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하 고벤처클럽 회장

2021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어 부동산 STO(토큰증권) 플랫폼을 운영하며 시장을 선도해 온 루센트블록은 지난 4년간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금융소비자 보호와 인프라 안전을 최우선으로 첫 고객을 모으는 데만 3년반의 시간을 투자했다. 결과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도 수백 억 원의 자본을 투입하고 구성원들은 젊음을 바쳤다. 그 시간 동안 샌드박스의 취지대로 많은 위험을 떠 안고 시범운영을 거쳐왔다.

그 결과, 약 300억 원 규모의 거래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11개의 건물을 상장, 이용자 약 50만 명 확보 등 시장 검증을 이뤄냈다.

실증 과정을 거쳐 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제도화가 논의되면서 정책의 기류는 급격히 현장에 없었던 기성 금융권 중심으로 흘러갔다.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준공공기관인 한국거래소와 공적 성격을 가진 기관인 넥스트레이드(NXT)가 유통 인허가 경쟁에 나선 것이다. 공적 지위를 앞세운 두 기관의 요구에, 2~3주 사이 다수의 증권사들이 두 기관의 컨소시엄 참여를 결정했다.

심지어 넥스트레이드는 투자검토를 이유로 루센트블록의 기밀이 포함된 자료를 요청, 검토 중 직접 인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검토를 이유로 기밀유지계약(NDA)을 해가며 루센트블록에 기술, 시장, 영업 전략 등 인가 심사에 핵심적인 민감 정보에 접근했고 투자거절 답변을 주기도 전, 직접 참여를 결정하고 증권사들에 컨소시엄 참여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루센트블록이 가진 주요 경쟁력은 4년간 실증을 직접 해본 데이터와 무형의 기술적, 영업적 노하우다. 취득한 정보를 투자검토에만 사용한다는 NDA에 날인해가며 그 정보에 접근한 넥스트레이드는 그렇게 1~2주 사이 경쟁자로 나타났다. 일반 기업이 행해도 불공정거래로 지탄받고 법적으로도 NDA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를 공적 성격을 가진 기관이 자행하고 있다.

법과 제도에서 이런 문제가 다뤄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안전망까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샌드박스 제도의 근거인 금융혁신지원특별법 제정 당시, 국회와 정부는 실증이 끝나고 막상 제도화가 되면 기성 대형업체들이 시장을 접수할 것을 우려해 실증에 참여한 혁신금융사업자에게 인가 시 배타적 운영권(법 제23조) 최대 2년 부여를 명문화 했다.

모방이 쉬운 금융업 특성상, 먼저 위험을 감수한 주체가 제도화 과정에서 최소한의 인정과 보호를 받게 하려는 금융위의 안이었고, 국회 소위 논의 과정에서 혁신서비스의 기성 대형 금융사의 모방문제가 강조돼 기간도 최대 1년에서 최대 2년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일반적인 입법취지의 미이행 수준이 아니다. 다른 곳도 아닌 정부주도로 탄생해 공적지위를 가지고 있는 준공공기관이 가장 선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가담하고 있다.

실증과정에서 어떤 참여도 없다가 불확실성이 없어지고 제도화가 될 때쯤 나타나 시장을 접수한다. 시장 내 공적지위를 적극 이용해 필요한 재원은 증권사로부터, 필요한 정보는 몇 년간 실증해온 업체들로부터 취득한다.

루센트블록 1639일, 한국거래소 31일, 넥스트레이드 3일. 각 주체가 쏟아 부은 시간이다. 인고의 시간과 희생에 대한 열매가 엉뚱한 주체들에게 가버린다면 그 누구도 창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창업과 스타트업에서 나온다. 더 많은 인재들이 기업가 정신으로 뭉쳐서 혁신을 하고자 하는 환경이 조성 되어야 국가의 미래가 있다. 대한민국이 더 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고영하 고벤처클럽 회장
고영하 고벤처클럽 회장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