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선열들의 삶을 마주하며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다

대련부터 단동, 연길, 통화, 창춘, 하얼빈까지 이르는 학술탐방의 이동 경로이다
대련부터 단동, 연길, 통화, 창춘, 하얼빈까지 이르는 학술탐방의 이동 경로이다
광복 81주년을 맞아 단국대학교 학부 해외학술탐방단(학부생 25명, 교직원 5명)은 설립자 범정 장형 선생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아 지난 7월 12일부터 18일까지 6박 7일간 만주 일대 유적지를 방문했다. 민족사학 단국대학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애교심을 함양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탐방은 범정 장형 선생의 생애와 한국사 지식을 묻는 필기시험을 치른 뒤 면접 평가를 통해 선발된 학생들이 참여한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고 순국한 대련 뤼순관동법원전시관의 모습이다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고 순국한 대련 뤼순관동법원전시관의 모습이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도시인 대련에 도착한 탐방단은 버스를 타고 여순으로 향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와 지도교수 박성순 석주선기념박물관장(사학과)의 깊이 있는 해설이 어우러져 답사 현장의 역사적 생동감을 더했다. 첫 목적지인 여순감옥은 안중근 의사, 신채호 의사, 이회영 선생 등 끝까지 독립 정신을 지켰던 선열들이 복역했던 장소다. 이어 일제의 식민 수탈 기관이었던 남만주철도주식회사 건물에 들러, 백범 김구 선생이 강조했던 ‘문화강국’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다.

이후 단동으로 넘어간 탐방단은 압록강 유람선에 올라 북한의 위화도를 직접 눈에 담았다.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서 분단의 현실이 스쳐 지나갔다. 어린 시절 장충식 명예이사장이 독립군 군자금을 숨겨 운반했던 오룡배에서는 지난 5월 영면하신 故 장충식 명예이사장을 기리며 숙연한 마음으로 묵념을 올렸다.
집안시에 위치한 고구려 5세기 전반경 조성된 계단식 돌방 돌무지무덤 장군총이다
집안시에 위치한 고구려 5세기 전반경 조성된 계단식 돌방 돌무지무덤 장군총이다
태풍 북상에 대비해 동선을 조정해야 하는 변수도 있었다. 폭우로 인해 심양 지역 버스 출입이 제한되면서, 행선지를 길림성 집안으로 긴급 변경해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총을 찾았다. 웅장하게 서 있는 비석 앞에서 고구려의 기개와 건국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용정시 명동학교옛터기념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용정시 명동학교옛터기념관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대련에서 이도백하진까지 약 1,000km를 달리는 대장정이었다. 연길에 도착한 탐방단은 용정 비암산의 정상 일송정에 올라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던 선인들의 정신을 되새겼다. 또 윤동주 생가와 명동촌을 찾았다. 동쪽(우리나라)을 밝힌다는 명동촌의 뜻처럼, 그곳에는 조선족의 교육 정신과 윤동주·송몽규 두 청년 시인이 문학으로 피워낸 독립 정신이 깃들어 있었다.
일송정에 오르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일송정에 오르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이후 기차와 버스를 타고 끝없는 옥수수밭을 지나 도착한 통화의 신흥무관학교 터를 찾았다. 그리고 범정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운영한 정미소 터에도 갔다. 일본군 헌병 수비대가 주둔하던 곳으로, 현재는 공터로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창춘을 거쳐 하얼빈에 도착해 731부대 전시관에서 일제의 잔혹한 생체 실험 현장을 마주하며 분노와 슬픔을 삼켰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유묵비를 끝으로 6박 7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하얼빈에서 마루타 생체실험을 벌인 일제 세균전 부대의 범죄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731부대 기념관이다
하얼빈에서 마루타 생체실험을 벌인 일제 세균전 부대의 범죄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731부대 기념관이다
윤미선 학생처장은 “무더위와 고된 일정 속에서도 변하지 않던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이 가장 인상 깊었다”며 “물리적 이동 거리가 상당히 길었고, 무더위에 태풍까지 겹친 타국에서의 강행군이라 체력적으로 절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개인적 불평불만보다는 단체를 위해 인내하고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려던 학생들의 태도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탐방 단원 인터뷰>
Q: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와 그 이유는.
박가영(경영·22): 역사 교과서나 매체에서 자주 접했던 731부대와 안중근 의사의 거사 장소인 하얼빈역을 직접 방문해 의미 있었다. 평소 존경하던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아직 돌아오지 못해 유목비가 있는 공원에서 추모 인사를 드렸을 때의 먹먹함과 서글픔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박선우(경영·23): 대련(여순) 지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북 3성 중 가장 발전한 항구 도시라는 이야기만 듣고 갔으나, 실제 도시의 규모와 건축물들에 압도됐다. 특히 중산 광장의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들과 금융·IT 기업들이 나란히 들어선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또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며, 선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현장을 마주했을 때의 벅찬 감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날씨는 무척 덥고 에어컨도 없었지만, 교수님의 열정적인 설명과 그 설명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던 학우들의 모습도 인상 깊게 남았다.
안세은(인프라건설공·25):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하얼빈역에 직접 방문했을 때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책과 영상으로만 접했던 의거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청년의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그 숭고한 의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Q: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보고 디뎌보니,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
박가영(경영·22): 과거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 삶의 기반이 소중한 토대 위에 서 있다는 생각에 역사 공부를 더 진지하게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를 잊지 않고 모두가 배울 수 있게 애써주시는 국가와 역사학자, 교수님들께 큰 감사함을 느꼈다.
박선우(경영·23): 그동안 독립운동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본 적이 없다 보니 나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일처럼 느꼈다.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현장을 직접 보게 되면서 선열들을 향한 존경심과 함께 애국심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
안세은(인프라건설공·25):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대가의 결과물임을 깨달았다. 특히 어둡고 차가웠던 여순감옥 속 투사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오늘날 우리가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임감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됐다.

Q: 이번 해외학술탐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박가영(경영·22): 나에게 이번 6박 7일은 ‘과거이자 현재이고 미래’였다!
박선우(경영·23): 나에게 이번 6박 7일은 ‘실감 나는 역사책’이었다!
안세은(인프라건설공·25): 나에게 이번 6박 7일은 ‘타임캡슐’이었다!

Q: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하는 경험이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 왜 꼭 필요한지.
윤미선 학생처장: 당장 눈앞의 자격증이나 토익 점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자문이다. 역사 현장을 직접 발로 밟아보는 경험은 단순한 과거 여행이 아니다. 엄혹했던 시대에 청춘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수많은 선열의 삶을 마주하며,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깊이 고민해 보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의 시간이다. 뿌리가 튼튼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역사적 소명 의식으로 무장한 사람은 어떤 사회적 난관 앞에서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힘을 얻게 된다.

Q: 앞으로 해외학술탐방에 도전할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나 응원 부탁한다.
윤미선 학생처장: 강의실이라는 익숙한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주저 없이 도전하길 바란다. 내 생각의 우물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보아라. 책 속에서 글자로만 배우는 역사와 현장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역사는 완전히 다르다. “스펙 준비로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로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 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이러한 탐방의 기회는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자산이 될 것이다. 학교와 학생처는 앞으로도 여러분이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견문을 넓히고, 단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다.

이진호 기자/이수빈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