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고객이 원하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계에 ‘왕중왕’ 서비스 바람이 불고 있다. 갓난아기의 제대혈을 보관하는 프리미엄 서비스가 등장하는가 하면 호텔을 뺨치는 VIP용 병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코디네이터가 동행하면서 검진을 챙겨주는 건강검진 프로그램도 속속 도입되고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를 위한 뷰티 치료와 치과, 안과, 심지어 장례 서비스에도 ‘특급’ 서비스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의료계에 ‘명품 바람’이 불고 있는 셈이다. ‘왕중왕’ 의료 서비스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상류층의 니즈와 고수익을 올리려는 의료계의 계산이 맞아떨어져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의료 서비스 현장을 들여다봤다.년 5월 연세의료원은 신촌에 세브란스병원을 신축했다. 신축 건물 맨 위층인 20층에는 하루 입원료가 170만원인 입원실 2곳이 들어섰다. 이들 VIP병실은 50평 규모로 입원료가 국내에서 가장 비싸다. 이 병실은 환자입원실과 보호자들이 머무는 거실, 가족실 외에 부엌과 화장실 2개 등 특급호텔 스위트룸과 대등한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거실과 가족실에는 각각 63인치와 50인치 대형 벽걸이 PDP-TV가 1대씩 달려있다. 8명이 참석할 수 있는 회의실에는 컴퓨터 2대와 팩스 등 사무기기가 비치돼 있다. 이곳에선 연대 뒤편에 있는 ‘안산(案山)’의 넉넉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루 입원료 170만원은 서민들이 사용하는 다인병실 사용료(6인실 기준 환자부담분 9500원)보다 무려 179배가량 비싼 것이다. 이 병실엔 그간 김대중 전 대통령(특별할인을 받음)과 Y모 회장, H모 사장 등 내로라 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치료와 휴식을 받기 위해 입원했었다. 이 병실을 관리하는 김은주 수간호사는 “최근 방한했던 미국 메이요 클리닉과 존스 홉킨스병원 관계자가 특급병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며 “일본과 중국의 부호들이 병실을 견학하고 자신들도 필요하면 이곳에 입원하겠다는 뜻을 남기고 갔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은 1박2일이나 2박3일로 400만∼500만원짜리 숙박건강검진을 통해 몸에 병든 곳이 있는지 샅샅이 훑어보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휴양 겸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보름 이상 머물고 가기도 한다고 병원 관계자는 전했다.지훈상 연세의료원장은 “같은 평형의 국내 특급호텔 하루 숙박비가 460만원 선인 것을 볼 때 VIP입원실 사용료가 과도하게 비싼 것은 아니다”며 “전담간호사가 24시간 배치돼 있고 응급 상황 시 인접거리에서 의사가 도착할 수 있는 게 장점”이 라고 말했다. 지 원장은 “신분 비밀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앞으로 중국 일본 동남아 등지의 상류층 고객을 유치하는데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대형 병원의 병실이 럭셔리해지고 서비스가 호텔 수준으로 격상된 것은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의료원이 1994년 문을 열면서부터다. 그때 묘판에 싹이 틔워졌다면 최근에는 서비스에 병원의 사활을 걸고 경쟁적으로 개선에 나서고 있다. 2003년 서울대병원이 강남에 건강검진센터를 오픈한데 이어 연세의료원이 지난해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신축하면서 프리미엄 서비스 경쟁은 절정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여기에 중소 병·의원도 앞다퉈 특화한 영역으로 서비스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병·의원이 늘고 있는 것도 예전과 분명 다른 트렌드다. 의료계에 명품 서비스 경쟁이 가열되면서 수요자인 환자에겐 그만큼 선택의 기회가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프리미엄 의료 서비스는 갓난아기때부터 시작되고 있다. 제대혈 보관상품을 개발한 메디포스트는 ‘셀트리 프리미엄 서비스’를 130만원에 제공하고 있다. 이는 아기가 성장하면서 걸릴지 모를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골수이형성증후군 등에 대비해 탯줄의 줄기세포를 질소 탱크에 섭씨 영하 196도로 냉동 보관해두는 상품이다. 다른 업체들의 제대혈 상품들은 90만∼110만원 선. 가입고객에겐 계열사인 헬스케어업체 ‘에임메드’를 통해 산후 우울증 검사, 아기발달검사 등 아이와 산모의 건강을 정기적으로 체크해준다. 회사 측은 한달 평균 300여 명의 고객이 새로 가입하고 있다고 전했다.성형과 피부과에 부는 엘레강스 서비스 바람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여기에 재활의학,치과, 안과, 노화방지, 암치료 등에도 차별화한 서비스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는 ‘건강한 삶’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무조건 오래 살기보다는 ‘멋있게 젊게 살기’를 추구하고 있는 세태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이 같은 ‘노후웰빙 선호’ 추세에 따라 아프기 전에 몸을 체크하는 건강검진과 노화방지 등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한국의 의료 서비스가 고급화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란 분석이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소비자가 기대하는 의료 서비스 수준이 올라가고, 의사들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현실이 의료 고급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상류층의 VIP들이 의사와 충분히 상담하면서 치료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때문에 의료계 일각에서는 공공의료를 확충하되 남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더라도 최상의 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의료 서비스의 차별화 길을 터주자는 주장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그 실행방안으로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허용해 치료비에 비례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 서비스 산업을 국가 성장엔진으로 삼자는 구상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기류를 타고 관련법이 만들어져 이미 인천, 부산, 광양 등 경제자유구역에 건강보험수가의 구속을 받지 않는 ‘국제병원’이 들어설 계획이다. 미국 7위의 뉴욕장로병원이 송도국제병원 건립의 우선협상권자로 낙착된 상태다.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 외에 민간 사보험을 대거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세를 얻어가고 있다.이런 구상과 정책들이 실행에 옮겨지면 외국으로 치료받으러 나가 유출되는 연간 1조원(재경부 추정치) 정도의 의료분야 무역수지적자가 상당 부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국내 최고수준 병원ㆍ호텔 1일 이용료 비교 : ☞ 의료 명품과 일반 상품의 가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