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ance 제 23호 (2007년 04월)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기사입력 2007.04.20 오전 09:36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미디어의 황제’라 불리는 루퍼트 머독(76) 뉴스코퍼레이션 회장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인물도 드물다. ‘21세기 경영의 승자’, ‘존경받을 만한 총명함과 사업 수완의 소유자’라는 찬사가 한편에 있다. 영국의‘더 타임스’를 인수하고 부도 난 뉴욕포스트를 회생시키고 홍콩 스타TV 지분을 63% 사들이며 보여준 영토 확장 능력은 가히 놀랍다.

하지만 과도한 기업 인수, 가격 인하 경쟁을 벌여 미디어 업계의 질서를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있다. 아무래도 언론계를 상대로 인수·합병(M&A)을 진행했으니 타 언론에서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인물’이란 혹평까지 나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머독을 두고 ‘지구촌 정보통신부 장관’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영국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는 “그의 야망을 저지하는 것은 마치 독수리에게 풀만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미국이나 유럽 대륙이 아닌 호주 출신이란 점, 언론 비즈니스로 거부를 형성했다는 점 등도 이런 공격의 빌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루퍼트 머독은 1931년 호주 멜버른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종군기자 출신이자 신문 발행인이었던 키스 머독 경. 머독 회장이 미디어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이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머독 경은 아들을 호주에서 가장 규율이 엄격하다는 지롱 그래머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학교 성적은 중위권이었다. 머독의 친구였던 리처드 셔비는 “머독은 공부하는 것을 싫어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머독은 옥스퍼드의 우스터 칼리지에서 정치학과 철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자기 신문의 영국 특파원을 겸하게 하면서 많은 양의 글을 쓰게 했다. 장차 자신의 사업을 이어받길 원했던 머독 경으로서는 아들의 능력을 키워주는 한편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머독은 이 기간에도 사회주의에 빠져드는 자유분방함을 보였다. 옥스퍼드 재학 시절 흠모하던 레닌의 흉상을 방에다 모셔놓았을 정도다. 학교에서도 ‘레드 루퍼트’, ‘루퍼트 더 레드’란 별명으로 불렸다. 머독의 이후 기업 사냥을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52년 옥스퍼드를 졸업한 머독은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그 해 아버지의 죽음으로 호주로 돌아온 머독은 아들레이드에서 발행되는 ‘뉴스’라는 신문과 데일리 메일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머독은 신문 제작의 초점을 스캔들 섹스 스포츠 범죄 등 이른바 ‘옐로 저널리즘’에 맞췄다. 신문 판매 부수를 비약적으로 늘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하나씩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면서 영국 미국 아시아 남미 중국 등지로 세계 미디어 시장을 파고들었다. 현재 뉴욕포스트, 폭스TV, 더 타임스, 20세기폭스, 델파이 인터넷 서비스 등 780여 종의 사업을 52개 국에서 펼치고 있다. 뉴스코퍼레이션은 이 미디어 재벌의 총본산인 셈이다. 머독은 새로운 인터넷 시대를 맞아 종이와 잉크, 전파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2005년 무려 5억8000만 달러를 주고 산 마이스페이스닷컴(www.myspac e.com)이 대표적인 예다. 이미 고희를 훌쩍 넘긴 그가 어떻게 보면 애들 장난 같은 마이스페이스닷컴을 사들이리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그는 범부와 달랐다.

머독은 와이어드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오늘날과) 비교할만 것을 찾고 싶다면 출판 인쇄술이 탄생한 500년 전으로 돌아가면 된다. (출판 기술에 의한) 매스미디어의 탄생은 왕과 귀족이 지배하던 낡은 세상을 해체했다. (오늘날의 미디어)기술은 에디터 발행인 기성 권력 미디어 엘리트 집단이 향유했던 권력을 빼앗고 있다. 이제는 일반인(people)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됐다. 인터넷이야말로 미디어의 황금기에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이런 마인드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IT 기업이 아니다. 너무 빨라서도 곤란하다”고 말하던 그였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튠스, 구글의 대성공 등이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측되면서 머독도 위기감을 갖고 생각을 180도 바꾸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인터넷에만 지금까지 15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투자했다.

