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얘기지만 요하네스 본프레러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그에게 떨어진 특명은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다. 그는 1년 남짓 우리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4승 3무 3패의 꽤 괜찮은 성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작년 8월,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우리 팀의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결과는 0 대 1 패배. 그러나 이미 우리는 그 전에 치른 원정 경기에서 쿠웨이트를 4 대 0으로 대파, 본선 진출 티켓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게임이 끝난 뒤 경기장에선 화려한 출정식이 열렸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했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는 선수들에게 관중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본프레러 감독이 소개됐다. 그런데 이 감격적인 순간, 관중은 감독을 향해 뜨거운 박수 대신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자신이 맡은 특명을 완수해낸 벽안의 노감독에게 격려와 성원은커녕 어째서 야유를 퍼부은 것일까. 이번엔 본프레러의 후임인 딕 아드보카트감독의 경우를 보자. 그가 맡은 임무는 월드컵 16강 진출이었다. 그러나 더 중언부언할 것도 없이 그는 임무 완수에 실패했다. 이상한 일은 임무 완수에 실패한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우리 국민은 결코 야유를 보내지 않았다. 그만하면 잘했다고 오히려 박수로 환송해 주었다. 전임 본프레러 감독과는 대접이 판이했다. 이쯤 되면 그 이유를 곰곰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과정이다. 결과와 과정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앞서 본프레러의 경우, 비록 해당 임무는 완수했다손 치더라도 과정이 나빴다. 공격수를 더 보강해야 할 장면에서 수비수를 집어넣거나, 컨디션이 과히 좋아 보이지 않는 선수를 끝까지 교체하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기 내용을 두고 자신의 판단이 맞는다며 고집을 부리기 일쑤였고, 그러다 게임에서 패하면 원인을 공공연히 선수나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국사의 위중함은 축구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지금 행정부에서 세금으로 녹봉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국민 대표다. 선출직들은 자신이 그 일을 맡아 하게 해달라고 목이 터지게 호소하고 읍소해서 그 자리에 뽑힌 사람들이고, 임명직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충복이 되겠다고 각오하고 공직에 인생 전체를 바친 사람들이다. 양쪽 모두 코흘리개가 과자 한 봉지를 사면서도 물어야 하는 국민의 혈세로 밥을 먹고, 애들을 키운다. 이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 5000만 국민 전체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다. 아니 국가의 운명과 민족의 장래가 이들의 말 한 마디, 도장 하나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사일로 야기된 대북 문제를 보면 세상에서 오직 우리만 평화를 사랑하고, 오직 우리만 박애주의자인 것 같고,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거진 대미협상 과정을 지켜보면 도대체 저들이 우리 국민의 대표인지 분노를 넘어 허탈감마저 느낀다. 모 방송사의 특집보도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충복이 아니라 개인의 영달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은 21세기 매국노다.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고 끝난 한·일어업협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어민이 자살하고 어촌을 떠났던가. 수시로 우리를 괴롭히는 독도 분쟁 역시 그 원인과 발단이 지난 98년에 체결한‘신 한·일어업협정’때문임을 거듭 강조한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예사롭지 않은 기류 변화 앞에서 이 나라 위정자와 공직자들은 축구에서 본프레러와 아드보카트 감독이 남긴 교훈을 다시 한번 깊이 되짚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