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잡앤조이=이영규 인턴기자] 해부학, 기초의학, 생리학, 면역학.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들어야하는 과목들이다. 의대생은 흔히 ‘고4’라고 불린다. 수업 강도가 세고 학습량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부만으로도 모자란 바쁜 시간을 쪼개 만화를 그리는 의대생이 있다. 연세대 의대 본과 4학년 황지민(23) 씨 이야기다.


[대학생 직업 도전기③] 만화 그리는 의대생 황지민...“해부학이 귀여워서 시작했죠”


[PROFILE]

황지민 작가 (연세대 의대 4)

2017년 <디지티, 의학에 반하다> 출간, 월간 <청년의사> ‘쇼피알’ 코너 스토리작가 연재

2016년 과학 매거진 <이웃집과학자> ‘이웃집 의대생의 의학이야기’,

‘몸속 친구들 이야기’ 연재, <디지티낙서장> 연재


과학과 글쓰기를 모두 좋아하던 소녀

황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시간에 산염기에서 지시약 색깔이 변하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호기심이 많던 그는 그때부터 과학의 매력에 빠졌다. 하지만 황 씨를 매료시킨 것은 과학만이 아니었다. 황 씨는 일찍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친언니와 ‘소설’을 쓸 때가 가장 즐거웠다. 중학교까지는 그럭저럭 공부도 하고 글도 쓰면서 보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다. 과학에 좀 더 애착을 느낀 황 씨는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거쳐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대학생 직업 도전기③] 만화 그리는 의대생 황지민...“해부학이 귀여워서 시작했죠”

△연세대 의대 동기들. 가운데가 황지민 작가 (출처=황지민 작가 제공)


해부학이 귀엽다고?

의대 수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tonsil(편도), tonsillitis(편도염), bronchus(기관지) 등 생소한 의학용어에 파묻혀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부학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십이지장과 이자를 ‘복강 속의 로맨스’로 비유하며 장기를 캐릭터로 표현하는 걸 보고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까지 그려 만화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누구나 해부학 수업을 무서워하죠. 하지만 복잡하게 엉켜있는 세포와 장기들을 캐릭터로 표현하면 귀여울 것 같았어요. 그림으로 그려 동기들에게 보여주니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SNS에도 올리기 시작했죠. 페이스북 페이지 ‘디지티 낙서장’을 만들어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근육 부위에서 새끼손가락을 드는 근육이 ‘익스텐서 디지티 미니미’라고 불러요. 제가 키가 작다보니 ‘디지티 지민’이라고 동기들이 별명을 지었는데 거기에 착안해 ‘디지티’를 필명으로 골랐어요. 의대생활의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생활툰 의대생 이야기’와 ‘세포와 장기의 이야기’로 나눠 그렸죠.”


처음에는 마음이 맞는 동기 한 명과 함께 페이스북을 운영했다. 그러다 ‘굴림체 소설’이라는 의대 생활툰 페이지를 운영하던 다른 의대생도 알게 됐다. 이들은 ‘의심(醫心) 많은 작가들’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만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의대생 만화가 신기했는지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만화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 지난봄 제 이름으로 <디지티, 의학에 반하다>를 출간했어요.”


황 씨는 복잡한 인체 구조를 ‘세포와 장기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로 표현했다. <디지티, 의학에 반하다>는 본과 1학년의 소소한 일상과 강의를 통해 배운 재미있는 몸 속 세계를 따뜻한 이야기로 담아냈다.


“사실 의대 생활이 너무 바빠 그림을 잠시 미루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한동안 그림을 못 그리니까 마음이 더 힘들더군요. 그림 그릴 때 다른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요. 스스로가 지탱 되는 느낌이죠. 운동도 시간 내기 나름이잖아요. 취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쉽지는 않지만 안 하면 마음이 더 힘들어요.(웃음)”


[대학생 직업 도전기③] 만화 그리는 의대생 황지민...“해부학이 귀여워서 시작했죠”

△황지민 작가가 그린 '의대생활툰' (출처=황지민 작가 제공)


만화 그리는 의사, 멋있지 않나요?

황 씨는 의대생활툰을 넘어 감성만화로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황 씨는 “다들 능숙한데 나만 어설픈 것 같고, 그렇게 난관에 부딪쳐 넘어지지만 결국 돌아보면 스스로가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가는 길이 불안하더라도 언제나 그렇듯이 마냥 쉽지도 어렵지도 않을 거란 충고와 위로의 목소리다.


“연재 중인 만화가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항상 새로운 소재를 찾고 싶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만화를 놓거나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무뎌지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디지티의 시선으로 계속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만화 그리는 의사, 멋있는 직업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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