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본의 실패서 배우는 한국의 자산관리 비즈니스

일본 금융투자 업계는 투자 환경 변화에 따라 1990년대 중반부터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조했다. 하지만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금융투자 업계는 증권매매 비즈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금융투자 업계의 경험이 한국 금융 업계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1997년 가을 당시 일본 최대의 금융투자회사인 노무라의 우지이에 사장은 전국 부점장회의 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다.

“이제 우리는 개인투자자 대상 비즈니스를 지금까지의 증권매매 비즈니스에서 자산관리 비즈니스로 바꿀 수밖에 없다. 자산관리 비즈니스란 종래의 증권매매 비즈니스에서 하던 것처럼 개별종목 또는 상품을 추천해 판매와 연결시켜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연령과 가족 구성, 보유 자산의 내용, 연간 수입 등을 고려해 고객의 속성에 맞게 자산 운용을 제안하는 비즈니스 방법이다. 고객별로 모델 포트폴리오를 작성해 이에 적합한 상품을 추천한 후,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일종의 컨설팅을 기본으로 한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문제는 비즈니스 전략 전환으로 줄어드는 수입을 어떻게 메우느냐는 것이다. 같은 금액의 고객 예탁자산에 대해 증권매매 비즈니스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만 매매를 유발시켜도 연 12% 정도의 수수료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경우에는 연간 수입이 예탁자산 잔액의 2%를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예탁자산을 6배 이상 늘려 놓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수입을 얻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 전략을 계속 추진해 나갈 수밖에 없다. 증권매매 비즈니스를 주요 비즈니스로 계속해 나가더라도 어차피 수입은 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는 그동안 이익을 내어 쌓아둔 재산이 있기 때문에 2~3년 정도의 적자는 견딜 수 있을 만한 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계속해서 4~5년이 지났는데도 적자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 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하고 있는 비즈니스가 사회적으로 존재 의의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오하에 노무라는 당장의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투자신탁, 자산종합관리계좌(wrap account)와 같은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수수료 수입을 모아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계열사인 노무라자산운용뿐 아니라 세계 유수의 운용회사가 운용하는 펀드 상품까지 팔 수 있도록 시스템도 정비했다. 또한 영업사원에게는 고객의 자산관리를 조언할 수 있도록 종합자산관리사(FP) 자격 취득을 의무화했다. 노무라뿐이 아니다. 일본 내의 다른 대형 금융투자회사들도 비슷한 전략을 추진했다. 그렇다면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일본 금융투자 업계의 개인자산관리 비즈니스 추진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정의와 성공 조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자산관리 비즈니스는 보는 각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데, 미·일 금융투자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개념은 아래 두 가지의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대고객 서비스의 관점에서 영업직원은 자산 운용 컨설턴트의 역할을 한다. 고객의 연령과 가족 구성, 보유 자산의 내용, 연수입 등을 조사한 다음 고객의 속성에 따라 자산 운용을 제안하고, 고객별 모델 포트폴리오를 작성한다. 그런 다음에 이에 맞는 금융상품을 추천하고 이들 상품의 구입을 대행해 준다. 또한 제안한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리뷰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자산의 재배분을 제안한다. 이상과 같은 플래닝 베이스의 비즈니스 방법을 자산관리 비즈니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업 목표라는 관점에서 보면, 자산관리 비즈니스는 매매 주문보다는 예탁자산을 증대(transaction generating에서 asset gathering으로)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는 비즈니스 방법이다. 또한 여기에서 받는 수수료의 징수 방법은 종래와 같이 매매를 할 때마다 징수하는 커미션(commission) 방식이 아니고 잔고에 비례해 징수하는 피(fee)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비즈니스 목표를 바꾸게 되면 불필요한 회전매매로 고객과 영업직원 사이에 이익 상반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고객과의 트러블도 방지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금융투자 비즈니스의 수익구조를 호황, 불황에 좌우되지 않는 구조로 바꾸어 갈 수 있다. 이것이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효과다.


자산관리 비즈니스가 대두된 대내외적 환경
그렇다면 1997년 당시 일본의 금융투자 업계가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 배경을 주체적 조건과 객체적 조건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내부적 환경으로는 그때까지 금융투자회사의 주된 수입원이었던 주식매매 중개 비즈니스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어서 새로운 수입원을 찾지 않으면 안 됐다는 점이다. 1999년부터 주식매매 중개 수수료가 전면적으로 자유화될 경우 수수료율은 급격하게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제로(0)에 가까운 매매 수수료율을 적용하는 인터넷 증권회사가 출현하면서 단기 매매의 상당 부분이 인터넷 매매로 이동하고 있었다. 결국 단기 매매를 유발시켜 수수료를 벌어들이는 비즈니스 모델은 갈수록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금융투자 업계로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않으면 안 됐고, 그 대안으로 추진한 것이 자산관리 비즈니스였던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증권시장에서 단기 투자 자금의 비중이 줄어들고 장기 투자를 필요로 하는 자금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평균수명은 높아가는 반면 출생률은 저하돼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었다. 반면에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는 재정적인 이유로 파탄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국민 각자가 장기 계획을 세워 노후를 대비해 재산을 형성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여기에 금융기관의 예금금리는 제로 가까이 떨어져 노후 자금을 예금에 의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자산관리 비즈니스 추진 전략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가.

