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 펜을 놓던 시대, 전남대 학보사는‘5월의 메모’에 18일을 적지 못하자 백지로 저항했다.
1981년 5월 7일자 <전대신문>‘南으로만 흐르는 5月의 하늘’에는 시민군의 최후 항쟁지였던 전남도청 앞 분수대의 모습이 실려 있다. 사진 옆 ‘5월의 메모’에는 어린이날과 성년의 날, 석가탄신일이 차례로 적혀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칸은 끝내 비워져 있다. 5·18 1주년, 전남대 학보사가 택한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쓰지 않는 것’이었다.
앞으로 이어질 내용은 5·18 국제연구원 팀장 박진우가 1981년 당시 전남대 학생기자였던 인물을 상대로 진행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번 보도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증언이다.
“전국이 광주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1981년 5월, 전남대 학보사 내부에는 절박함이 흐르고 있었다. 기자들은 광주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했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가로막혔다. 1면을 백지로 내자는 의견이 나왔고 내부에서 합의까지 이뤄졌으나, 간사들의 반대에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8면 문화면 ‘5월의 메모’를 둘러싼 충돌은 더욱 거셌다. 기자들은 5·18 1주년을 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간교수는 강하게 반발하며 “차라리 신문을 내지 않겠다”는 말까지 꺼냈다. 그는 “학교 측의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문화면은 그의 담당이었다. 그는 결국 ‘5월의 메모’ 마지막 칸에 ‘▲20일=중간고사’를 넣어 검열을 통과시킨 뒤 ‘거사’를 준비했다. 조판이 완료되고 간사들이 최종 확인까지 마친 뒤, 그는 아무도 모르게 윤전국으로 달려가 윤전기 앞 직원에게 “오자가 났으니 이 부분을 파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윤전기에 걸려 있는 납활판에서 끌로 글자를 파내는 최후의 저항이 이뤄졌다.
그 결과 나온 것이 ‘5월의 메모’ 마지막 칸, ▲만 남고 내용은 사라진 ‘백지 메모’다. 그는 신문이 배포된 뒤 빈칸을 뒤늦게 발견한 간사들과 주간교수의 당황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신문 배포 전 전량 폐기도 논의했지만, 더 큰 문제로 번질 것을 우려해 결국 조용히 덮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후 언론계에 몸담아 기자로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5·18은 광주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전국이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고, 대학 언론은 각자의 방식으로 5·18을 써 내려갔다. 직접적인 언어가 막힌 자리에는 시와 그림, 상징과 은유가 대신 들어섰다. 그렇게 암호화된 언어로, 암묵적인 소통이 이어졌다.
그는 집필 과정에 대해 “초고는 직설적으로 썼는데, 당시 문학회 후배가 ‘너무 세게 쓰면 게재도 안 되고, 잡혀가서 고생할 수 있다’고 말해 현재의 내용으로 수정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광주를 ‘능선 고운 우리들의 어머니’로, 광주에 대한 소식을 ‘서쪽 캄캄한 바람’으로, 대학 축제를 ‘넋 잃은 축제’로, 오월의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파도처럼 무너지는 침묵’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바깥의 감시와 검열보다 내부의 검열을 더 무섭게 받아들여 썼기에, ‘비겁함’이 남아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를 인터뷰했던 5.18 국제연구원 박 팀장은 “그는 기자가 아닌 독자였다. 기고하고자 했던 독자들이 있었기에, 대학언론이 5·18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 아래에는 편집자 주가 덧붙어 있다. 편집자 주는 5월 18일을 “6·25 이후 최대의 민족적 비극”으로 규정하며, 해당 작품을 “비극의 그날을 되새기는 시”라고 설명한다. 시 본문이 은유를 통해 사건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면, 편집자 주는 그 의미를 외부에서 직접 특정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지면 하단에는 피를 연상시키는 흑백 그림이 함께 배치되어 있어 비극적 정서를 환기한다.
종교적 상징의 활용은 연세대 학보사에서도 확인된다. <연세춘추>는 1981년 5월 18일자 기고문 「하나님도 썩었다」에서 “썩어빠진 이 세상을 향해 흔한 벼락조차도 못 내리치시는 당신”이라 언급하며 사회 현실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진실은 어둠을 뚫고 나온다. 기성언론조차 침묵하던 시기, 학생기자들의 기록은 5·18의 진상규명과 민주화를 이끌어냈다. 우리는 그 기록을 따라 다시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물길은 이제 거리와 광장으로 이어진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대학생 특별취재팀-고서영, 유영훈, 이서영, 이정민 기자]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