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이름 ‘인스피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 ‘세계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어떤 키워드를 중심에 둘지 고민하다가 ‘영감(Inspiration)’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닿았어요. 콘텐츠 방향을 들으신 디자이너 분께서 “논문 컨셉으로 풀어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제안해 주셨고, Inspiration과 학술 콘텐츠 플랫폼인 DBpia를 결합해서 ‘인스피아’라는 이름을 만들게 됐어요.
인스피아는 다른 뉴스레터보다 내용의 깊이가 느껴져요. 그 깊이는 어디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책이라는 매체를 경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깊이가 생긴 것 같아요. 책은 우리의 생각을 붙잡는 일종의 그물 역할을 하거든요. 예를 들어, 혐오 문제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어떤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이런 부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하고 자각하게 되기도 해요. 그냥 백지 위에 ‘혐오에 대해 써보라’고 하면 막막하지만, 책은 우리가 생각을 더 깊이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죠.
회차마다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시는데, 특히 책에서 따온 문장이 많아요. 매번 주제에 꼭 맞는 문장을 고르시는 비결이 궁금해요.
의외로 문장을 먼저 고르고 주제를 나중에 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책을 읽다가 마음에 꽂히는 구절이 나오면, 그 문장에서 출발해 주제를 거꾸로 정하는 식이에요. 그러면 문장이 주제와 어긋날 일이 없어요. 주제를 그에 맞춰 잡았으니까요. 연차가 쌓여갈수록 이런 작업 방식이 더 익숙해졌어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하셨는데, 최근 시사 이슈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게 신기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SNS나 신문을 꾸준히 보는 편이에요. 시사 정보는 늘 기본값으로 깔려 있어요. 대부분의 뉴스레터가 스트레이트 뉴스를 모아 큐레이션 하는 방식을 택하는데, 저는 그런 정보를 베이스에 두고 책을 읽는 거죠. 그러다 보면 “이 사건이랑 이 책을 엮어보면 재밌겠다!”는 식의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거의 모든 회차가 그랬지만, 최근에 쓴 <’어른 김장하’를 찬양하기만 할 때: 부와 관계 맺기> 회차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독자 반응도 좋았지만, 접근 방식이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달랐거든요. 빈부격차를 구조적 시선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냈어요. 마감이 코앞이라 주제를 바꿀 수도 없었고, 그냥 이 방향을 밀고 가기로 했어요. 만약에 일주일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오히려 재미없는 글이 나왔을 거예요. 고민할 시간이 생기면, 더 무난한 이야기를 선택하게 되거든요.
촉박한 마감이 오히려 신선한 관점을 만들어 냈네요.
맞아요. 정기간행이 아니었다면 더 안전한 방향으로 썼을 수도 있어요.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글을 고민했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마감이라는 기한이 있으니까 과감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봤을 때 기억에 남는 건 그렇게 벼랑 끝에서 쓴 글들이에요.
<’지브리 AI’ 열풍과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회차도 인상 깊었어요.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나요?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의 고전 <Exit, Voice and Loyalty>에서 시작된 회차예요. 이 책은 어떤 집단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구성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다루고 있어요. 마침, 그 시기에 SNS에서 ‘지브리 AI’가 화제였어요. 저는 그 현상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그 감정이 책의 메시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이용자들은 플랫폼에서 쉽게 ‘이탈’할 수 없잖아요. 후킹으로 들어간 이슈는 지브리 AI였지만, 핵심은 그록(Grok)이랑 X(구 트위터)가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해서 AI 학습에 활용한다는 보도였어요. 예를 들어, ‘X는 계속 쓰고 싶은데 내 개인정보가 수집되는 건 싫다’는 사람은 대안을 찾기가 어려워요. 그런 맥락에서 ‘인터넷 플랫폼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항의하거나 이탈하거나, 혹은 여전히 충성할 수밖에 없는가’를 살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AI가 떠오르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인터넷에 직접 검색하지 않고, 인터넷 생태계가 무너질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요.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언론사에는 위기죠. 클릭 기반 모델 자체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는데, 검색마저 AI로 대체된다는 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희망은 결국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진정성 있는 텍스트’라고 생각해요. 표현이 추상적이긴 하지만, 그런 글을 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저 역시 그런 콘텐츠를 어떻게 더 잘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요즘 나온 콘텐츠 중에서 그런 기준을 넘는 건 1%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자신에게도 허들이 높은 편인데, 다행히 그 기준에 맞춰서 쓴 글이 대체로 독자 반응도 좋았어요. 늘 독자 반응을 의식해서 쓰기보다는 제 기준에 맞는 글을 써 왔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이 재밌게 읽어 주셨어요. 결국 중요한 건 자기 기준이라고 생각해요.
언제 가장 재밌는 글이 나오는 것 같나요?
글 쓰는 사람 입장에서 모든 걸 계획해 놓고 쓸 수는 없어요. 기사도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단서가 나올 때 제일 재밌잖아요. 뉴스레터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지금 있는 시공간과 책의 메시지가 연결되면서 의외의 무언가가 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가장 재밌는 글이 나와요. 글을 너무 계획적으로 쓰면 재미가 떨어져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오려면 즉흥적일 수밖에 없어요. 예상했던 루틴에서 벗어나는 지점에서 흥미로운 포인트가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인스피아는 ‘사람들이 글 읽는 걸 싫어하지 않을 거다’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어요. 저한테는 ‘뉴스레터’에서 ‘뉴스’가 아니라 ‘레터’가 더 중요했어요. 진짜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4년 정도 해보니, 확신이 생겼어요. 제가 진심으로 쓴 글을 깊이 있게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희망을 봤어요. 그래서 앞으로 인스피아가 아니더라도, 이런 독자 분들과 더 좋은 읽기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이진호 기자/이다윤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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