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제 4호 (2005년 09월)

꿈의 씨앗과 부의 열매

기사입력 2005.11.14 오후 03:44

‘부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일찍이 중국의 사마천은 ‘사기(화식열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개 서민들은 상대방의 부가 자기 것의 10배가 되면 이를 헐뜯고, 100배가 되면 이를 무서워하여 꺼리며, 1000배가 되면 그의 심부름을 기꺼이 하고, 1만배가 되면 그의 노복이 되는데, 이것은 만물의 이치다.”
그래서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동양에서는 평민으로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오복을 모두 누린 사람을‘곽자의 팔자’라 했다. 당나라 때 안록산의 난을 평정하고 그 공로로 분양왕에 봉해졌으며 공주 며느리를 얻고 상부(尙父:아버지처럼 숭상한다는 뜻)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95세까지 살면서 100명의 손자를 둔 곽자의(郭子儀:687~781)는 동양인들이 모두 꿈꾸는 오복을 두루 누린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의 우상이었기에, 돈 있는 사람이면‘곽분양행락도’병풍 속에 손자를 안고 있는 곽자의를 꿈꾸며 부러워했다.
김종래는 ‘CEO 징기스칸’에서 몽고의 징기스칸은 알렉산더 대왕·나폴레옹·히틀러 세 정복자가 차지한 땅을 합친 것보다 많은 777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을 정복했다고 적고 있으며, 그의 성공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꿈’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으로 끝날지 모르지만, 만인이 꿈을 꾸면 얼마든지 현실로 가꿔낼 수 있다는 신념을 지녔다. 미래를 향한 비전을 함께 지닌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고 말하면서 꿈의 위대성을 주장한다.
좋은 꿈은 그 자체로도 행복을 준다. 옛날 중국에 밤에 꿈을 꾸면 언제나 하인이 되는 주인과, 꿈을 꾸면 언제나 주인이 되는 하인이 살았는데 하인이 항상 더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꿈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열려 있고 가능성의 희망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현실이 어렵더라도 꿈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꿈도 꾸지 마라!’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그냥 ‘꿈꾸기’에 그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곡식 씨앗을 땅에 심지 않고 가슴에 품고 있는 것과 같은 몽상가에 불과하다. 꿈의 씨앗을 현실의 땅에 심어 실천의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잡초와 벌레를 없애고 부지런히 가꾸어야 부의 열매를 거둔다. 그러므로 꿈을 꾼다고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꿈꾸지 않고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꿈’은 부를 이루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인 것이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집요하게 한 발자국씩 꿈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그 꿈을 현실로 바꾸어낸다. 부자는 바로 그런 사람이기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 비난받는 부자가 있는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그 부를 얻지 않았고, 그 부를‘사회 정의에 맞게’ 쓰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패망한 상나라 사람, ‘상인(商人)’
일찍부터 서양이나 동양에서는 상행위를 노예나 미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천시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농·공·상이라 하여 상인을 가장 천시했다. 장사하는 사람이란 뜻의‘상인(商人)’은‘패망한 상(商)나라 사람’들이 이곳저곳 떠돌면서 가축 장사를 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옛날 중국의 고대국가에 상[商:우리에게는 은(殷)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성군으로 이름난 탕(湯)이 세운 나라로 마지막 왕이었던 주(紂)왕은 애첩 달기에게 빠져 사람을 태워 죽이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이것이 유명한 포락지형(烙之刑)이다] 이를 보다 못한 발(發)이라는 신하가 일어나 주왕을 죽이고 은나라를 멸망시켜 새 왕조 주(周)를 세우고 무왕(武王)이 되었다.
망국의 백성이 된 상나라 사람들은 재산을 박탈당하고 최하층 천민으로 전락했고 무왕은 이들이 반란을 꿈꿀까 두려워 먼 지방으로 쫓아내고 가축이나 매매하면서 살도록 했다. 가축 장수였으므로 그들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장사를 해야 했다. 그래서 ‘상나라 사람’하면‘장사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한자에는‘장사’를 뜻하는 말로 상(商)과 고(賈)가 있는데, 상은 이리저리 떠돌며 장사하는 것이고, 고는 한 곳에 정착해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나라가 망하면 그 백성은 노예나 천민이 되기는 동서양이 같았다. 바빌론의 왕이 예루살렘을 약탈하고 불태운 뒤 유대인들을 포로로 데려가기 전까지 유대인은 축복받은 땅에서 평화롭게 목축을 하는 민족이었다. 그 후부터 그들은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방랑생활, 즉 디아스포라(Diaspora)에 들어가 그늘진 곳에서 인내와 지혜로 부를 쌓아갔다. 유대인의 부가 늘어나자 경쟁자들은 두려움과 함께 어느새 그들을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전쟁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죽은 사람의 원한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살아남은 사람도 갖은 고초를 겪는다. 로마 군인들은 한 민족을 몽땅 끌고와 팔기도 했으며 이때 노예는 대략 염소 한 마리 값이었고 영리한 상인이나 아름다운 여인은 염소 다섯 마리 값까지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개성상인도 패망한 고려 귀족들이 몰락하여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가난으로부터 부를 얻는 데는‘농(農)은 공(工)에 미치지 못하고, 공은 상(商)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 사마천의 말은 사실이다. 화폐제도와 무역이 발달하면서 모든 재물이 거래되기 시작했고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상인은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돼 힘을 얻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실패할 때마다‘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세상에 돈으로 사지 못할 것이 없다. 다만 그 액수가 문제다’라고 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솔직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 조금 과장하면 세상에 거래되지 않는 것은 없었다.

