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세대, 게임으로 사회를 경험하다

(출처=지엔에이컴퍼니)
(출처=지엔에이컴퍼니)
바야흐로 AI(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어느덧 AI는 우리 저변에 널리 퍼졌고, 이를 활용한 서비스와 제품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게임의 세계에서 AI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해 왔습니다.

1980년에 발매된, 누구나 아는 게임 팩맨(Pac-Man)에서도 AI는 이미 존재했습니다. 유저를 추격하거나 도망치는 '조라귀신' 역할로 등장해 단순한 구조 속에서도 일정한 전략과 반응을 보여주며 우리와 놀아주었죠.

2001년에 발매된 'Black & White'는 하나의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이 게임은 유저의 행동을 학습하고, 그에 따라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AI 캐릭터를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참고로, 이 게임의 수석 AI 프로그래머는 훗날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입니다. 인간만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바둑에서 AI가 인간을 이긴 바로 그 기술의 출발점이 사실은 게임 안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이처럼 AI는 게임의 몰입감과 상호작용을 높이는 데 꾸준히 기여하며,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자리잡아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AI 발전은 단순한 진화가 아니라, '혁명'에 가까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은 게임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AI는 사람과의 대화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응답하며, 감정을 흉내 내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기억은 감정의 재료가 되고, 기억이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감정은 유대를 만듭니다. 생성형 AI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데 탁월합니다. '사실 같은 허구'를 빠르고 정교하게 생성해내며, 사용자에게 강한 몰입과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그 결과, 유저는 자신을 기억하고 공감해주는 AI와의 관계를 실제보다 더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AI가 감정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주체로 등장하면서, AI가 가장 먼저 활용되었던 분야 중 하나인 게임 단순한 오락을 넘어 '개인화된 사회적 시뮬레이션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게임은 기존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AI가 효율성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것과, 감정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AI와 함께 진화하는 게임, 관계를 만들고 공동체를 시작하는 세대의 공간이 되다
지금의 어린 세대는 '불안세대'라고도 불립니다. 출산율 저하로 또래 자체가 줄어들었고, 놀이터는 주차장이 되었으며, 등굣길은 차도로 바뀌었습니다. 책가방을 맨 채 일렬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줄을 못 본지 오래되었습니다. 심지어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마스크를 쓰게 되어 서로 대면할 기회도 박탈당했습니다. 예전에 밖에만 나가면 만날 수 있던 친구들을 이제는 비용을 내고 소위 '학원'에 가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만나고, 우연히 부딪히며 관계를 형성하던 기회는 줄어들었고,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오프라인에서의 안정감을 잃어가고, 그 자리를 스마트폰과 게임 같은 디지털 콘텐츠가 빠르게 채워버렸습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사람들과 직접 마주하며 유대감을 느끼기 힘들어 하며, 대신 스마트폰 등 온라인 기기에 의존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프라인 환경이 충분한 효용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 흐름은 쉽게 되돌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만약 대안 없이 휴대폰이나 게임을 단순히 금지해버린다면, 아이들이 가진 유일한 상호작용의 기회조차 박탈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쉽지 않은 혼란한 상황 속에서, AI와 결합된 게임의 등장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경청하고, 기억하고, 심지어 원하는 모습까지 그럴듯하게 구현해주는 기술은 아직 판단력이 형성되어가는 세대에게 실로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입니다. AI는 인간의 사회적 결핍을 보완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새로운 교육 방식과 관계 형성의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임이라는 매개 속에서 AI는 감정과 기억을 바탕으로 관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기술과 감정 표현을 실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게임은 단순히 감정을 달래고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의미 있는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여야 합니다. 이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극과 이윤만을 추구한다면, AI와 게임의 결합은 오히려 인간의 외로움과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AI를 품은 게임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를 풀기 위해서도, 게임은 이제 사회성과 더 나아가 생산성까지 함께 품은 가상공간으로 진화해야 합니다.

게임은 이제 AI와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사회적 환경이며,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관계 맺기, 배움, 협업, 창작 같은 인간다운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 그렇게 설계되고 운영되는 게임은, 지금의 단절된 사회가 놓친 것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게임은 사람이 AI를 제대로 활용하고, 그 안에서 관계를 발전시키며 유대감과 사회성을 느끼는 공간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거대한 힘과 책임을 균형 있게 담아내며, 다음 세대의 빛나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문이 될 것입니다.

최지웅 님은 1세대 게이머이자 연쇄 창업가, 앤젤투자자로 ‘지온 네트웍스’ 창업했다. 현재는 ‘게이머가 대우받는 게임 생태계’를 만들고자 플레이오(GNA Company)를 또 다시 창업해 대표로 활동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