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에서 본 K-애니의 세계화 전환점
-하청에서 기획 주체로… 달라진 애니 산업 구조
-상명대 애니메이션전공 조옥희 교수, K-애니메이션 미래 비전 인터뷰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본 미국 미시간대학교의 학생 A 씨가 한국인 유학생 B 씨에게 부탁한 말이다. ‘그 모자’는 극 중 캐릭터 사자 보이즈가 무대 의상으로 착용한 전통 ‘갓’.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이 갓을 미니어처 키링으로 만들어 ‘뮷즈(박물관과 굿즈를 합친 말)’로 판매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지난달 박물관 관람객은 69만 455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는데, 이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흥행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박물관의 뮷즈 판매점에는 ‘케데헌’과 관련한 물품은 모두 ‘솔드 아웃’ 안내문이 붙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하 ‘케데헌’)’은 전통적 퇴마 서사를 K팝 아이돌이라는 콘셉트와 결합한 판타지 액션물이다. ‘케데헌’은 넷플릭스 역대 흥행 영화 4위에 등극했으며, 5일(현지 시간) 빌보드 차트에는 OST에 실린 여덟 곡이 ‘핫 100’에 동시 차트인했다. 칼을 든 여성 아이돌 그룹이 한국적 색채가 가득한 배경 속에서 악귀와 싸우는 이 이야기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커뮤니티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는 중이다.
단순히 ‘한국풍’ 애니메이션이라는 차원을 넘어, K-콘텐츠가 전통까지 포함한 문화적 상징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그만큼 지금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소비의 경계를 넘어, 기획·창작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K-애니메이션은 지금 어떤 흐름 속에 있으며, 애니메이션 제작을 꿈꾸는 젊은 창작자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한국형 애니메이션 콘텐츠 기획과 애니메이션 교육 현장을 오가며 활동해온 상명대 애니메이션 전공 조옥희 교수에게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물었다.
“케이팝, 전통… 한국 애니메이션이 가진 고유한 힘”
조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케데헌’은 한국계 창작자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미국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라며 “단순한 국산 콘텐츠는 아니지만 K-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K-문화 기반의 글로벌 애니메이션”이라고 강조했다.
K-애니메이션에서 어떤 전환점? ‘케데헌’이 보여준 가능성은 무엇인지
"‘케데헌’이 전환점이 되는 이유는 ‘한국 문화 콘텐츠의 세계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K-POP이라는 글로벌 문화 자산이 스토리텔링 IP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한국적 코드를 글로벌 감각으로 시각화하고, 한국인 창작자가 핵심 기획자이자 표현 주체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창작 주체로서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글로벌 진출을 준비함에 있어, ‘케데헌’은 전략적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수 있다”
K-POP과 애니의 융합, 애니 콘텐츠 산업에 주는 메시지는
“이 작품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흐름인 초장르 융합형 창작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팬덤 기반의 서사 확장, IP 중심의 미디어 믹스, 문화 주체성과 표현방식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산업적 효과가 크다. 단순 소비를 넘어서 세계관을 공유하고 확장하는 구조는 애니메이션의 산업적 위상과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케데헌’은 애니메이션 산업이 타 장르와 전략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 크로스오버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며, K-애니메이션이 독립형 IP로 진화하기 위한 중요한 사례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현재 상황과 발전 가능성은 어떠할지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전환기적 국면에 진입해 있다. 기술력과 창작력을 바탕으로 한 기획 주도형 콘텐츠의 확장 가능성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OTT 중심의 유통, 웹툰과 게임 IP 기반 콘텐츠의 확산, 리얼타임 렌더링 등으로 독자적 세계관을 갖춘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로 ‘킹 오브 킹스’를 꼽을 수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어린이용 콘텐츠나 하청 중심의 제작 모델을 넘어, 글로벌 시장 진입 가능성을 실증한 작품이다. 앞으로 K-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은 단순히 ‘한국 제작 콘텐츠’라는 국적적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 전통 설화나 가족 서사 등 고유한 정서와 한국만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어떻게 시각화하고 전달하느냐에 있다. 결국, 한국 애니메이션은 다양한 산업과 연계한 트랜스미디어 전략을 통해 서사 중심의 글로벌 콘텐츠 산업으로 재편되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현재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현재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은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프리비즈부터 파이널 렌더까지의 과정이 실시간 환경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미래의 창작자는 ‘디렉터형 인재‘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학생들은 리얼타임 제작과 실감형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실습 경험, 생성형 AI 활용, 기획과 서사 설계 능력, 그리고 복합 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를 갖춘 ‘통합형 인재’로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만의 감수성과 주제 의식을 가진 창작자로 성장하는 것이다. 기술은 평준화될 수 있지만, 무엇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은 오직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다. 창작은 기술 이전에 태도이자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이기에 진짜 중요한 건 자기 언어로 해석된 기획력이다. 지금 애니메이션 학생들은 ‘나만의 관점’을 가진 통합형 창작자가 되기 위해 훈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이진호 기자/이윤진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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