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의 제왕 ‘스티브 윈’

이들에게 디즈니월드가 있다면 어른들에겐 라스베이거스가 있다. 눈높이가 달라서 그렇지 둘 다 꿈과 환상의 세계다. 물론 라스베이거스의 꿈은 인간적 욕망이 꿈틀대는 농익은 것이다. 에펠탑과 피라미드, 해적선으로 꾸며진 호텔들을 유치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마음속에선 탄성을 감출 수는 없을 게다.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를 말 그대로 시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스티브 윈(Steve Wynn)은 1990년대 라스베이거스의 중흥을 이끈 카지노 리조트 개발업자로 유명하다.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왕’ ‘라스베이거스의 제왕’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린다. 그러나 가장 알맞은 별칭을 지어준다면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 정도가 더 좋을 듯하다. 그는 볼케이노(화산) 쇼로 유명한 미라지 호텔, 분수 쇼가 압권인 벨라지오 호텔, 해적들의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트레저 아일랜드(보물섬) 등을 건립했다. 작년엔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윈라스베이거스 리조트를 탄생시켰다.윈은 특히 라스베이거스를 단순한 ‘도박 도시’에서 ‘국민 관광지’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칭송받고 있다. 그는 고흐 고갱 마티스 등 유명 화가들의 진품을 사들여 호텔 내 갤러리에 전시하는가 하면 파리와 뉴욕의 유명 레스토랑을 호텔에 유치하기도 했다. 도박꾼들에게 필요한 것은 카지노와 술, 화려한 쇼뿐이라는 상식을 파괴한 것이다. 가족 단위 여행객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라스베이거스가 본격적인 가족 관광지로 거듭나게 됐다.미국 경영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스티브 윈의 재산은 총 18억 달러로 미국 400대 부자 중 164위에 올랐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빙고 게임장과 도박 빚 20만 달러를 동시에 유산으로 물려받은 스물한 살의 청년이 40년 만에 억만장자로 떵떵거리게 된 것이다. 1942년생인 윈은 1963년 아이비리그의 명문 펜실베이니아대학을 졸업했다. 전도양양한 청년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이 도박과 관련된 사업이었던 것이 그의 인생 나침반을 조금 돌려놓았을 뿐이다. 그는 1967년 아내 엘렌과 함께 메릴랜드 주에서 라스베이거스로 옮겨왔다. 빙고장에서 번 돈을 밑천으로 프런티어 호텔과 카지노 지분을 사들였다. 1970년대 초반 그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던 은행가 패리 토머스와 함께 시저스팰리스 호텔 토지 매입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이를 통해 카지노장 골든너겟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70년대 말 그는 골든너겟의 연간 이익을 100만 달러에서 1200만 달러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꿈의 리조트 미라지를 짓게 된다. 당시 돈으로 4억4000만 달러를 들여 객실 3000개 규모의 미라지를 건설했다. 호텔 안에다 숲을 만들고 밖에는 활화산을 설치해 이목을 끌었다. 이어 90년대에는 트레저 아일랜드와 벨라지오를 지었다. 벨라지오에는 인공 호수를 호텔 앞에 만들고 실내 온실, 미술품 갤러리, 명품 숍을 유치했다. 벨라지오는 이후 최고급 카지노 호텔 건립의 효시가 됐다. 라스베이거스가 본격적으로 혁신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들 호텔을 본떠 뉴MGM 엑스칼리버 만달레이베이 등이 새로 지어졌다. 이 때문에 90년대에 라스베이거스 중심 거리는 몰라볼 정도로 바뀌었다. 주인공은 항상 그렇듯이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사라진다. 윈은 미라지 이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데 따라 실탄이 동나자 라스베이거스의 또 다른 거물이자 라이벌인 커크 커코리언 MGM호텔 회장에게 결국 미라지를 빼앗기고 만다. 겉으로는 ‘매각’이었지만 ‘빼앗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윈의 사업가적 기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기존 리조트에선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환상적 볼거리와 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리조트를 다시 짓기로 했다. 자신의 숙원이었던 만큼 이름도 ‘윈라스베이거스’라 지었다. 총 27억 달러를 투입, 작년 4월에 개장했다. 9·11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새로 지어질 건물의 예산이 10억 달러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윈라스베이거스의 규모를 짐작할만하다.50층의 윈라스베이거스는 반짝이는 청동유리 타워와 43m의 인공 산 사이로 9m 너비의 강이 흐르도록 했다. 호텔 건물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압권이다. 