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스 코디네이터의 역할

“‘팁스(TIPS)’ 가이드북, 어떻게 만들어졌냐면요…” [VC관리역은 처음이라]
평소 ‘어떻게 관리역으로 일하게 됐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질문의 답은 이렇다. 카카오벤처스로 오기 전 공공기관에서 스타트업 프로그램 운영을 1년 정도 맡은 적이 있다. 내 성향상 공공기관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했고, 마침 카카오벤처스 팁스(TIPS) 코디네이터 포지션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되었다.

팁스(TIPS) 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하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 중 하나로, AC 나 VC 등 팁스 운영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 정부가 최대 5억 (딥테크 팁스의 경우 최대 15억) 의 R&D 지원금을 매칭해준다. 초기 스타트업 입장에서 지분율 희석 없이 5억의 지원금을 받게 된다면 그만큼 런웨이가 길어지니 이것저것 사업적인 시도를 해볼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웬만한 초기 스타트업은 팁스 프로그램을 거쳐갔거나 고려해봤을 정도로 대표적인 스타트업 육성 정부지원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스타트업 CEO들에게 인기가 많은 만큼, 팁스 선정 노하우에 대한 질문도 더러 받는다. 스타트업 CEO의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가장 우선은 팁스 운영사 자격이 있는 투자사로부터 먼저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를 받은 이후 운영사에서 추천 절차를 진행하면, 팁스를 담당하는 한국엔젤투자협회에서 위원회를 꾸려 평가를 진행한다. 서류 작성부터 협약까지 최소 3개월부터 반년까지도 걸리는지라 단계별로 운영사와 창업팀이 일정을 잘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팁스 창업팀 협약이 완료되면 일단 큰 산은 넘은 셈이다. 이제 2년 (딥테크 팁스의 경우 3년) 의 협약기간 동안 정부지원금을 기준에 맞게 잘 사용하면 된다. 중간에 사업화, 기술개발 및 예산 집행 정도를 보고하는 연차보고가 있고, 협약 기간이 끝난 후에는 최종평가를 받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운영사 즉 투자사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다. 코디네이터가 없다면 해석이 난해한 공고문부터 200 페이지에 달하는 운영지침 앞에서 멘붕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정부 사업 특성상 서류 작업이 많고, 신청 요건도 까다롭기 때문에 이 사업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전담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 업무를 하면서 “내가 스타트업 대표라면 어떤 것이 패인 포인트(Pain Point) 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졌다. 팁스 지원팀은 대부분이 1인 기업이거나 개발자 한 두명만 있는 소규모 인력으로 구성돼 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인력으로 사업 성과를 만드느라 바쁜데, 팁스 서류 작업을 하다가 업의 본질을 놓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리소스로 최대한의 아웃풋을 낼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이 나의 진짜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카오벤처스의 소중한 자산이 된 TIPS 가이드북<팁스 가이드북>은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지난 4년간 수차례 변경된 공고문과 36개 팀을 만나면서 경험한 일련의 과정과 시행착오를 한 곳에 담아뒀다. 이는 카카오벤처스와 패밀리에 소중한 자산이 됐다.
4년 간의 질문을 모아둔 FAQ
4년 간의 질문을 모아둔 FAQ
관리역의 여러 업무 중 팁스 코디네이터는 특히 내게 큰 보람을 가져다 준 업무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서류 업무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자금난에 허덕이던 회사가 팁스 지원금을 받게 되면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 되고, 더 나아가 기술 개발에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업무의 거룩한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서 자랑을 하나 하자면 지금까지 36개 팀 중 단 한 팀을 제외하고 모두 팁스 협약에 성공했다. 물론 탄탄한 기술력을 보유한 스타트업과 이들을 발굴하고 어필한 카카오벤처스 동료들의 공이 훨씬 더 크다. 이렇게 협약까지 이룬 팀으로부터 감사하다는 메세지를 받을 때마다 뿌듯함이 몰려왔다.
팁스에 선정된 패밀리 대표님이 링크드인에 감사 게시글을 게재했다
팁스에 선정된 패밀리 대표님이 링크드인에 감사 게시글을 게재했다
반대로, 팁스 프로그램 도중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업을 정리하게 된 팀도 있다. 가이드라인대로 성실성평가위원회 등 절차를 밟으면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사업이라 소명 절차 등 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기억은 미화된다고 했다. 내 기억 속엔 힘든 일보다 뿌듯하고 재밌었던 기억이 더 짙게 남아있다. 이제는 다른 팀원에게 인수인계를 해서 팁스 코디네이터 업무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때 보고 들은 스타트업의 고뇌와 성취와 기쁨은 앞으로의 나에게 진한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한다.

이화영 님은 인생 100세 시대에 재미없는 일을 평생 하고 싶지 않아 재밌는 일을 찾던 중 스타트업의 젊고 활기찬 기운에 매료돼 2020년 카카오벤처스에 입사했다. 한 손엔 따스한 사랑을, 다른 한 손엔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이며, 요즘은 어떻게 하면 더 똑똑하게 일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