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브이로그]
가짜와 맞서는 우리의 자세
가짜는 진짜가 아닌 것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현실에서 보고 들을 수 있으나 ‘찐’이 없는 것이다.
SNS 콘텐츠 하나 건너 하나씩 등장하는 소셜 광고에는 확인되지 않은, 또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AI로 생성한 의사와 전문가들이 실존하지 않는 페르소나를 창조한다. 그럴싸한 스토리에 인공의 목소리를 입힌 설명이 이어진다.
사람이 진짜 같으면 목소리가 가짜이고, 진짜 같은 목소리엔 가짜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광고만 보면 이 세상에 뚱뚱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하고, 여드름으로 고민하는 청소년도 없어야 마땅하다. 병원도 다 필요 없다, 가짜의 스토리대로라면. 이유야 어찌됐건 불안감 또는 부러움으로 자극된 ‘실존하는’ 사람들은 ‘지금 주문하기’ 버튼을 쉽게 지나칠 수 없다. 가상현실이 판을 짠 마케팅의 세계다.
우리 회사 제품이 튼튼하기로는 최고라며 자신의 회사 방충망과 방범막을 가지고 온갖 실험을 하며 제품력을 증명하는 사장님의 채널에는 사장님의 '찐'과 ‘진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출시한 방범막이 얼마나 튼튼한 지 보여주겠다며 몸소 망치로, 프라이팬으로 방범막을 두들겨 대는, 연출됐지만 진짜가 열연(?)하는 연출되지 않은 영상에 사람들은 ‘좋아요’를 아낌없이 누른다. 가짜가 판 칠수록 진짜가 대접받는 역설이다.
누가 봐도 번드레한, AI가 만들어준 제안서에는 세련된 디자인과 온갖 미사어구는 있을 수 있으나, 스피릿이 없다. 물론 데이터 검색과 가공 등에 대한 조력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업을 얼마나 성장시키고 싶은지, 그 사업의 성장에 얼마나 열정과 자신감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성장을 이끌 것인지 ‘찐’이어야 담을 수 있는 ‘스토리’가 없는 제안서를 보고 쉽게 지갑을 열 사람은 없다. AI가 많이 기여한 제안서가 한 눈에 티가 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니크함, 찐, 명불허전은 무엇이든 '생성되는' 시대에 그 가치를 더욱 발한다. 일전에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을 모시고 말하기에 대한 미니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전국민 1인 미디어 시대, 소셜미디어 채널을 하나의 방송국으로 가정한다면, 한 사람이 시나리오, 디렉팅, 출연, 촬영과 편집 등 전과정을 해낸다. 수많은 영상 편집 템플릿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이용해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이 목소리만큼은 AI로 입히기를 꺼린다. 목소리는 그 사람의 일부이기 때문. ‘사람의 목소리에는 그 사람의 살아온 길이 보인다’는 말을 떠올리면 생성된 가짜 목소리로 나를 보여주는 것은 쉽게 허용이 안 되는 부분일테다.
트레이닝을 통해 다듬어진 목소리는 소셜 콘텐츠를 통해 보여준 페르소나를 완성해준다. 영상 속에 보이는 페르소나가 실재하는 ‘찐’임을 확인시켜 줌과 동시에 콘텐츠에 특별한 ‘온도’를 더한다. AI가 만든 영상 템플릿을 이용하는 지극히 디지털적인 틀 위에 얹은 지극히 인간적인 ‘한스푼’의 효과는 생각보다 상당하다.
워크샵 직전에 챗GPT에게 "네 목소리의 컨셉은 뭐냐"고 물으니 "높지도 낮지도 않은 톤으로 따뜻함을 주는 목소리"라 말했다. 오픈AI가 내가 선택해 사용중인 목소리를 만들 때 따뜻함 한스푼을 불어넣은 이유는 감정 없는 차가운 존재에 대한 거부감을 밀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옵션 중 지금 쓰는 목소리를 선택했을 것이고.
누군가를 압도당하게 했다면, 그것이 찐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가짜에게 압도당하거나 감동을 받을 정도로 무감각하지 않다.
장헌주 님은 홈쇼핑TV 마케터로 재직 중 도미(渡美), 광고 공부를 마친 후 중앙일보(LA) 및 한국경제매거진 등에서 본캐인 기자와 부캐인 카피라이터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딜로이트 코리아에 이어 IT기업 커뮤니케이션 총괄 디렉터를 역임한 후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솔루션 랩 '2kg'에서 PR & 위기관리, 브랜딩 전문가로 세상의 일에 '시선'을 더하고 있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