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의 성지 된 이화광장
약 40년 전, 캠퍼스 안팎에선 이 구호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오늘과 달리, 대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공간이 아니었다. 학교 정문엔 경찰들이 자리를 지켰고, 학생들의 발걸음은 시위 현장으로 향했다. 불꽃이 일렁이던 학생운동의 중심지는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이대생 만 명의 민주화 성지, 이화광장
학생들은 억눌린 민주화를 향해 뜻을 표현하고 싶었다. 시험 거부부터 화염병을 휘두르기까지. 당시 이대학보 기자였던 87학번 김금숙 씨는 시위대 최전방에서 학생들과 함께 행동하며 현장을 취재했다. 저녁엔 학보사 지하 암실로 돌아와 촬영한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지에 옮기는 작업을 이어갔다.
당시 학내 본관, 이화교 등 곳곳에선 시위가 빈번했다. 그중 김 씨는 1년에 한 번씩 만 명의 학생들이 집결했던 이화광장을 떠올렸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거리 진출이었다. 대규모 시위를 원천 봉쇄하고자 정문에 배치된 진압 병력을 뚫고 대현동 시민들과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 것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다. 대규모의 집결지였던 이화광장 자리엔 ECC 이화캠퍼스복합단지가 들어섰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이 감시했던 정문도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
김금숙 씨는 변화된 캠퍼스에 감정이 교차했다. 김 씨는 “이화광장은 이대생들에게 민주화운동의 성지”였다면서 “그 젊은 열정들, 공동체가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명감이 이화 정신에 긍정적으로 남는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씨는 “그 자리에 표식 하나 없이 상전벽해된 모습이 아쉽다”고도 했다.
이화광장에서 군사독재에 맞선 학생들의 목소리가 고조되던 그 시기, 서울대학교 아크로 광장에서도 같은 함성이 이어졌다.
1987년 6월 10일, 서울대 아크로 광장에서 약 5천 명의 학생들이 모여 ‘박종철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출정식을 열었다. 이날 집결한 학생들은 캠퍼스를 넘어 시청 인근까지 행진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6·10 민주항쟁’으로 이어졌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까지 이끌었다.
지금의 아크로 광장은 어떤 모습일까. 평일 오후 방문 당시, 행정관과 중앙도서관 사이의 아크로 광장은 한산했다. 학내 지도에서도, 광장을 설명하는 안내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서울대 영어영문과 4학년 우 씨는 “평소 학생들은 광장을 중앙도서관에 오가는 통로로 이용해, 교내 행사나 특별한 시위가 없으면 조용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현 서울대생들은 다시 아크로 광장으로 모였다. 2024년 12월 5일, 정부의 계엄 선포에 윤석열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전학대회(서울대학교 전체 학생 대표자회의)가 이 자리에서 열리기도 했다.
우 씨는 “당시 총학생회장이 안건을 발표하기 전, 우리가 모인 이 광장이 학생운동 장소로서 지닌 역사적 의미를 짚었다”며 “직접 전학대회에 참가했을 때, 세대를 넘는 집단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교내에는 투쟁의 기억을 붙잡는 흔적이 남겨져 있다. 정문에서 도보 약 8분 거리 4·19 기념탑을 시작으로, 6월 항쟁까지 희생된 19명 서울대생의 기념비들이 1.2km '민주화의 길'로 조성됐다.
캠퍼스 밖, 신촌역 인근 이한열기념관도 같은 역할을 이어간다. 2004년 가족의 배상금과 시민 성금으로 설립된 이 기념관은 경찰의 최루탄에 쓰러진 이한열 열사의 희생과 민주항쟁 기록을 보존·연구·전시해 올바른 근현대사를 알린다.
기념관 3층엔 한국 시위 문화 변화를 주제로 26년 상반기 기획 전시가, 4층엔 이한열 열사의 유품 등 상설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각 전시장엔 관련 책자와 다국어 해설을 지원하는 QR코드가 배치돼 있다. 근현대 예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최루탄 피격 당시 열사의 유품부터 기증된 편지, 만화 그림들도 온·습도계로 철저히 보존된 모습이다.
현재까지도 이한열기념관은 시민들의 후원을 통해 인권, 자유,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전하는 공간으로 운영된다. 이한열기념관 관계자는 “이한열 열사와 6월 민주항쟁의 가치를 되새기고, 한열의 발자취를 따라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함께 걷기를 소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학생운동의 성지였던 광장은 세월 속 모습을 바꿨다. 그러나 위기 앞에 학생들은 다시 그 자리로 모였고, 열사들의 정신과 희생을 기리는 움직임도 이어진다. 달라진 것은 공간의 형태일 뿐, 불꽃같던 날들을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대학생 특별취재팀-고서영, 유영훈, 이서영,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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