱을 만드는 이유 [배움의 씨앗을 심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203/01.29433311.1.png)

이처럼 학습할 때 긴장이나 부담보다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앱, 그렇다고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학습하도록 돕는 앱을 만들기 위해서 종종 학습자인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하는데, 이게 참 어렵다. 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도, 어린이들이 어려워하는 것도 알기 쉽지 않다. 앱을 만드는 나는 이미 어른이 된 지 오래거니와, 어린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을 좋아하거나 어려워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른인 나에게는 이미 수많은 배경지식과 선경험이 있다 보니, 나와는 다른 지식과 경험을 가진 어린이들이 어디에서 걸려 넘어질지를 알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 앱의 주 사용자는 이제 막 읽기를 배우기 시작한 어린이들이기에, 중요한 정보를 글자로만 전달하지 않고 음성이나 그림을 곁들여 이해를 도울 필요가 있음을 늘 기억하려고 한다. 흔히 사용되는 기호들 또한 낯선 눈으로 봐야 한다. 빈칸에 물음표가 들어가 있을 때, 이미 물음표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거기에 답을 집어넣으라는 의도가 명확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물음표를 본 적이 없는 어린이라면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어리둥절할 수 있다. 학습자가 느낄 막막함을 알아차려야만, 거기에서 막혀 버리지 않게끔 예시를 보여준다거나 처음에는 아주 쉬운 문제를 제시하는 등 도움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스타트업에서 교육앱을 만드는 이유 [배움의 씨앗을 심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203/01.29433356.1.png)

전에는 학습자의 가까이에서 사용하는 모습을 볼 기회도 종종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로는 주로 사용 영상을 통해 어린이들을 만난다. 화면 너머로 보기만 해야 한다는 제약은 있을지라도 더 좋은 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영상 속 어린이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거나 깔깔대며 웃을 때는 나도 덩달아 기쁘지만,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손가락이 자신감을 잃고 한곳에 머무르는 걸 발견하면 어디가 잘못되었나 싶어 긴장하게 된다. 한편, 데이터는 사용 영상처럼 각 어린이의 표정이나 행동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수많은 학습자가 어떤 액티비티에서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어떤 문제에서 유독 오답이 많은지 등의 정보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 활동의 성취 기준이 너무 높게 설정되었거나 난이도가 가파르게 올라가서 학습자가 좌절을 느끼는 지점,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유발하는 요소 등을 발견해 다듬고, 목표한 대로 잘 작동하는 부분은 다른 곳에 적용하기도 한다.
재미와 배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의 고민과 노력 끝에 만들어진 앱을 어린이들이 잘 사용하는 걸 볼 때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무척 크다. 부모님이 직접 한글을 가르치려고 할 때면 도망가기 바쁘던 아이가 앱으로는 몇 십분을 꼼짝 않고 학습한다는 이야기, 장애가 있어 또래보다 학습 속도가 느린 아이가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하며 점차 말도 늘고 글씨도 잘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 일을 하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생각한다. 학습자로 하여금 읽고 쓰기를 배우는 걸 꽤 즐거운 활동으로 여기게끔 하는 앱을 만드는 것은, 나에게도 재미와 배움이 모두 있는 일인 셈이다.
김은파 씨는 학습의 기회를 만들고 확장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이집트, 우간다, 한국 등에서 학습자를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누마'에서 어린이들이 즐겁게 읽고 쓰기를 배울 수 있는 앱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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