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브이로그]
각자의 효율이 만든 ‘효율의 역설’
자동차 제조사는 소비자를 누구보다 깊이 연구한다. 신차 한 대를 개발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엔진 성능과 연비는 물론, 문을 닫을 때의 소리, 손이 가장 편하게 닿는 핸들의 위치, 장거리 운전에도 피로를 덜 느끼는 시트까지 수없이 고민한다. 최근에는 차량 안에서 보내는 시간과 감정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설계한다. 자동차가 공장을 떠나기 전까지 모든 의사결정의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만든 차량이 공장을 떠나는 순간부터 이를 바라보는 기준은 조금씩 달라진다.
공장을 떠나는 순간, 자동차는 효율의 대상이 된다
자동차는 생산을 마치고 공장을 떠나는 순간 하나의 재고 자산이 된다. 재고가 하루 더 머무를수록 보관비와 금융 비용이 발생하고, 물류 일정이 늦어질수록 회전율도 떨어진다. 그래서 유통 단계에서는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가 핵심 기준이 된다.
물론 이것이 업계 전반의 일반적인 방식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일화는 자동차가 고객에게 전달되기 직전까지 하나의 ‘물류 자산’으로 관리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산업은 생산, 물류, 금융, 영업을 각기 다른 업무로 나누지만, 고객은 이 모든 과정을 하나의 ‘자동차 경험’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 전체 경험을 책임지는 주체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저렴한 상품이면 선택받을 줄 알았다
대출 비교 플랫폼 ‘핀다’ 재직 당시, 신사업 개발의 하나로 자동차 금융상품을 기획했다. 당시 우리 팀은 꽤 단순하게 생각했다. ‘더 좋은 조건의 자동차 금융상품을 만들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그 상품을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원인을 가격 경쟁력이나 마케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소비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전혀 다른 이유를 발견했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비교하기도 전에 시장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렇게 저렴하면 다른 조건이 있는 것 아닌가요?"
"나중에 추가 비용이 생기는 것 아닌가요?"
"미끼 상품은 아닐까요?"
그때 깨달았다. 자동차 유통시장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불신’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고객은 자동차를 계약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상담하고, 서로 다른 조건의 견적을 비교하며, 계약서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야 한다. 상품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시장 구조가 원인이었다.
바로 그 경험이 ‘차즘’의 출발점이었다.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왜 이런 가격이 나왔는지 설명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조건을 같은 기준에서 비교할 수 있으며, 결국 판매자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신뢰할 수 있는 자동차 유통 구조였다.
소비자가 검증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계약이다
자동차를 계약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차종과 트림, 옵션, 내·외장 색상을 고르는 일만 해도 수많은 고민이 따른다. 하지만 진짜 복잡함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금융사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경우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금융사마다 금리와 잔존가치, 계약 조건이 다르고, 심사 과정에서는 추가 서류를 요청 받기도 한다. 같은 고객이라도 어떤 금융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승인, 조건부 승인, 부결 등 전혀 다른 결과를 받을 수 있다.
결국 소비자는 이 수많은 경우의 수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계약을 직접 찾아내야 한다. 자동차를 고르는 시간보다 계약을 검증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답답한 부분은 이 과정이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한 결과다.
각자의 효율은 높아졌지만 전체의 경험은 복잡해졌다
자동차 유통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딜러는 재고를 빨리 판매해야 하고, 금융사는 자산을 늘려야 하며, 물류회사는 이동 시간을 줄여야 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고객의 불편함으로 이어진다. 고객은 같은 내용을 여러 번이고 다시 설명하고, 비슷한 상담을 반복하며, 계약서를 몇 번이고 확인해야 한다. 산업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상담과 검토가 여러 주체를 거치며 반복되고, 비슷한 업무가 곳곳에서 중복된다. 각자의 효율은 높아졌지만 이 여정의 주체인 고객의 경험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나는 이것을 자동차 유통시장의 '효율의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 산업은 생산 단계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소비자를 연구한다. 이제 그 시선이 유통 단계까지 이어져야 할 때다. 고객이 여러 판매자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계약서를 몇 번씩 비교하지 않아도 되며, 자신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계약할 수 있는 시장이어야 한다.
차즘이 만들고 싶은 것도 결국 이러한 구조다. 가장 저렴한 견적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동차 유통 구조 말이다. 좋은 유통이란 가장 빨리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가장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라고 믿는다.
자동차는 많은 사람에게 오랫동안 기다려온 선택이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차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랜 노력 끝에 만나는 드림카다. 그 차를 기다려온 시간과 설렘이 정작 차를 만나는 복잡한 과정 때문에 퇴색되지 않기를 바란다.
정상연 님은 자동차 리스·렌트 플랫폼 '차즘(Chazm)'을 운영하는 디자인앤프랙티스의 대표다. 차즘은 다수의 금융사·렌터카사 상품을 실시간으로 비교해 왜곡 없는 견적을 투명하게 제공하는 모빌리티 핀테크 플랫폼으로, 정보 비대칭으로 얽혀 있던 자동차 유통 구조를 데이터로 단순화해 고객이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으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