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ㆍ게임 두토끼 사냥 최대 400억 대박 정조준

해 영화계 최대 이슈는 통신회사 KT가 영화제작사 싸이더스FNH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이다. 지난 6월께 언론에 노출된 인수협상은 3개월여를 끌어오다 지난 9월초 공식 타결됐다. 이로써 한국영화업계 지도는 큰 변화를 맞게 됐다. 국내 양대 통신업체가 모두 진입해 영화시장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다.SKT는 KT보다 한발짝 앞서 지난해 국내 최대의 연예매니지먼트 업체인 IHQ를 인수했다. KT가 이번에 인수한 싸이더스FNH는 연간 10여 편을 제작하는 국내 최대의 영화제작사다. 업계 1위 싸이더스픽쳐스와 업계 2위 좋은영화가 합병해 탄생한 것. 그동안 ‘살인의 추억’ ‘범죄의 재구성’ ‘혈의누’ ‘말죽거리잔혹사’ ‘역도산’ ‘주유소 습격사건’ 등 45 편의 히트작을 냈다.KT가 지분 사들여 80억원 수혜KT는 이번 인수계약에서 280억원을 투자해 싸이더스FNH의 주식 51%를 매입했다. 싸이더스FNH의 기존 최대주주였던 싸이더스는 지분율 35%로 2대주주가 됐다. 최대 수혜자는 싸이더스FNH 대표이자 모기업인 보안솔루션업체 싸이더스의 대표를 겸하고 있는 차승재씨(45)다. 인수과정에서 싸이더스의 주가도 올라 최대주주(지분율 15%)인 차 대표의 보유주식 평가액은 약 80억원(주당 5000원 기준)이다. 대박을 터뜨린 다른 기업인들과 비교하면 대단한 액수는 아니다. 그러나 잠재력은 대단하다. 싸이더스FNH가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상장되고 싸이더스도 게임업체로 성공적으로 탈바꿈할 경우 보유주식 평가액은 3~5배 정도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수건의 핵심은 싸이더스FNH의 풍부한 콘텐츠와 KT의 다양한 통신망을 결합해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다. 차 대표의 비전은 이렇다.“싸이더스FNH의 영화콘텐츠를 활용한 부가사업을 확대하고 뉴미디어사업에도 뛰어들 것입니다. 또한 싸이더스는 매각대금의 일부를 투자해 영화시장의 4~5배 규모인 게임사업에 이미 진출했습니다. 앞으로 추가 자금을 확보해 국내 정상급 게임업체로 거듭나겠습니다.”싸이더스FNH는 이제 단순한 영화제작사가 아니다. KT로부터 유입된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투자 배급 제작 등을 망라하는 영화사업의 수직계열화를 이룩하게 됐다. 앞으로 제작수익뿐 아니라 배급과 투자 수익도 회사에 고스란히 남고 저작권도 온전히 갖게 된다. 저작권을 투자사와 공유했던 과거와 달리 부가사업을 활발히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내년에 10 편의 영화를 제작할 경우 배급수익만 40억~50억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제작과 투자수익을 더하고 뉴미디어 사업과 해외수출 등에서 얻는 부가 수익도 늘어날 것입니다. 싸이더스FNH는 조만간 매출 1000억원, 영업이익 100억원 시대에 진입할 것입니다.”모기업 싸이더스의 전망도 밝다. 지분 매각자금 중 일부는 싸이더스를 통해 모바일게임에 투자하거나 온라인게임의 유통권 매입에 사용할 예정이다. 한솥밥을 먹게 된 KT의 자회사 KTF와 공동으로 휴대폰을 통해 제공되는 모바일게임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싸이더스는 나아가 게임제작 스튜디오도 만들기로 했다. 조각 그림을 맞춰보면 차 대표의 구상이 그려진다. 영화와 게임을 양대 축으로 하는 엔터테인먼트기업을 일구려는 것이다.영상사업부문에서 승부걸것그의 비전은 특히 영상사업 부문에서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KT와 KTF의 통신인프라를 활용한 뉴미디어사업은 앞으로 영상사업 지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IPTV(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해 제공되는 양방향 텔레비전 서비스) DMB(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 와이브로(휴대 인터넷) 사업 등이 본궤도에 오르면 부가 판권 수입은 적어도 3~4배 증가할 것이다.부가 판권 수입의 증가는 영화수익구조도 바꿔놓는다. 