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제 23호 (2007년 04월)

麻谷寺, 조선 사찰의 아름다움

기사입력 2007.04.20 오전 09:40

麻谷寺, 조선 사찰의 아름다움
“…봄 마곡사 골짜기로 산벚꽃 지천으로 피더니, 여름이 되자 계곡에는 새소리 물소리가 다발로 어우러진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로 시작해서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니가 가도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라’ 단가 ‘사철가’ 흥이 절로 난다.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 봄 경치는 마곡사요 가을 경치는 갑사라는데 이 명성은 마곡사의 봄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오월의 싱그러운 초록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낡은 노트를 넘기다 보니 언젠가 적어놓은 마곡사 단상이 눈에 띈다. 다시 읽으니 새롭다.

마곡사의 봄

봄볕이 마곡사 대적광전 앞마당에 가득하다. 산 빛이 푸릇푸릇 가지마다 물이 올라 생기가 돈다. 극락교 아래 물고기들의 몸놀림이 가볍다. 봄비라도 내리면 대지가 온통 초록 천지가 될 것이다. 봄이 좋다. 꽃도 피고 생기가 돈다. 마곡사 가는 길 사곡 동암에서 풀잎처럼 수행하는 서운 스님을 찾았다. 아침 일찍 골짜기 아래 차를 세우려니 암자 위 언덕에서 스님 기척이 난다. 산중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와 벗하며 살아오다보니 예민해지나보다.

“차나 드세요.”

지난겨울 선방에서 보내고 해제가 되자 다시 암자로 돌아온 스님의 첫마디다.

“얼마만큼 참선하셨나요?”

“이만큼요!!!”

머리가 어찔했다. 나도 모르게 하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 선방 출입이 어언 삼십 년이 넘는 스님의 얼굴엔 나의 우문이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장난기 같은 천진함이 가득 묻어난다. 하기야 참선 공부를 양으로 잴 수야 없지. 생각 없는 질문에 괜히 민망했다.

“이젠 선원 들어가기 싫어요. 가면 나이 들었다고 대접하고, 모두 나서서 총괄해야 되고. 이젠 대중법(大衆法)도 다 알아요. 평범한 사람이 좋아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선생님도 학생 때가 좋지 않았나요?”

세상 법을 다 안다는 듯 무심하게 던진 스님의 물음에 마음속으로 ‘맞아요!’ 소리가 절로 났다. 동암 동쪽 소나무 숲 건너편으로 태양이 떠오른다. 아침이 상쾌하다. 계곡의 청단풍 가지에 물이 올라 불그스름하다. 봄 아침이 싱그럽다.

비대칭의 대칭이 주는 미감

마곡사는 작지만 느낌이 깊은 절이다. 절 초입부터 계곡을 따라 걸어보면 계곡 양쪽으로 울창한 수목이 풍광을 압도한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절의 느낌을 보라. 절집 요사채가 계곡 건너 보이는데 길은 계곡과 그냥 나란히 달린다. 계류를 거슬러 내려가듯 오르다 보면 작은 개울 하나를 건너야 비로소 절의 면모가 드러난다. 해탈문이 보이고 전각 사이로 좌향을 조금 틀어 천왕문을 놓았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의 미감은 비대칭의 대칭이다. 좌우가 같아 보이는데 한 군데도 같지 않은 공간 구성이 그것이다. 여기에 일직선 미감도 좋아하지 않았다. 마곡사 해탈문과 천왕문 그리고 극락교로 이어지는 진입 공간의 동선이 직선이 아니고 조금씩 비틀어 자리한 것도 바로 이러한 한국미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한 것이다.

그 왼편으로 안거 철 선방으로 쓰이는 매화당과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영산전이 자리한다. 전통적인 가람의 전각 배치로 보면 마곡사는 어설프고 산만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천왕문을 거쳐 절을 감싸고 흐르는 명당수인 극락교를 건너면 이곳이 바로 천하 명당인 마곡사의 본 영역이다. 개울 옆으로 여염집 사랑채 같은 기와집 한 채가 보인다. 나무 등걸을 그대로 기둥으로 살려 자연스럽게 세워 놓았다. 개화기 만공 스님이 마곡사에서 공부할 때 기거하던 곳이다. 작은 마루 문지방 위에 우화궁(雨花宮)과 수선사(修禪社)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죽비로 쓴 듯 거칠지만 글자에 선미가 가득하다. 사람은 갔어도 흔적은 여전하다.

