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10만 원을 훌쩍 넘기는 코스 요리지만, 예약창은 수 분 안에 닫힌다. 초저가 식당 정보를 공유하는 '거지맵' 앱 가입자가 94만 명을 돌파했다. 대학 인근 사찰의 주말 무료 점심 배식에는 학생들이 몰려 100인분이 1시간 만에 바닥난다. 이른바 '절밥 오픈런'이다. 그러면서도 신한카드 빅데이터에 따르면 1인당 7만 원 이상 하이엔드 외식 결제의 35%는 20대가 차지한다. 전년 동기 대비 20대의 미쉐린 식당 이용 건수는 21.2% 폭증했고, 예약 앱 내 20대 이용자의 '오마카세·코스요리' 검색량도 45% 늘었다.
같은 세대가, 같은 달에, 같은 지갑으로 벌이는 두 가지 소비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장면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평범한 한 끼엔 쓸 돈이 없다
인플레이션은 20대의 밥상을 가장 먼저, 가장 세게 흔들었다. 외식 물가가 치솟으면서 '그냥 밥 한 끼'의 부담이 커졌다. 삼겹살 1인분, 김치찌개 한 그릇이 1만 원을 넘는 시대에 매일 세 끼를 외식으로 해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 결과 절약의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 전국 최대 규모로 운영되는 대학교 내 '천 원의 아침밥' 사업은 하루 평균 이용자 1,500명을 넘어서며 대기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지도 기반으로 7,000원 이하 식당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플랫폼 ‘거지맵’은 가입자 수가 94만 명에 이른다. 콘텐츠 형식을 빌린 짠테크 커뮤니티가 아니라, 실제 생활비 압박 속에서 작동하는 정보 인프라에 가깝다. 대학가 사찰의 무료 점심 배식은 더 직접적이다. 연화사 등 서울 주요 대학 인근 사찰에는 주말마다 학생들이 몰려 100인분이 1시간 내로 동이 난다. 과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극소수가 찾던 자리였다면 이제는 특정 계층을 가리지 않고 대학생들의 생존 루틴으로 자리잡았다.
이홍주 교수(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는 이를 생존 전략의 차원에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이홍주 교수는 "이걸 단순히 절약 트렌드로만 보기는 어렵다"며 "많은 청년들에게는 실제 생활비 부담을 버티기 위한 현실적인 생존 전략의 성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식비처럼 반복적으로 나가는 고정성 지출을 줄여서 전체 생활비를 관리하려는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현상이 과거 IMF 시절 절약 문화와 다른 점도 분명하다. 전문가들은 IMF 시기의 절약이 미래 회복을 전제로 한 '참는 소비'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반면 지금은 무조건 아끼기보다는 꼭 필요한 부분은 극단적으로 줄이고,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는 유지하는 선택적 절약의 성격이 더 강하다.절약의 방식 자체가 훨씬 더 선별적이고 개인화됐다는 것이다.
이은희 교수(인하대 소비자학과)는 이 세대의 소비 패턴을 합리적이라기보다 '전략적 선택'으로 규정한다. 이어 "기본적으로 소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일상은 극도로 절약하지만 그렇게만 살면 심리적으로 너무 우울해지기 때문에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하이엔드 외식을 즐긴다"고 설명했다.
일상에서의 극단적 절약은 특별한 순간의 소비로 이어진다. 평일 내내 사찰 밥을 먹고 거지맵으로 3,000원짜리 국밥집을 찾아다닌 청년 세대가 주말에는 10만 원짜리 오마카세 테이블 앞에 앉는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에 따르면 1인당 7만 원 이상 하이엔드 외식 결제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달한다. 전년 동기 대비 미쉐린 식당 이용 건수는 20대에서 21.2% 폭증했다. 식당 예약 앱 캐치테이블 내 20대 이용자의 '오마카세·코스요리' 검색량은 45% 늘었다. 비싼 외식을 즐기는 주체로서 20대는 더 이상 예외적 존재가 아니다.
이홍주 교수는 이 소비의 심리적 기제를 “평소 절약한다고 해서 소비 욕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일상에서 아낀 만큼 '정말 가치 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더 과감하게 지출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대에게 이런 소비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경험·만족·자기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파인다이닝이나 오마카세 소비가 SNS 과시와 맞닿아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도 이홍주 교수는 단순 허영으로 재단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는 자동차나 집 같은 자산이 사회적 신호였다면 지금은 경험 자체가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보여주는 방식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사회적 신호를 보내는 신호 소비(signaling consumption)의 성격도 있다"는 것이다.
이은희 교수는 이 소비에 두 가지 심리가 동시에 작동한다고 본다. 그는 "극도의 절약으로 인한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한 자기 만족과 타인에 대한 과시"라고 말했다. 이어 "고급 식당 경험은 잠깐의 소비가 아니라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경험 자산이 되기도 한다"는 점도 짚었다.
