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강국' 한국, 기술의 파도 앞에 서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커피 교육의 메카'다. 전 세계 커피 감별사(큐그레이더) 자격 취득자 중 약 40~50%가 한국인이라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전문 인력의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 역시 매년 수만 명씩 배출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장에서는 '일정한 커피 맛'을 유지하는 데 여전히 애를 먹는다. 인간의 숙련도는 컨디션과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 글로벌 공룡 스타벅스는 10여 년 전부터 전 매장에 전자동 커피머신을 도입하며 '표준화된 퀄리티'의 승리를 증명했다. 국내에서도 메가커피, 컴포즈커피 등 대형 프랜차이즈들이 전자동 시스템을 필수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제 커피 시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인프라가 되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융합형 바리스타'의 등장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된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할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바리스타가 우유 거품을 잘 내고 샷을 균일하게 뽑는 '숙련공'이었다면, 미래의 커피 전문가는 복잡해진 디지털 머신을 제어하고 최적의 추출 레시피를 설계하는 '시스템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원두데일리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키퍼(Keeper)'라는 새로운 직군을 육성하고 있다. 이들은 바리스타의 미각과 서비스 마인드를 기본으로 갖추되, 커피머신의 하드웨어 메커니즘과 추출 소프트웨어를 완벽히 이해하는 융합형 엔지니어다.
로봇이나 전자동 머신이 커피를 추출할 수는 있지만, 원두의 상태에 맞춰 분쇄도를 미세하게 조정하고 머신의 오류를 사전에 방지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영역이다. '키퍼'는 디지털화된 커피 시장에서 기술과 맛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뉴노멀 시대의 전문가인 셈이다.
직업의 종말이 아닌 '가치의 이동'
기술의 발전은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더 가치 있는 곳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단순 반복적인 추출 작업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커피의 '기획'과 '관리', 그리고 '고객 경험'에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최근의 스마트 카페 시스템은 고객의 취향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화된 원두를 추천한다. 이때 전문가는 데이터를 해석해 새로운 블렌딩을 기획하거나, 복잡한 머신을 최적의 상태로 세팅하는 고도의 기술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하이엔드 커피 시장에서도 머신을 전문적으로 케어하는 '테크니션 바리스타'의 몸값은 나날이 높아지는 추세다.
커피 DX, 인간의 전문성이 화룡점정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커피 전문가를 보유한 대한민국이 디지털 전환에서도 앞서가기 위해서는, 기술을 경계하기보다 기술을 다루는 인재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커피 시장의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기계를 들이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커피 한 잔에 담긴 일관된 품질, 효율적인 운영, 그리고 그 시스템을 지탱하는 전문가들의 전문성이 결합되는 과정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기술'을 넘어 '디지털 리터러시'와 결합할 때, 한국 커피 산업은 다시 한번 글로벌 시장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새봄 스프링온워드(원두데일리) 대표는 야놀자 CMO, 패스트트랙아시아, 오픈서베이 등 유수의 스타트업에서 사업 개발과 마케팅 총괄 임원을 역임하며 성공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2,500여 개 기업에 커피 구독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프링온워드를 운영하며, 데이터와 기술을 결합한 커피 시장의 디지털 혁신과 지속 가능한 오피스 문화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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