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브이로그]
박재현 부산디자인진흥원 경영기획팀장(디자인학 박사)

철강과 에너지, 도로와 항만, 제조업은 산업화 시대 국가 경쟁력을 결정했고, 반도체와 인터넷, 데이터는 정보화 시대 디지털 패권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 국가 경쟁력은 무엇인가. 이제는 기술의 보유보다 기술을 인간 중심의 가치로 구현하는 능력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 AI가 새로운 문명의 엔진이라면, 그 엔진이 향할 방향을 설계하는 것은 디자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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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설계(Design)’에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강력한 기술이지만, 기술만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사람의 삶과 산업, 도시와 행정 속에서 새로운 가치로 구현하는 일이다.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AI가 기술의 가능성을 확장한다면, 디자인은 그 가능성을 사회적 가치로 완성한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기술의 방향을 설계하는 역량에서 결정된다.

이재명 정부는 대한민국을 'AI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AI 고속도로 구축, 산업 전반의 AI 전환(AX), 공공서비스 혁신, 의료·바이오 AI 육성, K-AI 개발과 핵심 인재 양성 등을 국가 핵심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AI를 새로운 산업을 넘어 경제와 산업, 행정 혁신을 이끄는 국가 핵심 인프라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AI 인프라와 컴퓨팅 성능만으로 AI 강국은 완성되지 않는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하고 예측하는 기술이지만, 그 기술을 무엇을 위해 활용하고 국민의 삶과 산업, 도시의 경쟁력으로 연결할 것인지는 디자인의 영역이다. 결국 AI 시대 국가 경쟁력은 기술의 수준이 아니라 기술을 사회적 가치로 구현하는 국가 디자인 전략에서 완성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디자인을 제품의 외형을 다듬고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보조 기능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AI 시대의 디자인은 더 이상 ‘꾸미는 기술’이 아니다. 기술과 사람, 산업과 사회를 연결하고 기술을 사회적 가치로 전환하는 국가 혁신의 전략이다.

오늘날 AI, 반도체, 바이오, 모빌리티, 로봇 등 미래 산업의 경쟁은 기술 자체보다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 사회적 신뢰에서 판가름 난다. 같은 AI 기술이라도 국민이 신뢰하고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나라가 앞서간다. 이제 국가 경쟁력은 기술의 우위가 아니라 기술을 인간 중심의 가치로 구현하는 디자인 역량에서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AI 전략도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AI 인프라 구축과 산업 육성을 넘어 AI를 국민의 삶과 도시, 행정, 교육, 의료 전반으로 연결하는 국가 디자인 전략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AI가 국가의 엔진이라면 디자인은 그 엔진이 향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디자인 예산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디자인은 더 이상 문화예술이나 산업 지원의 부속 영역이 아니라 AI와 디지털 전환을 완성하는 전략적 투자다. 디자인 예산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 국가 경쟁력을 위한 투자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산업정책 역시 전환이 필요하다. 디자인을 개별 지원 분야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AI, 반도체, 바이오, 해양, 제조, 문화산업을 연결하는 범정부 혁신 전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를 아우르는 국가 디자인 거버넌스 구축도 본격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다.

이제 디자인은 산업을 지원하는 기능이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이며, AI 시대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완성하는 핵심 인프라다. 기술이 국가의 속도를 결정한다면, 디자인은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한다. 미래를 선도하는 국가는 더 많은 AI를 가진 나라가 아니라, AI를 가장 인간답게 활용하는 사회를 설계하는 나라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새로운 성장 공식이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