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weet Silver house

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곡강(曲江)에서 “인생칩실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예부터 사람이 70세를 넘기기가 어렵다는 뜻)”라고 읊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고희’는 사전에나 나올 만한 단어가 돼 버렸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녀의 평균 수명이 70세를 훌쩍 뛰어넘었다. 2002년 기준으로 남자는 71.2세, 여자는 78.6세다.자연스레 노인들의 고민이 ‘장수’에서 ‘인생 이모작’으로 바뀌고 있다. 의학계는 우리 사회 50, 60대 장년층의 정신적 허탈감이 우려할 수준이라고 말한다. 눈부신 경제성장기를 보내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50, 60대에게 지금의 경제 환경은 한숨부터 절로 나오게 한다. 편안한 노후를 꿈꿨지만 이들 앞에 놓여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물론 돈이 있다고 해도 어디에다 써야 할지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이런 경제·사회적 환경 변화 속에서 실버산업이 각광받고 있다. 실버산업은 주택, 금융, 제조업 등 사회 구석구석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실버주택은 다른 부문에 비해 발전 속도가 훨씬 빠르다. 5년 전만 해도 한두 곳에 불과하던 실버주택은 부동산 경기 붐을 타고 수도권에만 10곳이 세워지면서 ‘부자 노인들’에게 꿈의 주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실버주택에 입주한 지 3년째 되는 장치건씨(75)는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뭔가 이루고 싶은 욕망이 싹튼다”고 말한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인생에 집착하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장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경희대에서 교양강좌로 ‘생활의 지혜’를 가르치고 있다. 매주 열리는 학교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그는 1주일 중 3일 이상을 강의준비에 할애한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장씨는 실버타운 내 ‘노블까페’라는 문학모임에서 시를 해설하고 컴퓨터, 사진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한다.수원의 한 실버타운. 60, 70대 노인들이 골프 퍼팅장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다음주 수요일에 인근 은화삼CC에서 열릴 층별 골프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어이. 상순이! 길을 잘 봐!” “에이~ 퍼팅에 그리 힘이 없어서 쓰나. 자신감을 가져.” 모두들 골프연습에 열심이다. 같은 시각 3층 대연회장에서는 테이블 매너 특강이 열리고 있다. “외부 손님과 식사할 때 와인은 빠질 수 없는 음료죠.” 이날의 주제는 와인 식사 예절이다. 오후에는 세미나실에서 S증권 소속 세무사와 부동산 전문가가 강사로 초빙돼 절세 부동산 재테크 특강이 열렸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유영진씨(78)는 다음주에 있을 3세대 합창단 정기연주회 준비를 위해 음악 감상실로 향했다. 다음주에는 에버랜드 국화축제와 금강산 관광 등의 일정이 잡혀 있다. 고소득층 노인들 사이에 실버주택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에서 1시간 남짓한 곳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보내는 실버주택은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가 급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실버주택이 국내에 첫선을 보인 것은 불과 5년 남짓이다. 당시만 해도 실버주택은 노인요양원 등의 의료기관과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주로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입주해 재활치료를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3년부터 실버주택 시장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임대 개념이 도입되면서 실버주택은 ‘럭셔리 주택’으로 탈바꿈했다. 분양시장도 호조를 보여 용인 기흥의 삼성 노블카운티 1차는 입주율이 90%를 넘어섰고, 분당 구미동 시니어스타워는 약 80%의 입주율을 기록하고 있다.전국에 70여 개의 실버주택이 운영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수도권에서만 7~8 개의 실버주택들이 새로 건설되고 있다. 명지건설은 경기도 용인의 명지대 캠퍼스 인근에 명지 엘펜하임을, SK건설은 강서구 등촌동에 SK그레이스힐을 짓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서울 요지에도 실버주택들이 들어서고 있다. 정동 경향신문 사옥 뒤편에 경향신문과 한솔건설이 공동으로 실버타운 ‘상림원’(가칭)을 건설할 계획이다. 규모는 본관 뒤편과 팝콘하우스를 포함해 약 1600평 정도 된다. 화진복지산업은 은평구 녹번동 은평구청 뒤편에 실버주택 ‘클라시온’의 입주자를 모집 중이다. 삼성 노블카운티도 내년 4월에 2차분 270가구의 입주민을 모집하고 있다. 이 밖에 평창동 올림피아호텔도 실버주택으로 변신한다. 도시미학이 시행을 담당하며 현재 구체적인 건축계획을 구상 중이다. 올림피아호텔 건너편 옛 반도건축사 사무소와 북악파크부지 5000여평에도 실버주택이 들어선다. 시행사인 피앤디개발은 이곳에 약 430여 가구의 실버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 밖에 외국 유명 실버전문 업체도 다국적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통해 국내 실버산업 진출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노년층을 대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체력단련실, 의무실 등과 경보장치, 경사로 등이 의무적으로 마련돼 있어야 한다. 최근 공급되고 있는 실버주택들은 웬만한 고급주택을 뺨친다. 최첨단 체육시설은 물론 음악감상실, 의료기관, 전문 식당가 등이 갖춰져 있다. 용인 노블카운티에는 수영장, 골프연습장, 종합실내체육관, 게이트볼장 등 체육시설과 주말농장, 산책로, 야생화 정원 등이 마련돼 있다. 의료시설도 최첨단 수준이다. 노블카운티는 삼성서울병원과 연계된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송도병원, 명지 알펜하임은 명지병원과 의료서비스 협약을 맺고 있다. 또 SK그레이스힐은 전담 주치의사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실버주택에는 너싱룸(Nursing Room)이 마련돼 치매 등 정신질환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전문적으로 관리해 준다. 실버주택의 인기가 높은 게 단지 ‘하드웨어’ 때문은 아니다. 동호회 활동을 장려하면서 국내외 여행과 사회봉사활동 등 프로그램 마련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노블카운티에는 공예 서예 미술 꽃꽂이 등 뿐만 아니라 전문가를 초청, 각종 강연회와 공연 외국어 음악 미술 등을 교육하는 문화센터를 마련해 놓고 있다. 재즈 피아노에서부터 가야금 등 악기 연주는 물론 돌 페인팅 한국무용 등 운영중인 프로그램이 수십 가지다. 식단은 입주 노인의 건상상태에 맞게 칼로리와 섭취영양소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제공된다.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은 관리업체에서 대행해 준다.임대료는 비싸다. 입주비용은 평당 700만~1000만원 선이며 월 생활비는 부부기준으로 100만~240만원 정도 된다. 입주대상은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운영방식은 분양과 임대 두 가지로 나뉜다. 노블카운티, 서울시니어스타워는 임대방식으로 운영되는데 비해 SK그레이스힐은 분양방식이며 명지알펜하임은 분양과 임대가 섞여 있다.안상수 삼성 노블카운티 마케팅팀장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니 입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면서 “앞으로는 자체 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생활문화센터와 스포츠센터 등 모든 시설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함으로써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실버타운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65세 이상 인구가 지난 2000년에는 7%였던 것이 오는 2019년에는 14%로 늘어나는 등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면서 “이는 국내 실버산업의 성장잠재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핵가족화와 사회진출 여성이 증가하면서 노인 독립 거주공간인 실버주택 수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