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이태원

지컬 ‘명성왕후’의 주인공 이태원. 벽안의 미국인뿐 아니라 국내 팬들의 가슴 속에도 깊은 인상을 남긴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의 프리마 돈나. 그녀에겐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라는 수식어가 초라하다. 세계적 뮤지컬 스타라고 부를만하다. 한국 창작 뮤지컬 대작인 ‘명성황후’ 역할만 10여년 가까이 해오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공연했고 그 이전에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인 ‘왕과 나’에서 태국 왕비 역을 탁월하게 소화해낸 잘나가는 톱 배우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뮤지컬 아카데미상이라는 로렌스 올리비에상 조연상 수상, 미국 오베이션상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등이 그녀의 국제적인 명성을 방증한다.이태원이 맘마미아의 주인공 ‘도나’ 역으로 고국 팬들을 찾는다. 그녀는 15세 때인 1981년 11월 부모를 따라 미국 오하이오 주로 이주한 이민 1.5세대다. 한창 사춘기 시절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그녀는 숱한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몽환기적 청소년기에 그는 제복을 입고 규격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군인이 되길 꿈꾼다. 미 공군사관학교 진학을 준비한 것.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하지만 열일곱이라는 나이 때문에 미국 시민권이 없었던 그녀는 공사 진학을 포기하고 뉴욕 줄리아드음대 성악과에 입학한다. 평소 노래하기를 즐겼고 주위에서 타고난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는 평을 종종 들어서였다. “얼떨떨했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치기가 넘치던 시절이라 ‘내가 줄리아드 떨어지면 하나님 망신이다’라는 마음을 먹기도 했죠. 음악도면 누구나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면서 자신감이 붙고 이게 내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자신감과 타고난 재능을 무기로 줄리아드음대 대학원까지 마친 그녀는 우연한 계기에 뮤지컬에 입문하게 된다. 담당 교수가 갑작스럽게 제안한 것. 당시 브로드웨이에서는 율 브리너 추모 기념으로 뮤지컬 ‘왕과 나’의 리바이벌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고 여기 등장할 태국 왕비를 찾는 중이었다. 교수는 “그들은 아시안 메조소프라노를 찾고 있다. 나이로 보나 음색으로 보나 네가 적격”이라며 그녀를 설득했다. 그 길로 오디션용 테이프를 녹음했고, 이를 받아본 공연 제작자로부터 즉각 ‘OK’ 사인을 받았다. 그녀가 뮤지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단추를 채우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통 성악가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녀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우승’ ‘마리안 앤더슨 국제 콩쿠르 동메달’ 등을 통해 이미 성악계에 명함을 내민 상태였기 때문이다.“1995년부터 시작한 뮤지컬 ‘왕과 나’를 시작으로 전문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2000년도엔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올려진 뮤지컬 ‘왕과 나’ 왕비 역에 캐스팅돼 로렌스 올리비에상 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모르는 사람들은 ‘시작부터 탄탄대로를 걷는다’고 입을 모았지만 힘든 적도 많았어요. 소수계 출신이란 점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멸시와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을 때는 브로드웨이 무대는 동양의 조그만 배우가 넘지 못할 커다란 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독종’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녀의 말투에서 패기가 느껴진다.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뮤지컬 배우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1997년. 그녀는 ‘명성황후’ 제작진에 명성황후 역을 맡아보고 싶다고 의사를 타진한다. 뮤지컬 배우로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고국 무대에서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뛰어난 가창력에도 불구, 이태원이 한국 뮤지컬 배우가 되기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예쁜 얼굴을 선호하는 한국 관객들의 성향을 고려, 제작진이 캐스팅을 망설인 것. 그러나 이태원은 자신이 명성황후 역의 적임자라며 제작진을 설득해 결국 명성황후로 ‘환생’, 고국 땅을 찾는다. 명성황후 역은 그녀에게 맞춤복같이 딱 맞았다. 국내 무대를 거쳐 다시 브로드웨이 한복판에 선 명성황후 이태원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해 뉴욕 12회 공연 모두 기립박수를 받아냈다.“뮤지컬 배우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죠. 뮤지컬은 틀에 얽매여 형식을 중요시하는 오페라와는 다른 매력이 있지요. 이후로 유린타운, 사운드 오브 뮤직, 넌센스 등 다양한 뮤지컬에 도전했죠. 이번엔 ‘맘마미아’라는 작품에 올인 하려고요. 그런데 생각보다 쉽진 않네요. 아직 한국말 구사가 자연스럽지 못한 데다 지금까지 써왔던 발성법을 확 뜯어고쳐야 했거든요.”성악가 출신인 그녀는 노래할 때 주로 머리가 울리도록 소리를 내는 ‘두성’을 써왔다. 하지만 맘마미아에서는 팝그룹인 ‘아바’의 노래만 부르기 때문에 두성보다는 목으로 소리를 내는 ‘진성’을 많이 쓴다. 목소리를 바꾸면서까지 그녀가 이 작품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영국에 있을 때 처음 ‘맘마미아’라는 공연을 보고 주인공 ‘도나’ 역할에 욕심이 생겼어요. 저 역할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2004년 한국 맘마미아 공연의 오디션에 응시했지만 아쉽게 탈락했죠. 결국 올해 재도전한 끝에 박해미 선배와 더블 캐스팅 되는 행운을 안았어요. 하루에 10시간 정도 연습하느라 살이 많이 빠졌어요. 평소 안하던 춤까지 추려니 근육에 경련이 일었어요. 왕비 역할만 10년을 하다 보니 품위를 잃지 않느라 그동안 좀 경직되어서 그런가 봐요.(웃음)”그녀는 ‘왕비 이태원 대신 맘마미아의 도나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이태원이라는 사람의 연기도 봐줄만 하구나’라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이번 작품을 통해 ‘노래도 연기도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그녀.“뮤지컬 맘마미아 3개월의 공연이 끝나면 9월부터 다시 명성황후의 지방공연이 시작돼요. 또 지난해부터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인 명지대 공연예술학과 수업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죠. 틈틈이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콘서트 무대에도 설 계획입니다. 노래하는 시간만큼은 나를 잊을 정도로 즐겁기 때문이죠.”막 불혹을 넘긴 나이. 나이답지 않은 놀라운 가창력과 넘치는 에너지의 원천은 네 살 연하인 남편 방정식 씨다. 동료 배우인 그와 재작년 결혼해 아직 달콤한 신혼 생활에 빠져 있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삶’이라는 신념이 오늘도 그녀를 웃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