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브이로그]
하용호 데이터오븐 CEO(디캠프 배치 멘토)

요즘 많은 회사가 비슷한 길을 걷는다.

거액을 들여 전사에 AI를 깔고, 외부 강사를 불러 교육하고, AX 전담팀을 꾸린다. ‘이제 우리 회사도 달라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처음엔 다들 환호한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 묘한 정체가 찾아온다. 계정도 주고 교육도 했는데 막상 안 쓰는 사람이 더 많다. 개발자들은 그럭저럭 쓰는 것 같은데 비개발자는 좀처럼 손을 대지 않는다.

중간에 반짝 도약하는 구간도 있긴 하다. 누군가 사내 시스템에 AI를 연결하고, 해커톤이 열리고, '이걸로 이런 걸 만들었어요'가 사내 메신저에 쏟아진다. 누가 토큰을 더 많이 썼는지 리더보드를 걸고 경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신남은 오래가지 않는다.

리더 입장에서는 분명 뭔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정작 ’얼마나 빨라졌나’라고 물으면 체감상 10~20% 남짓이다. 기대했던 폭발적 도약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슬슬 사고가 난다. 충분히 리뷰되지 않은 AI 코드가 운영 환경에서 장애를 일으키고, 사람이 꼼꼼히 검토하지 않은 보고서를 근거로 잘못된 의사결정이 내려진다. 놀란 회사가 AI 사용 정책을 강하게 되돌리면, 그 회사의 AX는 반년쯤 뒤로 밀린다.

여기서 대부분의 경영진은 ‘우리 회사만 이런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단언컨대 아니다. 내가 여러 회사의 AX를 지켜본 결과, 회사들은 마치 환자가 병을 받아들이듯 놀랍도록 비슷한 단계(환호, 정체, 잠깐의 신남, 그리고 의구심)를 똑같이 통과한다. 구글의 개발 생산성 연구(DORA)에서도 같은 함정이 관측된다.

이 현상에는 이름이 있다. 'AI J커브의 함정'이다. AI를 붙인다고 곧바로 일을 잘하게 되는 게 아니라, 개인과 조직이 적응하는 깊은 구덩이를 한 번 지나야 비로소 이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도입 직후 오히려 속도가 더 느려지는 구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왜 구덩이에 빠질까. 핵심은 '검증세(Verification Tax)'다. 도입 전엔 ‘AI에게 시키면 딸깍 끝"’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AI가 일을 제대로 했는지 검증하고 확신하는 데 막대한 시간이 든다. 이 비용은 세 가지 부채로 모습을 드러낸다.

첫째, 기술부채다. 세심하게 가이드 되지 않은 AI는 지금 당장의 지시엔 충실하지만 회사 전체의 틀은 모른 채 국소적으로만 문제를 푼다. 코드가 빨리 쏟아질수록 뒷수습할 부채도 빨리 쌓인다.

둘째, 인지부채다. 예전엔 내 손으로 절차를 밟으며 자연스레 파악되던 맥락이, 이제 AI가 결과를 통째로 쏟아내면서 ‘따로 시간 내서 이해해야 하는 일’이 됐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이해마저 포기하고(인지적 항복),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결과물을 그대로 옆 사람에게 넘긴다. 다음 사람도 똑같이 한다.

셋째, 의도부채다. 산출물도 시스템도 남아 있는데 정작 '왜 그렇게 했는가'라는 의도는 휘발된다. 예전엔 사람들의 머릿속과 회의록·커밋 기록에 남던 맥락이, 한 사람이 AI와 단독으로 일하면서 곧 사라질 프롬프트에만 남고 증발해 버린다.

당신 회사의 AX 정체는 무능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회사가 같은 이유로 같은 구덩이를 지난다. 중요한 건 이 구덩이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그래야 빠져나올 수 있다.
하용호 데이터오븐 CEO (디캠프 배치 멘토)
하용호 데이터오븐 CEO (디캠프 배치 멘토)
하용호 데이터오븐 CEO (디캠프 배치 멘토)는 I를 도입한 회사들이 왜 기대만큼 빨라지지 않는지를 현장에서 들여다봐 왔다. 두 번의 스타트업 엑싯을 거쳐, 지금은 여러 기업의 AI 전환에 대해 자문하고, 이를 현장에서 직접 이끌고 있다. 국가AI전략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