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이해·데이터·비즈니스 설계까지 요구하는 만능 직군

어도비 스토리텔러 채용 공고. 홈페이지 캡처
어도비 스토리텔러 채용 공고. 홈페이지 캡처
‘스토리텔러’라는 이름의 고경력 전략 직군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스토리텔러’를 채용하고 있지만, 해당 직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글쓰기 중심 역할이 아닌 고도의 비즈니스 전략가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민정 중앙대학교 첨단 광고 PR 대학원 교수는 “스토리텔링은 전통적 PR 업무의 핵심이다. 최근 기업들의 스토리텔러 채용 확대는 새로운 직무의 등장이 아니다. 전략적 PR 기능이 현업에서 본격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채용 공고에 제시된 수치는 직무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구글 클라우드, 어도비, 넷플릭스 등 최근 1년 내 글로벌 선도 기업 11곳의 스토리텔러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요구하는 평균 경력은 8.2년이다. 연봉도 파격적이다. 보상 규모를 공개한 기업들의 하한선 평균은 약 25만 달러(한화 약 3억 4,000만 원)다. 위기관리 총괄이 핵심인 넷플릭스는 최소 65만 6천 달러, 최대 110만 달러(약 15억 원)를 제시한다. 오픈AI와 퍼플렉시티 등 AI 기업들은 고액의 기본급에 더해 주식 보상도 제안한다. ‘스토리텔러’라는 이름과 달리, 사실상 고경력 실무자 중심의 직업이다.

기술·커뮤니케이션·비즈니스로 이어지는 역할
채용 공고는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단순한 콘텐츠 제작이 아닌, 기술·커뮤니케이션·비즈니스로 이어지는 단계별로 정의한다.

첫째, 모든 역할의 출발점은 기술을 ‘팔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에반젤리스트’이다. 구글 클라우드와 어도비는 스토리텔러에게 AI 기술이 고객 비즈니스에 미치는 효과를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어도비는 외부 데이터를 검색해 AI의 답변 정확도를 높이는 검색 증강 생성(RAG),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대한 실무 지식을 필수 요건으로 명시했다. 앤트로픽 역시 복잡한 AI 기능을 최고위급 임원과 개발자가 이해할 수 있는 사업적 가치로 치환하는 능력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둘째, 이렇게 정제된 메시지는 기업의 평판과 위험을 관리하는 커뮤니케이션 기능으로 확장된다. 넷플릭스는 기업 커뮤니케이션 부문 시니어 디렉터에게 재무 실적을 방어하고 글로벌 규제 이슈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긴다. 오픈AI 역시 채용 공고에 확장 전략의 필요성을 언론과 정책 입안자에게 설득하는 업무를 포함했다.

셋째,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은 궁극적으로 매출로 연결되는 성과 관리 단계로 이어진다. 반타와 노션은 검색 엔진 최적화(SEO)와 생성형 엔진 최적화(GEO)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가 실제 수주로 이어지는 과정을 수치로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글쓰기가 아닌 전략...커뮤니케이션의 재정의
기업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기술 이해도, 즉 ‘테크 리터러시(Tech Literacy)’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이종혁 광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테크 리터러시는 최근 새롭게 등장한 역량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늘 요구되어 온 핵심 요소”라며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를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커뮤니케이션 맥락에 적용해 실질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직무의 확장이 아니라 기존 핵심 역량이 기술 환경 변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흐름은 공고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분석 대상 11개 공고 모두 타 부서와 일하는 ‘크로스펑셔널(Cross-functional) 협업’을 주요 역량으로 명시한다. 단독으로 글만 쓰는 자리는 없다. 스토리텔러는 제품, 엔지니어링, 영업, 경영진을 아우르며 전사적 방향성을 통합해야 한다.

“태도와 전략 모두 바꿔야”
초급 수준의 관행적 업무가 AI로 빠르게 대체되는 지금, 직업 역량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이종혁 교수는 “비판적(Critical), 창의적(Creative), 협력적(Collaborative) 사고라는 3C 역량은 이미 직급과 무관한 공통 역량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답을 알려주던 멘토의 시대는 끝났다”며 “취업 준비생이라는 수동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창의적 접근을 통해 능동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민정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의 본질 역시 달라지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순한 미학적 창작 능력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겟과 조직, 시장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진호 기자/오윤상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