영화의 흥행수입과 부가 판권 수입은 현행 8 대 2에서 5 대 5 정도로 변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는 한류 바람을 타고 해외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점도 고려됐다. 2~3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영화수출가격이 올 들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에 편당 300만달러 이상 팔리는 작품들이 속출하고 있다. 배용준 주연의 ‘외출’과 정우성 주연의 ‘데이지’ 등은 일본에만 무려 700만달러 수준에 팔렸다. 이는 제작비의 2배 가까운 액수다. 차승재 대표는 올 초 영화전문지가 조사한 한국영화계 파워 순위에서 3위에 랭크됐다. 1위는 CJ엔터테인먼트의 박동호 대표, 2위는 시네마서비스의 대주주 강우석 감독이다. 그런데 박동호 대표는 개인의 파워라기보다는 국내 최대 투자배급사이자 극장체인 CJ CGV를 갖고 있는 기업의 파워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강우석 감독도 소위 ‘강우석사단’이란 영화계 인맥이 균열되면서 지난 8년 간 지켜온 파워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강우석사단의 일원이었던 김미희 좋은 영화 대표가 차승재 대표가 이끌던 싸이더스픽쳐스와 결합해 싸이더스FNH의 공동대표로 취임한 게 파워의 감퇴를 보여준다. 김미희 공동대표는 합병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해 “차 대표는 믿을 만하잖아요”라고 반문했다. 차 대표의 파워는 이처럼 영화인들의 두터운 신망과 광범위한 영화계 인맥을 바탕으로 양질의 작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데서 나온다. 그는 국내 영화계에서는 드물게 흥행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지난해에는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5개 영화를 연속적으로 흥행에 성공시켰다. ‘살인의 추억’(510만명) ‘싱글즈’(220만명) ‘말죽거리잔혹사’(302만명) ‘범죄의 재구성’(220만명) ‘늑대의 유혹’(250만명) 등이 그것이다. 이들 영화는 흥행뿐 아니라 비평가들에게도 찬사를 얻었다.참신한 작가와 감독 지망생들이 쓴 양질의 시나리오가 가장 먼저 닿는 곳이 싸이더스FNH이다. 그가 제작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 등은 비록 흥행에 실패했지만 완성도가 높아 국제영화제에서는 수상했다. 이는 신종 미디어나 DVD 등 부가 판권 사업에서 높은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마니아층은 작품성 있는 콘텐츠를 경험하거나 보유하려는 열망이 강하다.또한 차 대표와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들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김선아 최선중 김무령씨 등 프로듀서들은 웬만한 제작자들보다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높다. 이들의 풍부한 제작경험은 효율적으로 현장을 관리해 예산 누수를 줄인다. 차 대표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적이 적은 편이다. 가령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사가 만드는 작품들에는 전지현과 정우성 등을 거느린 IHQ의 배우들이 거의 출연하지 않는다. IHQ의 정훈탁 사장과 강우석 감독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그러나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 ‘내 머리속의 지우개’의 정우성, ‘역도산’의 설경구 등 톱스타들이 차 대표의 영화에는 두루 출연한다. 왜 그럴까. 이들 톱스타들이 무명시절 차 대표의 영화를 통해서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그는 또한 액션과 드라마, 멜로,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두루 제작한 경험이 있다. 국내 영화계에서 그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가진 제작자는 없다. 