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동아리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이루어가는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여자축구동아리는 아직까지 많은 학교에서 활성화되지 못한 분야 중 하나다. 남자축구동아리에 비해 팀 수가 적고, 대회도 많지 않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고려대학교 여자축구동아리 FC 엘리제는 2007년 창설 이후 약 18년 동안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며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즐거움과 경쟁 사이에서 팀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열정을 불태우는 선수들. 팀을 이끌고 있는 권예원(전기전자공학과·3학년) 주장과 박선유(경영학과·2학년) 부주장을 만나 FC 엘리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왼)박선유 부주장과 (오)권예원 주장이 FC 엘리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모습.FC 엘리제는 매주 월·목 오후 8~10시 정기 훈련을 진행한다. 하지만 훈련 시간이 늦은 밤이다 보니, 체력적으로나 학업적으로 부담이 되는 경우도 많다. 권 주장은 “전공 공부와 병행하는 게 쉽지 않다. 훈련이 끝나고 나면 체력적으로 지쳐서 복습이 어려울 때도 있다”고 말하며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점, 체력적으로 단련되는 게 학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 등 동아리 활동의 다양한 장점을 강조했다.
FC 엘리제의 임원진은 주장, 부주장, 총무, 홍보부장으로 4명이 맡고 있다. 또한 담당 코치 3명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신입 부원은 학기 초 모집을 원칙으로 하며, 오픈트레이닝 및 트라이아웃 방식으로 선발한다. 중요한 것은 실력보다는 축구에 대한 열정이다.
팀을 운영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방향성이었다. 권 주장은 “동아리라는 분위기를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출지, 대회를 목표로 더 체계적인 운영을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은 실제 경기에서도 드러났다. FC 엘리제는 2024년 KUSF(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 8강전에서 연세대학교의 W-kicks를 만나 0-7로 패배했다. 당시 메인 코치가 없었고 경험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팀의 체계를 다시 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FC 엘리제는 학업과 동아리를 균형 있게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팀원들은 서로의 학업 스케줄을 존중하며 훈련 일정을 조율하고, 시험 기간에는 자율 훈련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한다.
FC 엘리제가 2024년 양구 국토정중앙기 축구대회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2007년 창설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강한 팀워크다. 박 부주장은 신입 부원들이 팀에 정착할 수 있도록 축구 외에도 함께할 시간을 많이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로 회식도 자주 하며 팀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한다.
FC 엘리제는 졸업생들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매년 두 번 홈커밍데이(모교 방문의 날)를 열고, 졸업생 팀인 FC 엘리제드와 친선경기를 가지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FC 엘리제의 경기가 있으면 응원도 오며 많은 지원을 한다. 특히 아마추어 고연전 선발팀 경기 당시, FC 엘리제는 또 다른 고려대 여자축구동아리인 VAMOS FC와 대결을 펼쳤다. 이때 FC 엘리제드에 소속되어 있는 졸업생들이 응원을 왔다. 이에 힘을 얻은 FC 엘리제는 승리하여 아마추어 고연전에 나가게 됐다.
FC 엘리제와 FC 엘리제드가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FC 엘리제는 매년 양구 국토정중앙기 축구대회, SUFA(서울권대학축구동아리연맹) 대회, KUFA(한국대학축구동아리연맹) 대회 등 다양한 대회에 출전한다. 대회를 앞두고는 전술 훈련, 세트피스 연습, 미니게임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하며 실전에 대비한다.
대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권 주장과 박 부주장은 아마추어 고연전과 제9회 서울대학교총동창회장배 전국 대학 여자축구대회 샤컵에서의 준우승을 꼽았다. 특히 샤컵 결승전은 비가 엄청나게 오던 날, 서울대학교의 SNUWFC와 치러졌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FC 엘리제 선수가 퇴장당했고, 전반전에 선제골을 내줬다. 분위기가 넘어간 FC 엘리제는 10명이 끝까지 싸워서 동점 골을 넣었고, 승부차기까지 갔다. 승부차기에서 패했지만, 팀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제9회 서울대학교총동창회장배 전국 대학 여자축구대회 샤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FC 엘리제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FC 엘리제의 강점은 패스 플레이를 비롯해서 만들어진 조직력이다. 특히 권 주장은 슈팅, 박 부주장은 패스를 맡으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아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약점으로 꼽혔다.
이렇게 FC 엘리제는 꾸준히 발전하며 2007년부터 유지돼 왔지만, 대학 여자축구의 한계와 어려움도 여전히 존재한다. 권 주장은 “과거에는 대학교 여자축구팀이 체육학과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다양한 학과 학생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여자축구 대회 수가 적고 지원이 부족한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남자축구 동아리는 학과마다 한 팀씩 있을 정도로 활성화돼 있지만, 여자축구팀은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타 대학 팀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박 부주장은 “대회가 아니더라도 한 학기에 최소 3번은 친선경기를 한다”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팀 수가 적다 보니 계속 같은 팀을 만나면서 서로의 전술과 핵심 선수까지 파악할 정도”라는 아쉬움도 덧붙였다.
FC 엘리제는 여자축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실력보다 열정을 중시하는 팀 분위기는 축구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 외국인 교환학생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팀을 개방적으로 운영 중이다. 다만 교환학생들이 일정 기간 후 본국으로 돌아가 전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런 도전 속에서도 FC 엘리제는 더 많은 대회 출전과 많은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권 주장과 박 부주장은 “언젠가 여자축구도 지금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며 작은 변화들이 쌓여 더 큰 움직임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FC 엘리제의 올해 목표는 KUSF 대회 우승이다. 권 주장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해내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 부주장은 “부상 없이 즐겁게 축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FC 엘리제가 2024년 양구 국토정중앙기 축구대회에서 경기를 앞두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최근 ‘골을 때리는 그녀’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전히 대학 여자축구는 많은 도전과 변화가 필요하지만, FC 엘리제는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승패를 떠나, 함께 성장하고 도전하는 과정 자체가 그들에게는 가장 큰 의미다. 앞으로도 FC 엘리제의 뜨거운 열정이 대학 여자축구의 발전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