극락교 아래 태화산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가득하다. 물고기가 한가롭게 노닌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바쁜 움직임이 하나도 없다. 한중한(閑中閒)이라 했던가. 한가로운 가운데 또한 한가롭다. 도통한 물고기. 아니면 매운탕. 생각이 잠시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간다. 느티나무 고목 사이로 대광보전과 오층석탑이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깊은 산중이라기보다는 아늑한 골짜기에 아담한 절집 느낌이다. 백제 사찰에서 보이는 따뜻함이 묻어난다. 대적광전 뒤 대웅보전이 지붕을 얹듯 위태롭게 보인다. 대웅전이 전각에 가려 뒷전에 밀린 것도 재미있지만 그보다 뒷동산 봉우리의 봉긋함이 대웅전 추녀선과 맞물려 봉긋하다. 조선 건축이 자연의 산세와 어울리게 경영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대웅전 앞마당에서 아래로 굽어본다. 요사 전각의 기와 능선을 겹겹이 산맥처럼 잇대어 있다. 한옥지붕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본다. 봄 안개라도 앞산에 걸리고 굴뚝에 밥 짓는 연기라도 피어오르면 영락없는 한 폭의 산수화다. 이곳이 갑사와 동학사 등의 말사를 거느린 조계종 31개 본산 중 제6교구 본사임을 실감케 한다.

麻谷寺, 조선 사찰의 아름다움
조선 미감의 보고

대광보전은 정조 12년(1788)에 건축됐다. 이 시기는 정조의 학예일치의 학문적 성과뿐만 아니라 수원 화성 신도시 건설 등 조선 후기 문화의 정점에 이른 시기다. 일견 보아도 건물이 당당하다. 넉넉한 민흘림기둥은 시각적 안정감을 주고 팔작지붕의 긴 추녀를 사뿐하게 들어 올리는 귀솟음 기법이 돋보인다. 대웅보전 내부는 밝으면서도 차분하고, 화려하면서도 무게를 가진다. 내부 기둥이 천장까지 닿지 않아 다른 기둥을 이어대고, 당연히 세워져야 하는 가운데 기둥을 빼거나 들보를 잇기 위해 다시 기둥을 세웠다. 마치 가운데 기둥을 하나 뺀 듯하여 어설프기조차 하다. 시각에 따라서는 불단이 지금 위치가 아닌 건물 가운데에 자리하였는데 어떤 연유로 옮긴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고 처음부터 이리 융통성 있게 기둥을 세운 당시의 미감에 감탄할 뿐이다. 참으로 비대칭의 대칭이다. 이런 여유에서 당시 건축을 경영했던 목수의 솜씨와 시대의 미감을 잘 읽을 수 있다. 조선 단청 배색의 우아함,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모셔져 있는 목조 비로자나불의 원만한 상호와 뛰어난 조형미, 후불탱화의 따뜻한 색감에서 오는 푸근한 아름다움, 불단 후불벽의 장려한 백의관음보살상, 현대미술을 보는 듯한 불단 장식의 기하학적이고 미니멀한 조형적 표현, 문틀과 문살의 개성 있는 구성 등은 가히 대광보전이 조선 미감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조선 후기 최고의 감식안이자 서화가였던 사대부 화가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91)의 대광보전 현판 글씨까지 나무랄 곳 없이 훌륭하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듯 무르익었을 때의 그 넉넉한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이 건물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광보전 앞에 마곡사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유적이 있다. 바로 보물 제 99호로 지정된 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우리가 익히 보았던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 석가탑의 수려함, 감은사지탑의 당당함에서 느끼는 기품,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부드러우면서 고졸한 멋과는 사뭇 다르다. 마곡사 탑은 우리네 미감에는 어설픈 화려한 장식과 이국적인 라마식의 상륜부를 가진 석탑이다. 안정된 기단에서부터 수학적 비례로 체감하는 신라의 삼층석탑과 비교한다면 금방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대웅보전 천장의 고색창연한 단청은 장엄하다. 예불의식 도구인 목어(木魚) 운판(雲版) 북 종의 사물(四物) 가운데 마곡사 목어는 완주 화암사, 승주 선암사 목어와 함께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대적광전 서쪽 계곡 옆 요사사랑마루에 걸려 있었지만 이젠 유물창고로 들어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아쉽고 아쉽다. 요사 창고인 이층 고방은 조형미와 실용을 충족시킨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 밖에도 암키와와 진흙을 켜켜이 쌓아올려 만든 후원 굴뚝의 조형미도 눈여겨 볼만하다.

