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자극적인 연출과 피해자 보호 미비, 사실 왜곡,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 조장 등 다양한 윤리적 쟁점도 따라온다. 공익성을 가지는 프로그램들의 특성상 이러한 쟁점들을 충분히 제고해 볼 필요가 있다.
E채널 <용감한 형사들>은 지난 5월 관련 콘텐츠의 누적 조회 수가 4억25만3654회를 기록했다. 또한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지난 6월부터 꾸준히 약 3%에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꾸준히 등장함과 동시에 점차 진화하고 있다는 것도 화제성의 하나의 증표다. 2020년 이전까지는 사실 전달 중심의 탐사보도형 프로그램이 주를 이뤘다.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공익성을 강조하며, 실제 범죄 사건을 있는 그대로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범죄 관련 콘텐츠는 감정 몰입형 스토리텔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사건 전개를 극적으로 구성하고, 등장인물의 감정선에 집중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출연진의 내레이션, 인터뷰, 재연 장면 등 예능 요소를 접목하면서 콘텐츠는 대중 친화적인 방향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법의학, 프로파일링, 심리 분석 등 과학적 기법을 활용한 전문성 있는 포맷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감정 몰입이나 재연을 넘어 사건의 구조와 본질을 분석하는 교양형 콘텐츠로서의 성격을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범죄 프로그램들은 사실 전달에서 시작해 공감 중심의 소비, 그리고 전문적 분석으로까지 발전하며, 시청자의 욕구와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송효종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범죄 사건은 자극적인 소재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유리하다”며 “이는 단순한 기획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구조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물리적으로는 더 안전해졌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일상에서 체감하는 위협이 줄어든 만큼 간접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자극적 범죄 콘텐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격화된 경쟁과 사회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며 “범죄 콘텐츠는 그 안에서 자신이 ‘정상적’이라는 감정을 확인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비정상적 존재인 범죄자를 관찰함으로서 시청자는 자신이 ‘저들과는 다르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의 불만족을 타인의 일탈을 통해 상쇄하려는 욕구와도 연결된다.
이 같은 범죄 프로그램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사회적으로 유익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긍정적 효과 중 하나는 잊힌 사건의 재조명이다.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 수사가 다시 진전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또 범죄 프로그램은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예방 효과를 유도하기도 한다. 특히 법의학, 프로파일링 등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콘텐츠는 범죄에 대한 이해도와 대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송 교수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범죄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위험을 자각해 스스로 노출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즉,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이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공익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존재한다는 평가다.
범죄 콘텐츠의 증가와 함께, 표현 수위에 대한 윤리적 우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프로그램이 사실성을 높인다는 명목 아래 살해 수법, 시신 훼손, 범행 도구 사용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등급 기준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프로그램이 15세 이상 혹은 전체 관람가로 분류되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홍영기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 콘텐츠는 ‘보도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일반 콘텐츠보다 더 무방비하게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기에 오히려 더 엄격한 검열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극적 콘텐츠에 대한 분명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홍 교수는 “노출 장면은 청소년에게 제한되지만, 나체가 표현된 고전 미술은 예술로 받아들여진다”며 이는 자극의 목적과 맥락에 따라 규제의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역설적이다. 홍 교수는 “영화는 허구임에도 수위가 높으면 19금으로 분류되지만, 범죄 프로그램은 사실을 다룬다는 이유로 더 낮은 등급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시청자는 영화를 허구로 받아들이지만, 범죄 콘텐츠는 실제 사건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등급과 표현 수위에 대한 기준 강화를 촉구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콘텐츠 제작 방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민감 장면 사전 고지, 모자이크 및 음향 처리 강화, 감정적 거리두기를 위한 연출 장치 마련 등 구체적 보호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범죄 관련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면서, 피해자와 목격자 보호 문제는 핵심적인 윤리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유가족이나 사건 관계자의 인터뷰가 방송에 등장할 때, 익명성과 사생활 보호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낙인이나 원치 않는 재소환의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 교수는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극적 묘사는 피해자 보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사법 선진국에서는 피해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사망 원인조차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며 보다 섬세한 접근을 주문했다.
목격자 보호 역시 취약한 상황이다. 실제 인터뷰 장면이 충분한 변조 없이 방송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송세호 대전서부경찰서 여성 청소년팀 형사는 “모자이크나 음성변조가 이뤄졌더라도 수사 경험상 지역사회나 관계자들은 인물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력 사건의 경우 보복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목격자의 신원이 노출되면, 향후 추가 증언이 위축되는 부작용도 생긴다. 결국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핵심 자원이 콘텐츠 소비의 일부로 소모되는 셈이다. 콘텐츠 제작자는 피해자와 목격자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당사자 동의 확보,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 절차를 제작 전 과정에서 준수해야 한다.
홍 교수는 “이른바 ‘사실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는 표현은, 허위일 가능성을 제작자가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책임 회피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허구라고 주장하면 정정 보도의 의무를 피할 수 있지만, 시청자 뇌리에는 특정 인물이 실제 가해자처럼 각인된다”며, “결과적으로는 대중 재판의 장이 형성되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정보의 정확성 부족도 또 다른 문제다. 일명 ‘신정동 엽기토끼 사건’처럼 특정 캐릭터나 단서가 방송을 통해 반복 소비되면서, 사실관계가 단순화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형, 수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형사는 “엽기토끼는 사건 발생 10년 후 진술에 등장한 것으로, 초기에 확보한 정보와는 차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콘텐츠가 허구를 가미하더라도 ‘사실에 기반했다’는 인상을 줄 경우, 실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작자는 ‘오류 없는 사실’과 창작적 장치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범죄 관련 프로그램이 자극성에 치우칠 경우, 본래의 제작 의도와는 전혀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법 체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홍 교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드라마틱하게 재현해 놓고, 정작 그 사건이 어떤 법적 원칙에 따라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생략하거나 단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시청자는 납득할 수 없는 형량이나 판결만 접하게 되고, 사법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사실관계가 인정됐고, 어떤 부분은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판단됐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판결의 정당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특히 “법에 관심 있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보도에 회의감을 느끼고 외면하게 되면서 일반 시청자만 혼란에 빠지는 구조”라고 우려했다.
또한 자극적인 범죄 묘사는 범죄자 또는 잠재적 범죄자에게 왜곡된 학습 효과를 줄 수도 있다.
송 교수는 “범죄 콘텐츠가 반복적이고 자극적으로 소비되면, 범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수 있고, 심지어 범죄를 정당화하거나 모방하려는 인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특히 잠재적 범죄자에게는 일반 시청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방송 통신 정책 차원에서 명확한 제작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기존 범죄를 다루는 콘텐츠는 단순 오락물이 아닌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매체로 인식된다. 제작자에게는 의도했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더욱 세심한 기획과 윤리적 책임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한편, 우후죽순 생겨나는 범죄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작진들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위상현 ‘그것이 알고싶다(SBS)’ PD는 “목격자의 신변 보호를 제작진도 처음부터 많이 걱정했다”며 “그래서 방송 시점을 피의자 구속 이후로 맞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때문에 취재 과정에서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며 “피해자에게는 피의자 구속 전까지 경찰이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송다연 대학생 기자]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