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위 지렁이를 안전하게 옮기는 홍익대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도심 옥상에서 꿀벌을 돌보는 서울대 '양봉부'
-작은 생명 돌봄에서 시작되는 MZ세대 친환경 실천

최근 대학가에서 새로운 형태의 환경 실천이 생겨나고 있다. 텀블러 사용이나 플로깅처럼 비교적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넘어, 학생들이 직접 생명을 돌보고 지키는 방식으로 확장된 것이다. 홍익대학교의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양봉부는 그 주목할 만한 활동 중 하나다. 학생들은 손끝으로 지렁이와 꿀벌을 직접 보살피며, 생명을 돌보는 경험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다. 두 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길 위의 작은 생명 지키는 홍익대생들,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장마철이면 아스팔트 위에 나와 있다가 햇볕에 말라 죽는 지렁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을 모았죠.”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4학년 학생 다섯 명이 올여름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이하 지구대)’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팀은 공식 동아리나 수업 과제가 아닌, 방학을 함께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꾸려졌다. 구성원은 서연, 은채, 정원, 지윤, 지한. ‘지렁이 구하기’는 평소 박지한 씨가 메모해둔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팀원들의 모습 (사진: 김희수 씨 제공)
‘지렁이 구하기 대작전’ 팀원들의 모습 (사진: 김희수 씨 제공)
지구대의 첫 활동은 홍익대 서울캠퍼스 곳곳에 설치한 ‘지렁이 보호소’와 ‘지렁이 구조 도구 보관함’이었다. 보호소는 장마철 흙 밖으로 나온 지렁이가 도로 위에서 방황하지 않고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만든 작은 쉼터다. 바닥에는 배수 시스템을 두고, 흙·낙엽·신문지를 채워 지렁이가 먹고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그러나 올여름 장마는 예상보다 짧았고, 강한 햇볕 때문에 보호소 흙이 쉽게 말랐다. ‘지구대’는 매일 물을 뿌려주며 관리하다가 결국 여름이 끝나기 전 지렁이를 화단에 방류했다. “혹시 안에 있던 지렁이가 죽었을까 걱정했는데, 네 마리 정도가 흙 속으로 잘 파고 들어가는 걸 보면서 뿌듯했어요.” 정원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캠퍼스 내에 설치된 ‘지렁이 보호소’ (사진: 김희수 씨 제공)
캠퍼스 내에 설치된 ‘지렁이 보호소’ (사진: 김희수 씨 제공)
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팀원들은 일상 속에서도 지렁이를 구할 수 있도록 ‘지렁이 구조 도구 키링’을 제작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액세서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렁이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구조 도구다.

키링은 밀랍천으로 만든 나뭇잎 모양 천과 손잡이 막대기로 구성됐다. 지렁이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부드럽게 들어 옮길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다. ‘지구대’는 “사람 손에는 핸드크림이나 화장품 같은 화학 물질이 묻어 있을 수 있다”며, “지렁이는 체온도 낮고 피부가 민감해서 직접 만지기보다 도구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지렁이 구조 도구 키링’의 모습 (‘지구대’ 제공)
‘지렁이 구조 도구 키링’의 모습 (‘지구대’ 제공)
‘지구대’의 활동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공유되고 있다. 팀원들은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에 관심을 보이고, 댓글로 공감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실제로 키링 관련 게시물에는 “초등학교 교사인데 이 활동을 학교에서 진행해보고 싶어요”, “좋은 활동 응원합니다” 등 긍정적인 반응이 달리고 있다.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는 키링이 환경 보호의 실질적인 도구로 자리 잡기를 바랐던 ‘지구대’의 소망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렁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구의 창자’라고 부를 만큼 지구에 유익한 생물이다. 지렁이의 분변토는 토양의 질을 높이고 생태계 환경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구대’ 활동의 배경에는 단순한 ‘환경 보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저희가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단지 지렁이가 유익한 생물이어서만은 아니에요. 작은 생명이 약하다는 이유로 밟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거죠. 결국 아스팔트 같은 환경을 만든 건 인간의 책임이잖아요.”