이런 머독의 경영 철학을 소개하는 책들은 국내에도 많이 나와 있다. ‘루퍼트 머독의 경영 철학(Business The Rupert Murdoch Way)’이란 책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의 성공 경영 철학을 10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
첫째, 현실적이어야 한다. 머독은 정치 파워를 기르고 인맥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다. 정치적 능력이 비즈니스 능력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권력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냈고 정확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둘째, 경쟁이 자신을 키운다고 생각했다. 다른 경영자들처럼 경쟁자를 제거하기보다 그들과의 경쟁을 즐겨왔다. 셋째, 분석을 하되 직관을 중시한다. 1990년 말 위성방송회사 스카이TV는 부실 덩어리였다. 이때 머독은 큰 도박을 감행했다. 경쟁사인 BSB와 합병해 ‘B스카이B’라는 글로벌 위성방송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어떤 방송사든 글로벌 위성방송 네트워크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승산이 없다고 생각해 밀어붙였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넷째, 그는 리더십을 널리 확산시킨다. 흔히 하는 말로 ‘열정으로 직원들을 전염시킨다’는 얘기다. 머독은 전화하기를 좋아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원들과 협력자들에게 전화를 해 자신의 의지를 설명했다.

다섯째, 현장 상황에 무조건 간섭하지 않았다. 가능한 한 거대 조직의 모든 운영 상황을 파악은 하되 세세한 간섭은 자제했다. 이미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한 다음 어느 순간 현장 책임자를 호출해 사실을 확인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기존 시장에 참여하기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데 노력했다. 기존 비즈니스 법칙을 깨뜨리는 것이 자신의 조직을 건강하게 하고 타성에 물들지 않게 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제 머독의 나이도 80세를 향하고 있다. 세계 언론들이 그의 후계 구도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머독은 총 3번의 결혼을 통해 6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제일 맏이인 딸 프루던스가 48세인 반면 막내 클로에는 네 살짜리 젖먹이다. 후계 구도와 관련해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은 바로 클로에와 그레이스(5)를 둔 세 번째 아내 웬디 덩(36)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머독은 1999년 두 번째 부인인 안나와 이혼하고 서른일곱 살 연하의 중국인 웬디 덩을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예일대 경영학 석사 출신인 웬디는 홍콩 스타TV 부사장을 맡고 있던 재원이었다. 이혼 전 머독과 웬디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안나는 눈 앞의 돈보다는 자식들의 안정적인 미래를 선택했다.

머독 가문은 그룹의 지분 28.5%를 AE 해리스 트러스트에 신탁하고 있다. 안나는 머독이 사망할 경우 첫 번째 부인이 낳은 프루던스, 안나의 자녀들인 엘리자베스(38), 라클란(36), 제임스(34)가 수탁인이 된다. 머독은 안나의 요구에 동의했지만 웬디에게서 새 자녀가 태어나자 상황이 달라지게 됐다. 라클란 등은 이복동생이 재산의 상당 부분을 상속받는 데는 찬성했지만 그룹의 경영권과 관련된 신탁에 관여하는 것은 반대했다. 2005년 라클란이 돌연 뉴스코프 부회장직을 박차고 나온 것도 이런 후계문제가 배경이 됐을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작년 머독 회장은 자녀 6명에게 각기 1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나눠주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머독은 옥스퍼드를 나온 인텔리란 점에서 그의 독서 세계가 관심을 끌기도 한다. 호주 일간 에이지는 머독의 런던 집 서재에 중국 고전인 역경(易經) 입문서와 유대인 조크집 등이 있다고 보도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머독의 런던 집은 메이페어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그와 부인 웬디 덩, 그리고 2명의 어린 딸들이 1년에 10주 정도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서재엔 머독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고 흥미 있는 신학과 철학 책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업상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답게 공항에서 살 수 있는 소설들이 많은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역경에 관한 입문서와 ‘세계 최고의 유대인 조크’는 나란히 꽂혀 있다. 영국 추리소설가 존 르 카르와 스콧 터로의 스릴러물과 소더비 경매 목록 등이 놓여 있다. 부부가 자는 안방은 결혼 사진 외에는 장식품을 전혀 두고 있지 않아 풍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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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4-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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