차 대표는 지난 1989년 장현수 감독의 ‘걸어서 하늘까지’의 프로듀서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대학 동기였던 김태균 감독과의 친분이 인연이 됐다. 차 대표는 한국외국어대 불어과를 졸업한 뒤 4년 동안 카페와 의류사업으로 돈을 꽤 벌었지만 부동산 사기를 당해 모두 날렸다. 당시 주먹 출신의 중년층이 대부분이던 당시 촬영현장에서 그는 ‘젊은피’로 눈길을 모았다.90년대 들어 한국영화의 3대 제작자로 불리던 신철 유인택 안동규씨 밑에서 영화수업을 받았다. 신철 신씨네 대표와 ‘101번째 프로포즈’, 안동규 영화세상 대표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프로듀서로 각각 일했다. 그는 이때 감독과 제작사 간의 견해차를 좁히는 데 애를 태웠었다고 회고한다.그가 독립하게 된 계기는 유인택 기획시대 대표 아래서 프로듀서를 맡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성공이었다. 그는 흥행 수익금의 10%를 받고 나와 싸이더스의 전신인 우노필름을 설립했다. 95년이었다.창립작품 ‘돈을 갖고 튀어라’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깡패수업’은 일본 야쿠자를 소재로 한 게 빌미가 돼 상당부분 삭제한 끝에 개봉해 실패했다. 그는 이후 감독의 예술적 감각과 프로듀서의 역량을 조화시킨 일련의 작품을 내놓았다. 김성수 감독의 ‘비트’와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이 그것이다.영화 인생의 전기는 지난 2000년 통합커뮤니케이션 업체인 로커스의 김형순 대표와 만나 싸이더스를 출범시킨 데서 찾아왔다. 싸이더스는 영화사업(우노필름)을 중심으로 연예인과 스포츠스타 매니지먼트, 인터넷 극장, 방송과 음반사업 등을 아우르는 종합엔터테인먼트 업체였다. 영화제작사의 기업화, 콘텐츠의 멀티 유즈화, 엔터테인먼트의 산업화 등의 새 물결을 내다보고 판을 크게 벌인 것이었다. 그러나 차 대표는 곧 생애 최대의 시련을 맞게 된다. 정보기술시장이 예상처럼 빠른 속도로 성숙되지 않았다. 방송애니메이션 스포츠스타 매니지먼트 등 신규사업들도 지지부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화 ‘행복한 장의사’ ‘플란더스의 개’ ‘킬리만자로’ 등도 잇따라 흥행에 실패했다.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모기업에 부담을 주게 됐다. 차 대표는 2002년 모기업인 로커스홀딩스(현 플레너스)에 이혼을 요구했다. 싸이더스가 이때 독립하면서 떠안은 빚은 무려 110억원에 달했다.그는 당시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고 회고한다. “주주 이익에 반하는 사업을 하면 언제든지 퇴출된다는 사실이지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에 만족하고 영화기업을 이끌어 가는 전략이 부족했어요. 실패한 뒤에 비로소 기업가치와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경영자의 자세를 깨달았습니다.”그는 재독립한 이후 구조조정에 돌입해 애니메이션, 스포츠스타와 개그맨 매니지먼트 사업을 매각했다. 다행히 ‘살인의 추억’ 등 5개 영화가 연속 흥행에 성공했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부채를 모두 청산하고 무차입 경영에 들어갔다. 로커스와의 인연은 그가 영화제작사로서 앞선 경영조직을 갖추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싸이더스FNH는 경영의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영화사로는 드물게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아 왔다.또한 업무의 권한과 책임을 일선 부서에 내려 보냈다. 실무자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은 제작과정에 간섭하지 않았다. 이 회사의 이직률은 5%도 채 안 된다. 영화업계는 이직률이 대단히 높은 업종이다. 차 대표는 앞으로 윤태용 감독의 ‘소년 천국에 가다’를 비롯해 최동훈 감독의 도박영화 ‘타짜’, 유하 감독의 느와르 ‘비열한 거리’ 등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다. 흥행성과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이라고 한다. 첫 시험은 이 작품들의 흥행 여부에서 판가름 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