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학생들, 문제집 신청해도 몇 개월 걸려
-높은 점자 문맹률, 음성 도서의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에도 지켜야 하는 점자 도서
2024년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국립국어원은 젊은 층이 유행처럼 책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텍스트(글자)’와 ‘힙하다(멋있다)’를 합쳐 ‘텍스트 힙(독서 공유)’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11월 4일 ‘점자의 날’을 맞아 어느 한 언론사에 기고 글이 하나 올라왔다. 독서 열풍이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도서에 접근하는 데에 장벽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립장애인 도서관에 있는 점자 도서.
시각장애인들은 독서 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국립장애인도서관에 직접 가봤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장애인과 그들의 동행자를 대상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필자는 견학 신청을 통해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둘러보니 글자를 크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독서 확대기’, 음성을 점자로 변환해 주는 ‘점자 정보 단말기’, 책을 넘겨주는 ‘전동 페이지터너’ 등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독서 보조기기가 있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책을 낭독해 주는 ‘대면 낭독실’에 눈길이 갔다. 국립장애인도서관 누리집에 들어가면 만 18세의 이상의 일반인, 대학생들이 봉사 활동을 신청할 수 있다.
2024년 11월, 10월에 운영 종료된 ‘3일드림’, ‘대체 자료 제작 신청’.국립장애인도서관은 정보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원본 스캔 후 최소한의 편집과 목차를 제작하여 3일 안에 정보를 제공하는 ‘3일드림(DAISY)’을 운영한다. 또 장애가 있는 독자들은 필요한 도서를 디지털 음성자료로 받을 수 있도록 ‘대체 자료 제작’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국립장애인도서관 누리집에 들어가 보니 ‘3일드림(DAISY)’은 11월 말에 운영 종료되었다. 대체 자료 제작 신청도 예산 소진으로 10월 초에 마감되었다고 나왔다. 새해가 될 때까지 시각장애인들은 도서를 추가로 신청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국립장애인도서관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국가 대체 자료공유시스템(DREAM)’을 운영한다. 전국의 공공도서관, 사립장애인도서관이 보유한 대체 자료 원본을 모두 올려 이용자가 한 번에 통합검색, 다운로드, 열람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이다. 서울의 한 점자도서관 관계자는 “드림 서비스로 원하는 자료를 찾는 데 크게 부족함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그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꽤 많다”라고 했다. 그는 “시각장애인분들이 어떤 책을 읽고 싶은데 (해당 책을) 파일로 받아볼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온다”라며 “서비스 여부를 모르셔서 도서를 이용하는데 어려우신 경우가 많다고 느꼈다”라고 했다.
점자책 사진.점자 도서 등 장애인을 위한 대체 자료를 제작하는 기관은 일반 출판사에 비해 기관의 수 자체도 적고 인력 차이도 있다. 표나 시각 자료를 점자나 음성으로 만드는 재가공이 필요해 제작 기간 자체도 오래 걸린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는 “학생들이 문제집을 제작 요청해도 한 권 제작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리기도 한다”라며 “그런 것들은 적시에 받아야 하는데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점자가 부착된 책을 제공하는 국립장애인도서관. 음성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높은 점자 문맹률로 인해 점자 도서의 수요와 공급은 줄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3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점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3.7%에 불과했다. 점자의 수요가 줄어든 이유에 대해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는 “점자를 어린 시절부터 배워야 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실명이 되면 촉감으로 배우기가 어렵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각장애는 후천적 사고 및 질환에 의한 경우가 92.6%에 달한다. 그래서 복지관 관계자는 “요즘 점자 도서보다는 음성 도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악기 그림에 줄이 달려 직접 느껴볼 수 있다.점자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음성 도서를 선호하는 추세라면 점자 도서는 과연 필요한지 의문을 들 수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점자 문맹률 수치는 시각장애인 중에서도 한쪽 눈은 보이거나 점자 활용까지는 필요 없는 사람들도 포함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음성으로 했을 때 ‘제[재]’가 ‘ㅔ’인지 ‘ㅐ’인지 알 수 없다”라며 “점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약간은 보이는 사람(약시, 저시력)은 점자를 배우지 않을 수 있지만,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점맹)을 위해 점자 사용은 필수라는 것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도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점자는 확실히 필요하다”라며 “음악, 수학 등 수식 같은 것은 음성으로 한계가 있어서 문자로 된 도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