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수 ‘50만 명’ 돌파한 영국 독립예술영화
한국 사회 깊게 뿌리내린 루키즘, 에이지즘 근원은 어디에

영화 <서브스턴스> 포스터
영화 <서브스턴스> 포스터
지난해 12월 개봉한 ‘서브스턴스’가 관객 수 53만 명(3.4 기준)을 돌파했다. 역대 국내 개봉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독립·예술영화 중 5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색, 계(2007)’, ‘황후화(2007)’,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2014)’에 이어 네 번째다.

예술영화로는 이례적인 관객 수를 기록한 이 작품으로 ‘루키즘’과 ‘에이지즘’에 관한 사회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브스턴스’ 흥행 이유는?
서브스턴스는 외모와 젊음에 대한 사회적 강박을 ‘바디 호러’라는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다. 사랑받던 스타인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50세 생일을 맞던 날, 오랜 시간 출연하던 에어로빅 쇼에서 해고된다. 이유는 단 하나, “더 이상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충격에 빠진 그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에서 한 간호사로부터 정체불명의 약물 ‘서브스턴스’에 대한 usb를 건네받는다. 이를 주사할 시 자신보다 더 아름답고 젊은 새로운 자신이 만들어진다는 약물이었다. 약을 먹은 엘리자베스는 젊고 아름다우며 완벽한 새로운 자신 ‘수’를 만들게 되고, 그는 점차 더 ‘수’로 살아가는 데 집착하게 된다. 하지만 이 완벽한 젊음이 계속될수록, 엘리자베스는 점차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지는 불안을 마주하게 된다.

오진우 영화 평론가는 “영화에선 급속도로 늙어가는 신체, 욕망을 넘어선 강박과 그 끝에 보이는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직면하는 외모 강박과 나이 듦에 대한 불안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라고 전했다.

미디어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젊음, 나이 듦과 변화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압박이 영화 전반에 걸쳐 강하게 드러난다고 오 평론가는 설명했다.

더 나아가 영화는 SNS 시대의 자아와 현실 속 자아의 간극, 이상화된 이미지가 초래하는 정신적 불안정, 사회가 외모에 부여하는 의미 등을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보이는 것’이 곧 존재를 결정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영화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루키즘과 에이지즘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를 남긴다.

10대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루키즘
루키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을 가른다고 믿어 지나치게 집착하는 등 외모를 가치의 중심에 두는 사고방식을 의미하는 단어다. 극중에서는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외출 전 화장을 고치다가 자괴감에 결국 나가지 못하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한국은 어떨까.

SNS에서는 비현실적으로 마른 신체를 의미하는 ‘뼈말라’, 먹고 토한다는 의미의 ‘먹토’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10대들도 시술을 찾아보며 ‘10대도 가능한 시술’이라는 이름의 영상이 돌아다닌다.

최근에는 얼굴과 체형, 심지어는 피부 톤까지도 조각조각 뜯어 분석하는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사람들의 ‘외모정병’(외모 정신병)을 가장 자극하는 이슈는 ‘중안부’였다. 눈썹에서 인중까지의 범위를 뜻하는 중안부가 짧아야 예쁘다는 의견이 나오며 중안부를 짧게 하는 화장과 시술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뿐일까. 개인이 느끼는 것뿐 아니라, 실제로 외모는 ‘경쟁의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람인은 2019년, 구직자 380명 중 87.6%가 ‘채용 시 외모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대답했다고 알렸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루키즘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대학생 박세린(가명)씨는 “외모에 대해 생각할수록 스스로에게 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식하려 하지만 결국 다시 연예인 외모를 평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며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적 풍조 때문에 힘들어하다가도, 이미 외모라는 가치를 내재화한 내가 외모지상주의를 재생산하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에이지즘
에이지즘은 노인 차별을 비롯해 나이와 노화 과정에 대한 편견적 태도, 노인에 대한 비난과 편견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태도,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태도 등을 개념화한 단어다.

극중에는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해고되는 장면, 수가 TV 프로그램에 나와 엘리자베스 스파클을 ‘지난 시대의 사람’으로 말하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장면으로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서도 세대 간 갈등뿐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에서 에이지즘이 구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25살은 ‘반오십’이라 말하며 자신의 나이 듦을 걱정하고, 사회가 여성에게 주입하는 노산에 대한 두려움, SNS를 통해 전파되는 ‘20대 시기별 반드시 해야 할 것’ 등의 리스트는 청년들을 불안케 하는 요소로 작용된다.

대학생 이다은(가명)씨는 “나이별 해야 할 동아리와 취업 준비 등을 다룬 영상들이 수도 없이 많아 볼 때마다 시간이 지남에 대한 불안함을 크게 느낀다”며 “아직 20대 초반인데도 가끔은 늙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이상하다 느낀다”고 전했다.

미디어가 루키즘에 주는 영향에 대해 김원태 충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문화산업이 반복적이고 더 자극적인 방식으로 외모를 강조하고, 이에 영향을 받게 된다”라며 “경쟁에 지친 개인들은 반성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고통과 피로를 잊기 위해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동물적 자극(외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호응하게 된다”고 전했다.

서브스턴스는 루키즘과 에이지즘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비판하면서도, 그 욕망을 포기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의 딜레마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는 젊음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이미 그것이 자신의 삶을 잠식해 버렸음을 깨닫는다. 관객들 역시 영화의 메시지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루키즘과 에이지즘의 기준을 내면화한 채 이를 재생산하는 위치에 서게 되는 자신을 발견해 절망했다는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서브스턴스는 우리 사회에 강렬한 질문을 던졌다. 이제 우리는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권구봉 대학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