‘지구대’의 활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면서, ‘지렁이 구하기’는 더 이상 다섯 명만의 프로젝트가 아니게 되었다. 팀원들은 “누군가 보호소에 지렁이를 옮겨 넣고, 그 안에서 지렁이가 살아가는 것을 확인했을 때 느낀 보람은 특히 크다”고 전했다.

“지렁이를 구한다는 건 단순히 눈앞의 한 생명을 살리는 것 이상이에요. 작은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손을 내미는 행위는 지렁이를 넘어 길고양이, 나아가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까지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팀원들은 모두 졸업을 앞두고 있어 학업에 집중해야 하지만, 내년 여름 다시 보호소와 도구 보관함을 설치하고, 키링 프로젝트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도심 속 꿀벌과 생태계를 지키는 캠퍼스 프로젝트, 서울대 환경대학원 양봉부
양봉 활동 중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양봉부 (사진: 양봉부 제공)
양봉 활동 중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양봉부 (사진: 양봉부 제공)
한편, 관악구에서는 꿀벌을 키우는 활동이 진행 중이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양봉부는 2013년, ‘생명을 직접 돌보는 실천’을 목표로 환경대학원 학생회에서 출발했다. 설립 당시에는 학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는 실습·수익 모델을 찾던 것을 계기로 시작됐지만, 이후 동문기업 ‘Green Urbanist’와 MOU를 체결하면서 공식적으로 꿀벌을 관리하는 프로젝트로 확장됐다. 현재는 재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동문기업이 함께 운영하며,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꿀벌을 키우고 꿀 ‘GSES Honey(환경대학원 꿀)’을 생산하고 있다.

활동은 이론 학습과 현장 실습, 기록·평가 과정을 거쳐 진행되고 있다. 신입 구성원은 먼저 양봉학과 생태학, 안전교육을 필수로 이수하게 된다. 이후부터는 월 1~2회 주말 오전에 정기 내검을 하며 벌들의 산란 상태와 꿀·화분 저장 상태, 질병과 해충 유무를 점검한다. 봄과 초여름에는 밀원기 채밀을 진행하고, 가을에는 말벌 방제와 월동 준비에 집중하며, 겨울에는 벌의 보온과 먹이 보충에 힘쓴다.

양봉부장은 “양봉은 위험할 수도 있는 활동이기에 보호구 착용, 알레르기 대응, 학내 안전 기준 준수는 기본”이라며, “개화기 기록을 축적해 군세와 환경 조건을 꾸준히 추적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채밀판에 꿀을 저장하는 꿀벌들 (사진: 양봉부 제공)
채밀판에 꿀을 저장하는 꿀벌들 (사진: 양봉부 제공)
양봉부의 목적은 꿀을 많이 따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꿀벌을 매개로 도시 생태계 보전과 학습의 장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는다. 관악캠퍼스가 가진 풍부한 밀원과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꿀벌 같은 수분 곤충이 머물 수 있는 친환경적 공간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

향후 계획도 뚜렷하다. 개화 시기와 벌 건강 데이터를 시민과학 형태로 축적해 도심 생물 다양성 관리에 기여하고, 학내·지역 공동체와 협력해 ‘친수분자(bee-friendly) 캠퍼스 가이드라인’을 제안할 계획이다. 나아가 환경관리학 전공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학술 논문으로 연구 성과를 확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양봉부는 “부원들이 생명을 돌보는 경험을 통해 환경 실천의 내실을 다지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 활동이 학문적·실천적 기여를 동시에 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양봉부의 일상적인 돌봄은 꿀벌 한 마리를 넘어 도시 전체의 생명 순환을 지켜내는 힘이 되고 있다.

작은 생명을 향한 손길은 대학 캠퍼스 안에서 시작됐지만,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지렁이를 들어 올리는 순간, 벌통 앞에서 땀을 흘리는 시간은 단순히 한 생명을 살리는 차원을 넘어 환경과 공존을 고민하게 만든다. 지렁이와 꿀벌을 지키려는 대학생들의 시도는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갈 도시와 지구를 지켜내는 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진호 기자/이윤진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