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브이로그]
정성훈 前엔젤로보틱스 부대표이사(디캠프 배치 멘토)
실제로 많은 창업자가 투자 유치를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회사의 비전과 성장 가능성을 설명하고, 수없이 많은 질문에 답하며, 시장성과 실행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다. 투자자를 만나기 전에는 발표 자료를 수십 번 수정하고, 숫자 하나까지 점검하며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투자 라운드가 마무리된 이후부터다. 투자금을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긴밀하게 소통하던 창업자가 막상 투자 이후에는 투자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급격히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분기 보고서는 형식적으로 작성되고, 투자자가 먼저 연락하지 않는 이상 회사 측에서 선제적으로 소통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투자자는 단순히 돈을 넣어준 사람이 아니다. 명백한 회사의 주주이며, 경영 정보를 공유 받을 권리가 있는 이해관계자다.
상장기업은 법적으로 공시 의무를 가진다. 비상장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그 책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기관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라면 투자금 사용 내역과 경영 현황, 향후 사업 계획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투명한 정보 공유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많은 창업자가 투자 이후의 관계를 ‘관리’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 유치를 거래의 종료로 인식하는 순간, 관계는 빠르게 느슨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다. 투자금을 받은 순간부터 투자자와의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내 경험상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기적인 오프라인 주주 간담회다. 최소 분기마다 한 번 이상, 투자자들과 직접 만나 회사의 현황과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를 반드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메일이나 문서 보고만으로는 정보 전달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숫자와 텍스트는 전달할 수 있어도, 대표의 진정성과 조직의 분위기, 실행 과정에서의 고민까지 담아 내기는 어렵다.
반면, 직접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자리에서는 투자자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고 전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대면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신뢰를 축적하는 과정이 된다.
나는 회사를 운영하던 시절, 분기마다 반드시 오프라인 주주 간담회를 진행했다. 재무 현황, 영업과 마케팅 상황, 기술 개발 진척도, 다음 분기의 목표와 연간 마일스톤 달성 여부 등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공유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보고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회사의 신뢰를 만드는 핵심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신뢰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스타트업은 언제든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는다. 제품 출시가 지연될 수도 있고, 매출이 예상보다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내부 조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성실하게 소통해온 회사는 위기 상황에서도 투자자와 훨씬 유연하게 협의할 수 있다. 반대로 평소 소통이 단절된 회사는 작은 문제도 곧바로 불신으로 이어진다.
후속 투자 유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리즈 A 이후 단계로 갈수록 자금 수요는 더욱 커진다. 이때 가장 좋은 투자자는 이미 회사를 오래 지켜본 기존 투자자다. 기존 투자자는 대표와 팀의 실행력, 조직의 문화,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오랜 기간 직접 확인해 왔기 때문에 신규 투자자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결국 후속 투자는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 축적된 신뢰의 결과다. 회사가 어떤 목표를 세웠고, 그것을 어떻게 실행했으며,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지를 꾸준히 공유해왔다면 투자자는 숫자 이상의 것을 보게 된다. 대표의 태도, 조직의 일관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까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창업자가 투자자를 설득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투자 이후의 관계다. 투자자는 완벽한 회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공유하며, 책임 있게 대응하는 창업자를 원한다.
투자금을 받은 순간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회사는 ‘내 사업’이 아니라 투자자와 함께 가는 ‘우리 사업’이 된다. 그리고 그 관계를 가장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정기적으로 만나고, 솔직하게 공유하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먼저 설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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