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를 잡는 순간, 일상이 달라진다, 2030 여성 사로잡은 ‘취미 발레’ 열풍
최근 취미 시장에서 발레가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배우는 예술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발레가 이제는 직장인과 대학생들이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즐기는 취미 활동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발레 학원에는 성인 수강생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으며, 발레복과 관련 상품 판매량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2025년 11월 한 달 동안 ‘발레’ 검색량은 약 1만2000건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04% 증가했다. 전월과 비교해도 83% 늘어난 수치다. 발레복 관련 검색량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졌다. ‘발레복’ 검색량은 365% 증가했고 ‘발레 팬츠’는 769%, ‘발레 상의’는 506% 증가했다. 한편 발레를 검색한 이용자 가운데 약 80%가 2030세대 여성으로 나타나는 점은 취미 발레 트렌드가 특정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발레는 운동을 넘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소비되며 새로운 취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발레가 2030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발레가 재밌어요
직장인 박채은 씨는 1년 이상 발레를 하고 있는 20대 여성이다. 한 가지 운동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는 그는 “헬스는 재미가 없었고 필라테스는 발레랑 비슷하다고 느꼈다”며 “발레는 운동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조금 더 특별한 운동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쉬운 경험은 아니었다. “열몇 명 앞에서 뻣뻣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라며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수업이 지나며 박채은 씨에게 발레는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해 운동이 되는 느낌이 크지 않았지만, 수업을 거듭할수록 동작을 이해하게 되면서 변화가 느껴졌다. 그는 “동작을 훨씬 깊게 쓸 수 있게 돼 1분만 해도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이 된다”며 “겉으로 보기에는 팔을 많이 쓰는 운동 같지만 실제로는 수업의 90%가 다리 운동이라 쉬는 시간도 거의 없고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고 말했다. 몸의 변화도 조금씩 나타났다. 박채은 씨는 “어느 순간 체중이 8kg 정도 빠지며 몸이 가벼워졌다”며 “어깨 라인이 정리되고 목이 조금 길어진 것 같다”고 운동 효과를 칭찬했다.

발레는 박채은 씨에게 운동 이상의 경험이 됐다. 그는 “수업이 너무 힘들어서 잡생각을 할 수가 없다”며 “동작 순서를 계속 외우고 바로 적용해야 해서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안 되던 동작이 갑자기 잘될 때와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잘했다’는 느낌을 줄 때 정말 기분이 좋다”며 수업이 끝난 날의 하루를 기분 좋게 회상했다. 이처럼 박채은 씨에게 발레는 몸을 움직이며 몰입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취미로 자리 잡았다.
박채은 씨의 취미 발레 현장 (사진 제공 박채은 씨)
박채은 씨의 취미 발레 현장 (사진 제공 박채은 씨)
발레, 나를 드러내는 또 다른 정체성
발레 교육 현장에서도 성인 취미 발레 참여자 증가를 체감하고 있다. 김지영 경희대학교 무용학부 교수는 취미 발레 열풍의 배경에 대해 “몸에 대한 관심과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자승 홍익대학교 공연예술대학원 교수(전 국립발레단 솔리스트)는 “취미 활동을 통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예전에는 그런 정체성을 보여주려면 전공을 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기준이 없기에 ‘성인 발레’·‘취미 발레’ 같은 용어가 등장할 정도로 대중화된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를 전공하거나 전문성을 갖추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취미 활동만으로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레 확산의 또다른 배경으로 SNS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취미 문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보여지는 취미’다. 취미 활동을 SNS에 공유하고 기록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취미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재홍 교수는 “보여지는 취미라는 말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나는 외모가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이며 또 하나는 남들과 차별화된 취미를 갖는다는 의미"라며 발레가 이러한 문화와 잘 맞는 취미라고 설명한다. 특히 발레는 시각적인 요소가 강한 활동이다. 음악과 동작, 복장과 분위기가 결합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미지 중심의 취미로 자리 잡기 쉽다. 원자승 교수 역시 “발레는 시각적으로 자신이 만족하는 부분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취미라고 생각한다"라며 발레와 SNS에 대해 마냥 과시한다는 것보다는 예술적 이미지와 자기 관리 이미지를 동시에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얘기했다.

내 몸에 몰입하는 시간
취미 발레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몸과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박재홍 교수는 “발레는 음악을 듣고 리듬을 느끼면서 머릿속으로 동작을 떠올리고 이를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활동”이라며 “청각과 신체 감각이 함께 작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몰입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레 수업에서는 음악에 맞춰 동작을 기억하고 순서를 따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중력이 요구된다”며 “이 과정에서 몸을 세밀하게 인식하고 조절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발레는 신체 활동과 예술적 표현이 함께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음악과 움직임에 집중하는 시간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자신의 몸과 감각에 몰입하는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자승 교수는 발레의 특징에 대해 “몸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인지하고 집중하면서 수행하는 예술 활동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피트니스 운동과는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발레는 음악과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활동이다.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체 감각에 대한 높은 집중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높은 몰입 경험으로 이어진다. 원자승 교수는 이에 대해 “취미 발레는 마냥 땀흘리는 운동을 하는 것 이상으로 몸을 통해 예술을 경험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원자승 교수는 "음악의 흐름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과정 자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심리적으로도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며 심리적 효능도 언급했다. 이와 함께 체형 개선 등 몸의 변화를 체감하는 경험 역시 취미 발레에 대한 몰입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원자승 교수의 발레 물품 (사진: 이수민 대학생 기자)
원자승 교수의 발레 물품 (사진: 이수민 대학생 기자)
유행을 넘어 새로운 문화로
취미 발레 열풍이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 것인지에 대한 시선도 있다. 박재홍 교수는 비교적 긴 흐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도 1970~80년대에 발레 붐이 있었고 어린 시절 발레를 경험한 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취미 발레가 확산된 사례가 있다”며 “한국 역시 어릴 때 발레를 접해본 세대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이 일정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진 만큼 과거처럼 오랜 기간 지속되기보다는 일정한 유행의 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박재홍 한성대학교 예술학부 발레 전공 교수는 "지금은 문화 소비의 변화 속도가 빨라 10년 단위로 유행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유행이 사그라들어도 완전히 사라지기보다는 하나의 취미 문화로 자리 잡으며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취미 발레는 공연 관람 문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원자승 교수는 "최근 공연 관객의 80% 이상이 취미 발레를 하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며 "본인이 배운 동작을 프로 무용수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주로 찾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발레를 취미로 시작하기 전에도 작품을 미리 습득하며 관심을 가지는 등의 소비도 활발하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취미 발레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원자승 교수는 “처음 발레를 접할 때 단순히 운동으로만 생각하기보다는 예술적인 경험으로 이해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며 “발레가 어떤 역사와 특징을 가진 예술인지 조금이라도 알고 시작하면 훨씬 더 흥미를 느끼고 지속하기도 쉽다”고 제언했다. 이어 “이러한 이해가 쌓이면 발레 수업뿐 아니라 공연을 관람할 때도 작품을 더 깊이 즐길 수 있어 자연스럽게 문화 소비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취미 발레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예술과 문화 소비로까지 경험이 확장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취미 발레를 하는 사람들 역시 수업에서 느끼는 몰입과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직장인 박채은 씨는 “발레 수업을 듣고 나면 텐션이 올라간다"며 "그날 하루가 기분 좋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바를 잡고 시작된 취미 발레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새로운 문화 경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진호 기자/이수민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