인공 산을 짓는 데만 무려 1억2000 달러를 들였다. 방에는 평판 HDTV와 인터넷 전화를 설치했다.“내가 라스베이거스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상상력을 갖고 새로운 명물을 건설하려는 이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지구촌 어디에 카멜롯성과 피라미드가 연이어 있고 몬테카를로 옆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으며 로마제국과 이탈리아 호수가 붙어있는 곳이 있겠는가. 어떤 곳이든 여러분을 몰두하게 한다. 그리고 최고의 작품은 앞으로 계속 출현할 것이다. 앞으로 5년간 라스베이거스에서 엔터테인먼트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릴 것이다.”윈이 2000년 2월에 한 말이다. 마치 윈라스베이거스를 내다보고 한 말 같아서 그의 예지력이 섬뜩하기조차 하다. 그는 현재 중국 마카오와 중국 특별행정구에 카지노를 짓고 있다. 이름하여 윈마카오. 오는 9월 개장할 예정이다. 아시아를 주목하는 안목도 역시 뛰어나다 할 수 있다.경영자로서 윈의 자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일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얘기. 1980년대 중반 라스베이거스에 불경기가 몰아닥쳤을 때의 일이다. 당시 시저스팰리스 MGM 등 거대 카지노들은 생존을 위해 대규모 해고를 단행했다. 대부분 20~30%의 직원들을 잘라야 했다.이들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의 카지노를 경영했던 윈은 참을 만큼 참다가 어느 금요일 오후 전 직원을 강당에 모이게 했다. 직원들은 해고 발표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그가 강당에 들어설 때 200여 종업원들은 야유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윈의 입에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말이 터져 나왔다. “이번 주말에 전 직원은 평소 갖고 싶어 했던 자동차를 가격에 상관없이 하나씩 고르십시오. 비용은 회사에서 책임지겠습니다.” 물론 감원 얘기는 한마디도 없었다. 강당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회사로선 자동차 리스 비용이 수십만 달러 추가됐다. 하지만 이후 영업 실적은 엄청나게 호전되기 시작했다. 종업원의 마음을 감동시킨 윈의 회사는 실적이 가파르게 올랐던 것이다. 얘기 하나 더. 1995년 4월 어느 날, 한 할아버지 노숙자가 트레저 아일랜드 카지노에 와서는 정부보조금 400달러로 블랙잭을 하기 시작했다. 싸구려 시가를 피우고 독주를 마시며 카지노 바닥에 침을 내뱉던 그는 예상을 깨는 베팅을 하면서 150만 달러를 땄다고 한다. 카지노에선 스위트룸과 전용차, 보디가드까지 붙여주며 그가 딴 돈을 도둑맞지 않도록 지켜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노인은 계속 게임에 지더니 판돈이 5만 달러로 줄어들고 말았다. 얼마 되지 않아 땡전 한 푼 남지 않게 될 판이었다. 그때 윈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고 노인이 5만 달러를 갖고 카지노를 떠나게 했다. 노인이 그 돈을 다른 카지노에서 날렸는지 어땠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윈이 노인을 생각한 마음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그는 개인적으로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아서 세계 유명 화가들이 그린 오리지널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지금도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터너의 작품을 3580만 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또 개인 골프장을 갖고 있을 정도로 골프를 좋아한다. 톱스타 등 유명 연예인들과 사교 모임을 자주 갖고 그들과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해 그들을 자신의 사업에 적절히 이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물론 자수성가형 억만장자들은 자신의 인생 역정이 낱낱이 밝혀지는 것을 싫어한다. 그의 스토리를 실은 책 ‘러닝 스케어드(Running Scared:라스베이거스 카지노왕 스티브 윈의 삶과 격정의 시대)’가 1995년에 발간되자 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았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라스베이거스 법정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재미있는 것은 재판이 끝난 뒤 담당 판사의 남편이 윈의 회사에 고위직으로 채용된 사실이 밝혀졌다. 역시 ‘수완가(hustler)’란 평가를 들을만하다.가족사와 관련해선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1993년 두 딸 중 한 명인 케바인이 납치되는 불행을 만난다. 그는 거금 145만 달러를 내놓고 딸을 되찾았다. 이때 납치범이 몸값으로 받은 돈으로 페라리 자동차를 샀다가 적발돼 결국 체포됐다. 이 스토리는 오션스 일레븐이란 영화의 리메이크에 각색돼 사용되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현재 윈라스베이거스 스위트룸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