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떠나 '치열'을 선택한 까닭은?
5년 전 여름, 나는 ‘네카라쿠배’의 첫 글자인 회사, 네이버를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테크 회사를 거쳐 20대 후반 네이버에 입사해 14년이란 긴 시간을 이 회사에서 보냈다. 그사이 나는 리더 급으로 승진했고, 다른 곳에선 받기 힘들 정도로 많은 급여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흔들린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많은 고민 끝에 그해 가을 작은 스타트업 ‘마켓보로’로 자리를 옮겼다.네이버 입사 전, 나는 IPTV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한국 최초로 ‘디지털 TV 서비스’라는 이름의 TV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TV 영상을 인터넷 프로토콜(IP)로 보내는 기술로 당시로는 혁신적 시도였다. 이 경험을 발판 삼아 2007년 특채로 네이버에 입사했고, 14년간 다양한 서비스 기획을 맡았다. 네이버의 첫 모바일 앱 중 하나인 ‘미투데이’ 서비스를 제작했고, 개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담당하며 리더로 발탁되었다. 글로벌 메신저 서비스 ‘라인’에서는 ‘타임라인’의 리더라는 중책을 맡았다. 긴 여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네이버 전사 동영상 기획 리더 자리까지 올랐다.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 스타트업에서 치열하게!
그 시절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쓰던 말이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였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회사였고 기술로 끊임없이 혁신해야 했기 때문에 당연한 구호였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회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를 입버릇처럼 외쳤지만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속도’나 ‘파격’은 점차 어려워졌다.
특히 내가 담당했던 네이버TV나 동영상 서비스 분야에서는 ‘건전한 콘텐츠’라는 기준과 대기업으로서 ‘다른 업계에 대한 배려’가 항상 우선이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유튜브는 공격적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을 때였다. 스타트업처럼 하고 싶은데, 네이버라는 환경은 내게 ‘제약’으로 다가올 때가 점점 많아졌다.
의사 결정 구조도 다른 대기업과 비슷해졌다. 전 국민의 서비스라는 시선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압박이 존재했고 고위 간부들은 매번 조심스러운 결정을 내렸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었다.
네이버라는 너무 강력한 브랜드도 불편했다. 아무리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도 ‘네이버니까 성공한 거 아니야?’라는 시선이 따라왔다. 네이버의 우산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의 노력으로 성공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점점 커졌다. 결국 나는 ‘스타트업처럼 치열하게’를 외치는 대신, 실제 스타트업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가고 싶은 스타트업의 10가지 조건
본격적인 이직 준비에 앞서. 내가 진정 원하는 스타트업의 조건을 명확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우선 대표가 개발자 출신이어야 했다. IT 스타트업에서 개발을 모르는 채로 떠드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적어도 나보다 개발을 더 잘 알고 있는 대표를 만나고 싶었다. 대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더 있었다. 대표와 항상 직접 소통할 수 있어야 했고, 이왕이면 사업에 실패한 적이 있는 대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극복해 나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두 아이가 있는 외벌이 가장이어서 월급 못 받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이 밖에도 회사 문화와 관련해서는 술자리에서도 일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이상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 어쨌든 내 조건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퇴근이 수월한 곳(판교가 최적이었다), 기술력도 없으면서 현란한 문구로서의 AI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곳(나는 5년 전 한국 기업의 AI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등이었다.
서비스 측면에서는 두 가지 핵심 조건이 있었다. 첫째, 네이버가 들어와도 이길 수 있는 사업이어야 했고, 둘째는 플랫폼 사업일 경우 생태계 내 다른 참여자들을 죽이지 않는 서비스라야 했다. 다른 참여자들을 죽이는 서비스는 이래저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네이버가 가르쳐 준 ‘상생’의 의미가 여기 남아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정리해 보니 10가지 정도의 조건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스타트업을 석 달 만에 찾아냈다. 하늘이 도왔거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다니는 ‘마켓보로’는 식자재 시장의 디지털 전환(DX)을 추구하는 회사다. 식자재 유통사와 외식 사업자를 돕는 플랫폼 기업인데, 시장 전체를 성장시키는 모델이어서 우리 사업이 잘되면 유통사와 외식 사업자 함께 이익을 보는 구조다.
네이버가 들어오면 이길 수 있을까?
식자재 시장의 DX를 위해 마켓보로가 초기에 가장 공을 들인 것은 가락시장 유통사들을 찾아가 물건을 함께 나르고 PC를 고쳐준 일이었다. 네이버가 할 리가 없는 사업이었다.
마켓보로의 임사성 대표는 개발자 출신의 연쇄 창업가로, 이미 여러 번의 창업으로 실패와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었다. 내가 임 대표에게 먼저 찾아가 나를 뽑아 달라고 제안했다.
네이버 시절에 비해 급여는 줄었지만, 더 큰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며 일하고 있다. 다행히 아내는 기술에 ‘적정 기술’이 있듯이 수입에도 ‘적정 수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나의 선택을 지지해 줬다.
군대로 따지면 나는 대대장, 사단장이 아니라 소규모 부대원들과 함께 전투 현장을 누비는 중대장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른 분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특히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에겐 ‘네카라쿠배’가 아니더라도 작지만 의미 있는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이 많다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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