선방 한낮의 해 그림자만

오전 11시 반, 사시예불을 마치자 공양간에서 밥 종이 울린다. 뗑 뗑 단음계의 투박한 종소리가 한낮의 시장기를 더한다. 요사채 샛문을 거쳐 공양간에 갔다. 공양간은 스님과 대중을 위한 탁자와 의자가 놓인 식당이다. 잡곡밥에 나물반찬 두부찌개. 간단하지만 맛있는 점심이다. 점심(點心). 마음에 점을 찍는다. 오늘 나는 무슨 점을 찍었지?

스님이 선원에 가서 차나 한 잔 하자 한다. 한낮 햇살이 네모 반듯 하게 내리는 대적광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극락교를 건너 매화당 선원으로 향했다. 때마침 해제 철이라 선원이 텅 비어 있다. 스님이 안채 마루를 마른 비로 쓸고 있었다. 인상이 가을 하늘 같다. 속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않았다. “밀린 빨래하러 가요. 마음껏 차 드시고 과일도 들고 가세요.” 평소엔 눈인사만 하던 스님도 오늘은 봄 햇살처럼 부드럽다.

麻谷寺, 조선 사찰의 아름다움
선방하면 용맹정진.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지난겨울 선방을 달구었던 선열(禪熱)은 간데없고 한낮의 해 그림자만 창호에 가득하다. 빈 방에 덩그러니 매어 놓은 횃대. 두어 벌 가사가 걸려 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미소가 은은하다. 선방 어간 벽에 선방정진시간표가 단정하게 붙어 있다.

03:00 기상 예불 입선(入禪)

05:00 방선(放禪)

06:00 조공

08:00 입선(入禪)

11:00 방선 사시예불

11:30 오공

14:00 입선

16:00 방선

17:00 약석(藥石)

19:00 예불 입선

21:00 방선 및 취침

참선 시간을 세어보니 하루 여덟 시간이다. 나 같은 속인은 한 시간 앉아 있기도 힘든데 여덟 시간이나… 그것도 매일 …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책에서 읽은 생각하는 이 몸뚱이가 무엇인가. 시심마(是心 ). 아니면 조주선사의 무자(無字) 화두. 정말로 화두에 치열할까. 화두가 방선 죽비 소리. 나도 참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정진시간표에는 인고(忍苦). 이렇게 써 있는 것 같았다. 방안 벽에는 용상방(龍象榜) 조실(祖室) 선덕(禪德) 선원장(禪院長) 등 알 듯 모를 듯한 용어들이 가득하다. 지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님들이 정진수행 중 다리도 풀고 묶은 피로도 녹일 겸 차도 마시고 한담도 나누는 곳이다. 방 한쪽에는 간단한 차 도구와 차 통이 놓여 있다. 과일과 떡도 보인다. 누런 장지 방바닥에 ‘2006 선사방함록(禪社芳啣錄)’이 무심하게 뒹군다. 표지에는 굵은 펜으로 ‘지대방용’이라고 무심하게 써 놓았다.

“선방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예요.” 뜬금없이 스님이 툭 던진 한마디다. 선방 도반들의 내비게이션이다. 이번 철에는 어느 선원에서 누가 정진하는지 손금 보듯 훤하다. 하기야 출가의 대부분을 선원에서 정진한 노장 스님들한테는 관심이 덜하겠지만 이제 갓 선방 출입을 시작한 초짜 스님들에게는 도반의 수행 소식이 얼마나 궁금하랴. 읽을 것이라고는 이 선사방함록 밖에 없으니 적적한 산중에서는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없다. 아무리 넘겨보아도 어려운 한자만 가득할 뿐이다. 이게 승속(僧俗)의 차이다.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대나 …’ 흘러간 유행가가 절로 나온다. 봄이 좋기는 좋다. 스님과 나눈 차 한 잔에 또 봄 하루해가 간다.

| 마곡사 계곡의 봄. 한 폭의 그림이다.

| 백제 사찰의 부드러움을 한껏 간직하고 있다. 대광보전 앞마당에 봄 햇살이 가득하다. 라마교풍의 오층석탑은 담백한 조선 미감과 사뭇 차이가 난다.

| 요사채 조선 문짝과 범종. 단정하다. 사대부 사랑채 조형을 보는 듯하다.

| 대광보전 내부. 불상과 단청 불단 장식의 조형에서 조선 사찰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 대적광전에서 요사채로 들어가는 협문. 작지만 아름답다.

| 요사 고방. 마른 물건과 습한 물건을 다로 보관하던 부속 시설이다. 통목을 파서 만든 계단에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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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4-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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