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소년원 파견 당시, ‘책’을 통해 소년들 마음 읽었다
생명의 색 연두와 파랑, 소년원에서는 격리를 의미해...

“소년원 학생들을 만나기 전, 저는 고정관념에 싸여있었어요. 험상궂은 학생들이 저를 째려보는 상상, 제 말을 듣지 않는 상상, 수업 자체가 안 되는 상상을 하고 만났으니까요. 막상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은 칭찬받으면 기뻐했고 수업 시간에 잡담해서 주의를 받으면 죄송하다고, 다음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메모를 전해주더군요. 책을 함께 읽다가는 장면에 따라 함께 울고 웃었고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유대감을 쌓으며 소년원 학생들의 마음에도 빛과 그늘이, 다양한 형태와 색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소년원 파견교사로 보낸 한 해가 제 고정관념이 깨고 소년의 마음을 읽는 과정이었음을 제목에 담고 싶었습니다.”
소년들이 선생님의 국어 수업에 마음을 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국어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는 수업을 했습니다. 6~7명의 학생이 같은 책을 소리내어 읽고 생각을 나누게 했죠. 누구에게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듯 아이들의 이런 본능을 독서 수업이 채워줬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이유로, 제가 학생들을 훈계하고 통제하려 하지 않았던 점도 영향을 줬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궁금해하기보다 지금 국어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데 더 신경을 썼습니다. 이렇게 무언가에 몰입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아이들에게 앞으로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점을 고려해 소년들과 함께 읽을 책을 선정하셨나요?
“제가 만났던 소년원 학생들은 십대 후반의 남학생들이었지만 읽기 능력이 약했습니다. 이런 경우, 비교적 단순한 어린이책을 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실 수 있는데요. 자의식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는 자신을 어린이와 구별 짓고자 하는 의식이 강합니다. 아직 어른은 아닐지라도, ‘난 어린애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크죠. 그래서 저는 이 지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습니다. 내용은 청소년과 어울리되, 책의 난이도는 높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다행히 세상에는 청소년이 공감할 만한 좋은 내용을 쉽게 표현한 책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두고 책을 골랐지만, 소년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 수업을 하는 것은 저도 처음이다 보니 선정하기까지 매번 고민하기는 했습니다.”
선정한 책들을 읽고 소년들이 허망함이나 무력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까 봐 걱정하진 않으셨나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은 늘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또, 모든 ‘책’에서 문제에 빠진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무언가 시도하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시도 끝에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추운 날을 보내는 사람도 있죠. 책에 표현된 허망함과 무력감을 인물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보여주기 때문에 소년들이 부정적인 감정에만 매몰될까 봐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작품에 등장한 인물의 선택과 행동을 보며 청소년 독자는 ‘태도’를 배우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질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웃음) 2019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회색이 떠오릅니다. 소년원은 생명감이나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건축물이었어요. 차갑고 춥고 어둡고 삭막한 곳입니다. 철창을 몇 번 지나야 학생들을 만날 수 있던 곳이라 잿빛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연두색과 파랑색도 떠올라요. 소년원 학생들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보호처분 구분에 따라, 일정한 색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봄의 새싹들과 나뭇잎에서 볼 수 있는 형광 연두, 깊은 바닷물에서 배어 나오는 짙은 파랑입니다. 아마 학생들이 자유복을 입고 있었더라면 그 해를 떠오르게 하는 색이 되기 힘들었을 텐데,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기에 연두와 파랑이 제 눈 앞에 펼쳐집니다. 연두와 파랑은 생명의 색인데, 소년원에서는 격리의 색입니다. 2019년을 떠올리니 만감이 교차하며 이 세 색깔이 선명해지네요.”
어떤 성향의 선생님께 소년원 파견교사를 추천하시나요?
“먼저, 소년원 학생들을 ‘개선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소년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책 읽기를 인생의 즐거운 경험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교사 어른이면 좋겠습니다.
또, 새로운 일 하기를 좋아하는 교사였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일은 무한대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을 만날 수도 있고, 음악을 만들 수도 있죠. 단순히 책 읽고 감상문 쓰기에 갇히지 말고, 학생들의 상상력을 확대하는 책 읽기를 시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웃음이 많은 교사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저는 소년원 학생들의 미소가 참 예뻤던 기억이 납니다. 잘 웃는 사람은 마음에 그늘지기 어려운 것 같아요. 학생들과 환한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좋은 어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좋은 어른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신체적·심리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지지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방임이나 학대가 없어야 한다는 말과 연관 지을 수 있겠습니다. 안전과 안정이 전제되어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릴 수 있으니까요. 또, 아이들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된다는 신뢰를 받으며 자라도록 도와주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혹, 가정이 청소년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대신해 울타리 역할을 할 수 있는 든든한 사회 제도도 반드시 뒷받침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좋은 어른’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국어 교사로 일한 지, 어느덧 30년이 되어갑니다. 학교라는 직장에 출근했을 때, 수업 시간에 가장 흥이 나요. 지금도 학생들과 여러 독서 모임을 하고 있고, 작가님을 초청해서 독서 토론 파티도 열곤 합니다. 학생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일이 학생들에게 이로워서 하기도 하지만, 제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2025년 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작고 귀여운 에세이집이 한 권 세상에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글을 쓸 때 무척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을 생생하게 즐기며 좋아하는 일들을 계속하고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소년을 읽다』 독자들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초보 작가의 책인데도 꾸준히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소년원의 청소년들은 험악한 사건 보도, 촉법 소년 연령 하향 등의 일이 아니고는 사회적으로 잘 살펴지지 않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던 소년원 청소년들에 관한 관심을 키우는 데 이 책이 앞으로도 제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제가 만났던 소년원 학생들은 모든 사고와 행동이 고착화된 성인이 아니라 ‘청소년’이었어요. 숱한 잘못을 했지만, 마음 안에 아직 아이 같은 순한 마음도 보았습니다. 이것이 희망이고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만났던 학생들은 인적 네트워크가 취약했습니다.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가정이나 이웃, 본받고 따를 만한 어른이나 친구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회가,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났던 학생들이 사회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또, 제 책을 읽으신 독자님들은 언제라도 약하고 어린 사람의 ‘단 한 사람’이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진호 기자/ 유정민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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