첫째, 앞에서 노무라의 우지이에 사장이 지적한 바와 같이 고객 예탁자산을 현재보다 몇 배 이상의 규모로 늘리거나 비용을 그만큼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산관리 비즈니스에서는 동일한 예탁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주식매매 중개 비즈니스의 몇 분의 일로 줄어든다. 많은 금융투자회사들이 개인 대상 비즈니스 모델을 자산관리 비즈니스로 바꾸어 가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의미 있는 플래닝을 위해서는 고객 자산의 내용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연수입은 물론이고 주택 융자의 미상환 잔액, 보유 금융 자산의 종류와 금액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고객의 사생활에 해당되는 내용까지도 질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신뢰관계에 있지 않으면 영업직원에게 자신의 재산 상태를 알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업직원으로서는 고객의 정확한 재무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면 모델 포트폴리오를 작성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작성한 모델 포트폴리오에 따라 고객이 금융상품을 구입한 후에도 이를 예탁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입 후의 성과를 정확하게 모니터할 수 없다. 가능하면 고객이 금융 자산 전액을 맡겨 주는 게 가장 좋다. 다시 말해 영업직원이 플래닝 베이스의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신뢰를 획득해야 하며, 고객의 금융 자산을 가능한 한 많이 집결시켜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자산관리 비즈니스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현재는?
그렇다면 십수 년이 경과한 지금, 일본의 금융투자회사들이 추진해 온 자산관리 비즈니스 추진 전략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투자회사의 경영은 아직도 증권매매 비즈니스 체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금융투자 시장의 장기 불황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금융투자 업계는 1980~ 1990년대에 자산관리 비즈니스로의 비즈니스 모델 개혁을 추진했는데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영 환경이 장기 호황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일본의 금융투자 업계는 20년이 넘는 구조적인 장기 불황 국면에서 비즈니스 모델 개혁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계속됐다.

경영 환경이 얼마나 혹독했었던가는 1993년 말 268개사였던 금융투자회사 중 지난 20년 동안 도산, 폐업, 합병 등으로 150여 개사가 시장에서 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증권시장의 침체라는 외부 환경뿐 아니라 금융투자회사의 비용 구조, 특히 경직적인 인건비 구조도 한 몫을 했다. 불황에는 자동적으로 인건비가 줄도록 돼 있는 미국의 금융투자 업계의 인건비 구조와는 달리 고정급 비중이 높은 일본의 업계는 줄어드는 수입에 맞추어 유연하게 비용을 삭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입도 늘릴 수 없고 비용도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산관리 비즈니스로의 모델 개혁이 성과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유 금융 자산을 어느 한 금융기관에 집결시키기를 싫어하는 투자자들의 성향 또한 자산관리 비즈니스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의 투자자들과는 달리 일본의 투자자들은 세무 대책상 자산을 한 곳에 집결시키기보다는 여러 곳에 분산시켜 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회사 명의로 자산을 분산시켜 놓는 것은 물론이고 보관처인 금융기관까지 분산시켜 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풍조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산의 집결은 물론 재무 상황의 파악도 어렵고 고객의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결국 일본의 자산관리 비즈니스는 대고객 서비스의 관점에서 본 컨설팅 베이스의 영업이라기보다는 예탁자산 증대라는 영업 목표의 추구에 중점을 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방식 또한 장기 불황 속에서 소기의 성과를 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사례가 국내 업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지난 20여 년 동안 국내 업계에서도 자산관리 비즈니스를 추진해 왔지만 성공 사례는 나타나지 않은 채 경영 환경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국내 60여 개 금융투자회사 중 절반 정도가 2013 회계연도 결산에서 적자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더 큰 문제는 이 불황이 1~2년의 순환적인 불황이 아니고 장기 구조 불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국내 업계는 앞으로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비즈니스의 중심을 자산관리형 비즈니스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를 심각하게 검토한 후, 만약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방식으로 바꾸어 나갈 것인가를 냉정하게 분석해 장기 비전을 갖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자산관리형 영업에 필요한 인재는 어떻게 양성해야 할 것인가. 자산관리형 영업은 동일한 예탁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입이 주식매매 중개 업무의 몇 분의 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이 영업이 정착할 때까지 급격하게 줄어드는 수입 부분은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장기 투자에 대한 이해가 돼 있지 않고 컨설팅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자세도 돼 있지 않은 투자자들은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생각해 보면 현재로서는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현재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에 안주해 있다가는 머지않아 생존조차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이야말로 국내 업계는 비즈니스 모델의 개혁과 그 대안으로서의 자산관리 비즈니스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 봐야 할 시기가 아닌가 여겨진다.



강창희 미래와금융 연구포럼 대표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