왜 중간이 사라지는가
20대의 소비가 양극단으로만 쏠리는 한편, 그 사이의 '보통 가격대'는 외면받고 사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제한된 예산 내 효용 극대화 전략으로 설명한다. 애매한 중간 가격대보다는 확실히 저렴해서 부담이 적거나 확실히 특별한 경험을 주는 소비가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결국 '어중간한 소비'보다는 명확한 만족을 주는 소비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경제학적 틀로 보면 이 전략은 합리적이기도 하다. 매일 반복되는 식비는 효용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느끼지만 경험 소비는 만족감이나 자기보상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홍주 교수는 이를 "모든 소비를 동일하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만족도가 낮은 소비를 줄여 높은 만족을 주는 소비에 자원을 재배분하는 소비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비 행태가 시장 구조를 실제로 바꾸고 있다. 외식업 폐업률이 18.5%에 달하는 가운데, 현장에서 가장 힘들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곳은 중간 가격대 식당들이다.
이홍주 교수는 "소비 양극화가 심해지면 가장 먼저 어려워지는 곳이 사실 중간 시장"이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애매한 가격과 애매한 만족을 주는 선택지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확실히 저렴하거나 반대로 확실히 특별한 경험을 주는 곳으로 수요가 쏠리면서 시장 구조 자체가 양극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교수는 같은 현상을 커피 시장으로 설명한다. "저가(메가커피·빽다방)와 고가(스타벅스)는 잘 나가는 반면 중간 가격대인 이디야가 가장 힘든 상황인 것과 같은 이치"라며 "소득 양극화로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중간 소비층 자체가 얇아진 것이 첫 번째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저소득층이라도 가끔씩은 하이엔드 소비를 하는 행태가 중간 가격대 수요를 더욱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전문가들은 중간 시장의 붕괴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단순히 경기 문제라기보다 소비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중간 시장이 완전히 사라진다기보다는 소비자에게 분명한 차별점을 주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무난함'만으로는 선택받기 어려워지고, 가격 경쟁력이든 경험 가치든 명확한 포지셔닝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압박이 만든 소비
지금 20대의 소비 패턴을 개인의 취향 변화로만 볼 수 있을까. 이홍주 교수는 이 현상을 세 가지로 짚었다. 첫째는 고물가·저성장·취업 불안의 복합 압박이다. 생활비 부담은 커졌지만 미래는 불확실하다 보니, 모든 소비를 줄이기보다 일상 소비는 최대한 아끼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소비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기대 자체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아끼면 미래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자산 격차가 커지면서 절약만으로 원하는 미래에 도달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셋째는 코로나19가 남긴 심리적 변화다. 팬데믹을 거치며 ‘언제든 일상이 멈출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미래를 미루기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비대면 환경과 SNS 소비 확산으로 타인의 소비를 더 쉽게 접하게 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소비 양극화의 원인이 단층적이지 않은 만큼 이홍주 교수는 이 현상을 단순한 물가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소비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경험과 정체성 표현의 수단이 되면서 양극화가 더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과거 세대와의 차이도 여기서 갈린다. 그는 “과거 청년 세대도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그때는 아끼면 미래가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며 “반면 지금 20대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크다 보니 무조건 절약하기보다 지금 만족할 수 있는 소비에 더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SNS를 통한 비교와 자기표현 문화도 이전 세대와 다른 특징으로 꼽았다.
다만 이은희 교수는 미래 포기 담론 자체에는 경계의 시선을 보낸다. 그는 “예를 들어 집값은 강남부터 경기도까지 천차만별인데 처음부터 최고가 주택을 기준으로 삼고 집 사기를 포기하는 사고방식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SNS를 통해 부유층의 삶이 지나치게 가까이 보이면서 눈높이가 높아진 측면도 있다”며 일부 정치권이 청년들의 불안 심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철없는 사치’인가, 시대의 적응인가
20대의 하이엔드 소비를 두고 일각에서는 ‘철없는 사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규정은 지나치게 단순할 수 있다. 이홍주 교수는 “일부에서는 SNS 과시나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무리한 소비도 나타나지만 이런 사례만으로 전체 청년 세대의 소비를 해석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경우 지금의 소비 패턴은 경제적 불안과 제한된 자원 속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과도한 과시 소비는 경계해야 하지만, 청년층의 소비 양극화를 단순히 ‘철없는 사치’로 규정하는 것은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소비 양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홍주 교수는 “청년층의 소득 여건이 빠르게 개선되거나 미래에 대한 안정감이 커지지 않는 한, 선택과 집중의 소비 패턴은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제적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회복된다면 지금보다는 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이 현상을 청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 청년들의 소비는 단순히 무엇을 사느냐보다 무엇을 포기하느냐를 함께 봐야 하며 기본적인 소비를 줄이면서도 특정 경험에 집중하는 모습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현재의 작은 만족을 확보하려는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어 “청년들의 소비를 비판하기보다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사회가 함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거지맵을 켜며 3,000원짜리 식당을 찾는 손과 오마카세 예약창을 두드리는 손은 결국 같은 손이다. 그 선택을 단순한 모순이나 사치로만 읽는 것은 지금 20대가 처한 현실을 절반만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진호 기자/이수민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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