꿈도 거래되었다
상거래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한스 외르크바우어는 ‘상거래의 역사’(Kultur und Geschichte des Handels)에서 “아담과 이브는 태초에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상거래의 근간을 이루는 교환거래를 태동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성서 창세기 편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웃 히타이트의 에프론으로부터 죽은 아내 사라를 묻을 땅을 산다. 처음에 에프론은 그 재산을 조건 없이 선물로 주겠다고 하지만 아브라함은 굳이 돈을 주겠다고 고집하고 은을 달아 땅값을 지불하고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매매를 공표한다. 이것은 돈을 지불함으로써 그 땅을 자신의 재산으로 확보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며 그 증거를 남김으로써 매매거래를 확정짓는 것이다. 이처럼 사유재산을 인정하던 고대에도 거래는 신성시했으며 정당한 절차를 거친 거래는 존중됐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역사상 최초의 법률)의 상당 부분은 거래에 따른 마찰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사유재산의 인정’과 이에 따른‘신성한 거래’가 부자를 낳는 제도적 바탕이 됐다. 따라서 고대 사회에서 정당하지 못한 거래나 채무 불이행은 매우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로마에서는 아무리 작은 채무라도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채무자의 모든 재산이 몰수돼 경매로 산산조각나기도 했다고 한다.
상거래의 역사는 오래됐으며, 세계 문명 발상지가 바로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리스에서는 거래가 열리는 광장을 아고라(Agora)라고 불렀고, 로마인들은 포럼(Forum)이라고 불렀으며, 동양에서는 장(場) 또는 시(市)라 불렀다. 시장에서 모든 것은 거래됐다. 이야기 속이지만 심청은 남경상인에게 공양미 300석에 제물로 팔렸으며, 박지원은 ‘양반전’에서 환곡을 못 갚는 선비가 부자에게 양반 신분을 파는 이야기를 시니컬하게 들려준다. 심지어는 꿈까지도 사고팔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29대 태종 김춘추의 부인으로 김유신의 막내 누이인 문희가 언니 보희에게 꿈을 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보희가 꿈에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서라벌이 가득 차는 꿈을 꾸었다. 아침에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했더니 문희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내가 이 꿈을 살게”라고 말했다. 이렇게 흥정이 벌어져 동생은 비단 치마를 주고 언니의 꿈을 사기로 하고 치마폭을 벌렸고, 언니는“어젯밤 꿈을 너에게 주겠다”고 말함으로써 거래는 끝났다. 문희는 오래지 않아 김춘추를 만났고 훗날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에 오르자 문명황후가 됐다.
아브라함이나 문희의 경우에서 공통점은 대가를 주고 거래했고 선언을 함으로써 증거를 남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상으로 기증하는 것과는 다르다. 무상으로 주었을 경우에는 끝까지 그 고마움이나 부담이 남고 소유권이 불확실하지만 거래가 이루어지면 이런 부담에서 벗어나면서 신성한 소유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거래되지 않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정당한 거래에 의한 소유권만이 신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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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5-11-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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